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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팀 24/7] 속이려는 살인의 기억…'뇌파'는 못 속인다

■'최면수사'는 과학

박주호 전북지방경찰청 경위가 최면수사실에서 대상자에게 최면절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제공=박주호 경위




신체·정신 이완 통한 뇌파 기반

술마시고 끊긴 기억까지 되살려

‘준희양 암매장’ 사건단서 찾기도


“최면수사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 톡톡히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고준희 암매장 사건’을 풀 실마리도 최면수사에서 나왔죠.”

지난 2017년 친아버지와 동거녀가 다섯살배기 고준희 양을 학대해 숨지게 하고 암매장한 뒤 8개월이나 숨긴 사건은 전 국민을 분노케 했다. 당시 경찰은 준희 양이 실종됐다는 부모의 신고를 바탕으로 인근 폐쇄회로(CCTV)를 돌려보며 제3자에 의한 납치 가능성을 수사했다. 하지만 CCTV 어디에도 준희 양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막막하던 때 수사에 반전을 준 것은 바로 최면수사. 이웃 주민을 최면해 마지막으로 준희를 목격한 날짜를 파악했고 그 결과 실제 실종시점을 신고시점에서 8개월가량 앞당길 수 있었다. 당시 최면수사를 주도한 법최면 전문수사관 박주호 경위는 “최면수사로 사건 발생시점을 좁혔고 이를 바탕으로 수사한 결과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과학은 실마리 하나 없는 사건의 진상규명에 한발 더 다가가게 해준다. 최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를 33년 만에 세상에 드러나게 해준 것은 DNA 분석기술의 발전이었다. 최면수사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 최면은 ‘레드선’과 함께 바로 최면에 빠져 비밀을 털어놓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현실은 사뭇 다르다. 자칫 장기 미제로 빠질 수 있는 사건들을 해결하는 데 적극 활용되는 최면수사의 세계를 국내 유일의 법최면수사·범죄심리분석 마스터인 박주호 전북지방경찰청 경위를 통해 들여다봤다.

◇뇌파 원리 기반한 ‘과학수사’=“최면의 개념을 이해한다면 최면으로 전생을 볼 수 있다고 얘기는 못 하죠.” 최면수사란 강력 사건 혹은 교통사고를 목격한 사람이나 피해자가 충격이나 놀람, 시간 경과 등으로 사건과 관련한 내용을 기억하지 못할 때 그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 수사에 도움이 될 증거를 찾는 것을 말한다.

박 경위는 최면수사가 뇌파를 기반으로 한 ‘과학’이라고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뇌파는 깨어있을 때 나오는 베타파, 긴장이 이완된 편안한 상태에서 나오는 알파파, 졸리거나 명상에 잠겼을 때 나오는 세타파 등으로 나뉜다. 최면은 뇌파가 베타파에서 알파파를 거쳐 세타파의 상태에 있다가 다시 베타파로 돌아오는 과정을 뜻한다. 거짓으로 최면에 걸리는 척하는 건지, 진짜 최면에 걸린 건지 구분이 가능한 것도 바로 뇌파 덕분이다.

사실 다른 사람을 최면에 들게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대상자에게 최면수사가 무엇인지, 과거에 어떤 사건들이 최면수사로 해결됐는지 등을 설명하고 대상자와 수사관 간에 신뢰를 형성해야 한다. 이후 ‘제 말에 집중하시고 점점 몸과 마음이 편해집니다’는 식의 대화로 대상자를 계속 신체적·정신적으로 이완시켜야 한다. 이 때문에 인지·지각능력이 없는 사람은 최면수사를 받을 수 없다. 박 경위는 “지적장애 3급인 학생, 귀가 잘 안 들리는 할아버지에게도 최면수사를 시도해봤지만 실패했었다”면서 “대신 술 마시고 잃어버린 기억은 최면으로 되살리는 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박 경위가 최면으로 되살린 가장 오래된 기억은 50년 전이라고 했다. “임시 기억에서 단기기억, 장기기억으로 넘어가는 데 중요한 것은 특별한 계기예요. 이벤트가 있는 기억이라면 얼마나 오래전 일이든 간에 최면으로 되살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면을 ‘오락’ 인식 수사불신 깊어



과학적 실험·DB 구축 서두르고

피해자 심리치료까지 활용해야



◇피해자·목격자 넘어 피의자도 최면 대상=최면이 피해자·목격자를 대상으로 용의자 얼굴·인상착의·차량번호 등을 떠올려 범인을 잡는 데만 쓰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문가에 한해 사건의 기억을 잃은 용의자의 기억을 깨워 증거를 찾거나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쓸 위기에서 피의자를 구하는 등 최면은 다양하게 활용된다.

2013년 군산 비응도 살인사건은 술에 취해 기억을 잃은 용의자를 최면수사해 사건을 해결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용의자는 부서 회식 후 부하직원과 승용차를 타고 회사 기숙사로 돌아가던 중 부하직원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용의자는 음주로 인해 부하를 죽였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부하직원과 나눈 대화 내용, 흉기를 숨긴 장소, 이동 동선 등을 기억하지 못했다. 박 경위는 최면으로 기억을 되살려 살해 동기와 흉기 은닉장소를 모두 파악해냈다.

이외에 피해자의 흐릿한 기억을 최면으로 되살려 피의자가 무고하게 다른 죄까지 덮어쓰는 일이 없게 한 사건도 있었다. 최면으로 사실을 밝혀내지 않았더라면 피의자가 무기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피해자들 심리치료 더 확대해야=박 경위는 특채로 경찰에 입사해 10년 넘게 최면수사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베테랑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최면치료로 심리학 박사학위를 따기도 했다. 매년 평균 강력범죄 70~80여건에 대해 최면수사를 지원하고 있다. 정신의학·심리학 등 관련 지식에 범죄수사에 필수적인 전문성까지 갖춘 셈이다. 경찰청에서도 이 같은 전문성을 인정해 박 경위에 법최면수사·범죄심리분석 분야 마스터 인증을 수여하기도 했다.

최면수사로 사건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여전히 오해와 불신이 깊다고 그는 털어놨다. 현재 최면수사로 확보한 증거는 법적 증거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박 경위는 “1955년 영국의학회에서 최면을 치료 기법으로 인정했고 1970년 세계보건기구(WHO)도 최면을 유용한 치료 수단이라고 했다”며 “우리나라에서는 최면을 오락 수단으로 오해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면수사와 관련해 과학적인 데이터를 쌓는 게 필요한 이유다. 박 경위는 “전국에 최면수사관만 30여명”이라며 “최면수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과학적 실험연구와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면으로 증거를 찾는 데서 나아가 피해자의 심리를 치료하는 데까지 확대 활용돼야 한다는 점도 지적된다. 사건 당시의 충격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잊었던 기억을 되살리는 일인 만큼 이에 대한 심리치료가 병행되지 않으면 최면대상자는 더 큰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 실제로 박 경위가 성폭력·가정폭력·학교폭력 피해자 400여명의 심리치료를 해온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피해자들이 좀 더 행복한 일상생활을 지낼 수 있도록 심리치료까지 하는 게 최면수사관의 몫이라 생각해요. 지금도 치료받은 사람들에게 감사 편지를 받을 때 뿌듯합니다.”

/군산=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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