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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양극화의 민낯]10대서 직장여성까지…유럽 초고가 패션이 삶의 일부로

구찌·폴스미스 티셔츠…금수저엔 '머스트해브 아이템'

강남 대형매장 있는 신세계百 올 명품 매출 32% 늘어

불황에 한푼이라도…'중산층 브랜드'는 성장 제자리





서울 강남 삼성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중학교 2학년 기훈(가명)이의 옷장에는 기훈이가 특별히 아끼는 아이템들이 있다. 호랑이 같은 동물 그림이 그려진 구찌 반팔 티셔츠 몇 장, 스텔라맥카트니 티셔츠, 폴스미스 니트와 티셔츠, 톰브라운 카디건과 맨투맨티, 몽클레어 패딩 재킷. 여기에 발렌시아가 야구모자를 특히 좋아한다. 신발장에는 발렌시아가 신발도 두 개나 있다. 하나는 약 100만원인 ‘스피드러너’ 스니커즈, 또 하나는 비슷한 가격의 어글리 스타일 ‘트리플S’.

기훈이가 처음부터 고가 유럽 패션 브랜드 제품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대기업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살던 기훈이가 나이키나 아디다스를 즐겨 입다 귀국한 후 패션 아이콘인 빅뱅 지드래곤의 스타일에 관심을 가지면서 유럽 패션에 눈을 뜬 것. 국내 뮤지션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랑삼아 올리는 값비싼 패션 아이템은 10대들에게 ‘머스트해브 아이템’으로 통한다.

10대 기훈이의 사례는 한국에서 이른바 ‘명품’으로 불리는 럭셔리 패션 상품 판매가 드라마틱하게 성장하고 있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액자산가들이 유럽 패션 브랜드에 열광하는 것은 물론 직장인 여성들도 수개월치 월급을 모아 명품 구입 행렬에 동참한다는 얘기는 이미 올드스토리다. 서울 강남 등지의 일부 부유층에서는 10대 학생들에게도 수백만원짜리 명품 패션이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지난 7월 리뉴얼 오픈한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본점 불가리 매장의 내부 모습. /사진제공=롯데백화점


◇부모 소득 양극화에 따라 사치품 즐기는 10대도 속출=최근 종영한 엠넷의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8’에서 꽤 높은 단계까지 올라간 한 고교생 출연자는 실력도 좋았지만 패션으로 더 큰 화제를 모았다. 고교생이자 아마추어 래퍼임에도 출연할 때마다 구찌 티셔츠와 머플러, 발렌시아가 스니커즈, 펜디 재킷 등 값비싼 의류와 소품을 착용했다. 부모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10대 소년도 얼마든지 수백만원짜리 유럽 패션 사치품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됐음을 잘 보여준 사례다.

돈 있는 사람에게 돈이 몰린 지는 이미 오래. 그 과정에서 중산층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한 푼이라도 아껴 자식 학원비라도 마련하려고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지만 일부 부유층에는 명품 쇼핑과 몸치장이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은 취미생활이 됐다. 오랜 소득 양극화가 소비 양극화로 이어진 이런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최악 불경기 속 백화점 명품 매출 성장률 최고치=정말로 믿기지 않는 것은 거의 모든 언론 매체가 최악의 불경기라는 기사를 쏟아낸 지난해와 올해 백화점 명품 매출 성장률이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지난 2016년 13.8%이던 명품 매출 신장률은 2017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영향으로 5.5%까지 내려갔다가 지난해 18.5%로 올라갔다. 이는 2015년의 명품 신장률 18.1%를 웃도는 기록이다. 올해는 더하다. 1~8월 명품 매출 신장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무려 24.7%를 기록했다. 모두가 최악의 불경기라고 하는 가운데서도 값비싼 명품은 기록적인 판매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강남에 대형 매장이 있는 신세계백화점은 명품 판매가 더 많이 증가했다. 2017년 명품 신장률이 18.5%를 기록하더니 2018년에는 20.0%로 뛰어올랐고 올해 8월까지의 명품 신장률은 무려 32.5%를 기록하고 있다.



◇중산층 품목 토종 브랜드 성장 뚝=백화점 업계에서 과거부터 ‘중산층 품목’으로 꼽던 내셔널(국내) 브랜드 남성의류와 여성의류 등은 성장이 사실상 멈췄다. 신세계 여성의류 카테고리 매출 신장률은 지난해 0.7%, 올해 1~8월 0.2%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야말로 소득 양극화가 소비 양극화로 이어진 전형적인 패턴이라고 입을 모은다. 익명의 한 서울 시내 사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히 올라가 부유층의 소비 여력이 커진 반면 전통적 의미의 중산층은 주거비와 교육비 부담, 임금 정체 등으로 백화점 고객층에서 상당 부분 이탈했다”면서 “이 때문에 값비싼 명품은 팔리고 국내 브랜드 옷은 부진할 수밖에 없다”고 해석했다.

아무리 불경기라고 하지만 ‘한국에 돈 많은 사람 많다’는 말은 사실이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이 회사의 명품 매출 중 대략 80%가 내국인으로부터 나온다.

지난 2월 롯데백화점 본점 5층에 신규 오픈한 구찌 맨즈 매장. 최근 남성의 명품 구매가 크게 늘고 있는 트렌드에 대응해 문을 열었다. /사진제공=롯데백화점


◇부 쏠림 현상 가속화=중산층의 임금과 사업소득이 올라가는 속도에 비해 부동산 등 자산 가격 상승 속도가 빨라 자산가 계층에 대한 ‘부의 쏠림’ 현상은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임금 생활자와 자영업자의 소비 여력은 정체지만 자산가의 구매력은 갈수록 커질 것으로 보여 명품 소비는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다.

최근에는 다른 모든 것을 아끼고 아껴 모든 돈으로 명품을 사는 젊은 층도 늘었다. 명품이 좋아 스스로 양극 소비를 하는 젊은이들 덕에 한 마디로 명품 고객의 ‘저변’이 확대됐다는 것. 신세계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50대 여성이 명품 시장의 최대 고객이지만 최근에는 젊은 여성과 남성이 주요 명품 고객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명품 업체들도 이런 변화를 파고들어 젊은 소비자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루이비통과 구찌는 한글 온라인스토어를 열고 고객들에게 e메일 뉴스레터까지 보내며 제품을 소개한다. 루이비통은 올 7월 신세계강남점 1층에 팝업스토어를 열고 젊은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역량을 어필하기도 했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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