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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의 '세가지 車별화'…사치품을 생필품으로 바꾸다[최형섭의 테크놀로지로 본 세상]

[최형섭의 테크놀로지로 본 세상]

<11>‘모델T’와 대량생산 시대의 탄생

☞세가지 車별화 : 부품 표준화·車 가격 인하·일당 5弗





최형섭 서울과기대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지난 2011년 8월 필자는 약 12년 동안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돌아와서 한동안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하다 이듬해 초 승용차를 한 대 사기로 결심했다. 딸이 집에서 조금 거리가 떨어진 어린이집에 다니게 됐기 때문이었다. 별로 알아볼 것도 없이 국내 최대 자동차 회사의 영업사원에게 전화를 하니 며칠 후 몇 개 차종의 브로슈어를 들고 직장으로 찾아왔다. 큰 고민 없이 준중형 모델을 구입하기로 했다. 가격은 당시 내가 받던 월급의 4배 정도에 해당했다. 그동안 저축해둔 돈으로 차 가격의 3분의1 정도를 내고 나머지 금액은 자동차 회사와 관련된 금융사를 통해 대출을 받은 후 2년에 걸쳐 갚아나가기로 했다. 서류 작성을 마치고 며칠 후 영업사원은 차를 집 앞에까지 가지고 와서 내게 인도했다.

이렇게 시시콜콜한 개인사를 털어놓는 이유는 현대사회에서 자동차라는 상품이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해보기 위해서다. 자동차는 30대 중반의 초임 조교수가 넉 달치 월급을 모으면 적당한 모델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물건이었다. 물론 내가 구입한 준중형차보다 낮은 가격의 경차 모델도 있고 중고차 시장까지 포함하면 훨씬 값싸게 구입할 수 있는 차도 많다. 반대로 내 상상의 범위를 넘어설 정도로 비싼 고급차도 즐비하다. 천차만별의 자동차 시장이지만 일단 자동차를 사기로 마음먹었다면 대개 월수입의 대략 3~6배 정도의 차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비율은 한국과 비슷한 경제 수준을 가진 다른 나라에서도 대략 유사할 것이다.

일반적인 소비자의 경우 이 정도 지출은 주택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규모라고 할 수 있다. 고위공직자들이 재산을 공개할 때 자동차는 반드시 등록하도록 돼 있을 정도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수입이 있는 한국인에게 자동차란 마음먹으면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는 물건이기도 하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 등록된 자동차는 2014년 2,000만대를 넘어선 이래 매년 2~4%씩 증가해 2018년에는 2,300만대를 넘어섰다. 대략 한국인 두세 명당 한 대꼴의 자동차가 도로를 누비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 자동차는 생활필수품에 가깝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자동차가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니다. 석유를 연료로 한 내연기관은 19세기 중반 무렵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그 이후 20세기 초까지 자동차는 극소수 상류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 그 이유는 자동차 제작 방식에 있었다. 자동차는 수천 개의 금속 부품으로 이뤄진 복잡한 기계장치다. 하나의 부품이 다른 부품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야 문제없이 작동하게 된다. 하지만 19세기 말까지 당시의 기술 선진국들조차 정밀한 금속가공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어설프게 만들어진 부품을 단순 조립해서는 자동차라는 정교한 기계장치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따라서 자동차 역사의 초기에는 높은 숙련도를 지닌 맞춤 조립 기술자(fitter)의 역할이 중요했다. 이들은 부품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깎아 맞춰나가는 방식으로 완성된 자동차를 제작했다. 예를 들어 1893년 출시된 벤츠 ‘빅토리아(Viktoria)’는 현재 화폐 가치로 약 7,500만원 정도로 당시 보통 사람들의 구매력을 훌쩍 넘어섰다.

내연기관 19세기 중반에 탄생했지만

정밀 금속가공 필요…상류층만 향유



금속 부품을 표준화해 ‘교환 가능한 부품’으로 만드는 일은 산업혁명 이후 엔지니어들의 오랜 꿈이었다. 그 노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영역은 군의 소총 제작이었다. 전쟁터에서 소총이 고장을 일으켰을 때 필요한 부품만 교환해 수리할 수 있다면 무기 보급을 효율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1778년 프랑스 육군에서 처음으로 교환 가능한 부품을 이용한 소총 제작을 시도했지만 극소수 부품의 표준화에 성공했을 뿐이었다. 이러한 노력을 지켜보던 당시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였던 토머스 제퍼슨은 이를 미국에 도입할 것을 건의했다. 미국 정부는 당시 유명한 발명가였던 엘리 휘트니에게 이 작업을 맡겼다. 휘트니가 1만정의 소총을 납품하기로 계약을 맺은 것이 1798년이었다. 그는 3년 후인 1801년 국회에서 10정의 소총을 분해해 부품을 뒤섞은 다음 무작위로 재조립하는 시범을 보였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국회의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휘트니는 최종 납품을 미루고 미룬 끝에 1809년에야 약속된 계약조건을 완수했다. 국회에서의 부품교체 시범은 사기극에 불과했다는 의혹도 일었다. 그만큼 교환 가능할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된 부품을 만드는 일은 당시의 기계가공 수준으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20세기 초 포드, 대량생산 시스템 구축



‘표준화 된 부품’ 비숙련공이 조립

생산성↑·가격↓…규모의 경제 실현

‘일당 5弗’ 정책으로 구매력도 창출

복합적 효과 결합 ‘車 대중화’ 활짝

교환 가능한 부품은 자동차의 대량생산이 이뤄지기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이었다. 20세기 초 ‘자동차 왕’으로 알려진 헨리 포드는 표준화된 부품을 비숙련공이 조립하는 방식으로 자동차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했다. 포드가 1908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자동차는 ‘모델T’였다. 포드사의 리버루지(River Rouge) 공장에는 컨베이어 벨트가 설치됐다. 포드 엔지니어들은 노동자들이 한 가지 일만 반복해서 할 수 있도록 공정을 설계했다. 노동자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이동하는 반제품에 각자 맡은 표준화된 부품을 조립해나갔다. 이렇게 공장 전체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완성된 차가 만들어지는 방식이었다. 전통적인 자동차 공장에서 큰 역할을 맡던 고숙련 장인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다. 포드는 대량생산 방식으로 20년 가까운 기간에 1,500만대가 넘는 모델 T를 생산했다.

그렇다면 대량으로 만들어낸 자동차를 누가 살 것인가. ‘대량생산’이라는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있어야 한다. 포드는 모델T 생산 초기부터 무엇보다도 가격이 낮게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1908년 당시 모델T의 가격은 850달러였는데 이 정도 비용은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이 감당할 만했다. 게다가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가격을 점차 인하할 수 있었다. 규모의 경제 효과였다. 같은 공장설비에서 생산성이 증가해 생산량이 늘어나면 대당 원가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모델T의 가격은 1914년에 490달러, 1924년에 290달러까지 내려갔다. 가격을 낮추는 것도 중요했지만 이 정도 규모의 소비를 감당할 만한 중산층이 늘어나는 것 역시 필요했다. 포드사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일당 5달러’ 정책을 시행했다. 포드 노동자가 받는 월급으로 자신이 만드는 자동차를 살 수 있을 정도의 구매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주 6일 근무를 가정했을 때 월급이 120달러 정도라고 하면 두세 달치를 모으면 포드 모델T를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대량생산 체제는 표준화된 부품을 바탕으로 한 비숙련 단순 노동이라는 기술적 측면과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한 가격 인하 및 소비자 집단의 성장이라는 경제적 측면이 결합해 만들어졌다. 20세기 이후 공고하게 자리 잡은 대량생산 체제는 당연하게도 대량소비 사회와 동전의 양면을 이뤘다. 장인들이 정성 들여 만드는 제품들의 시대가 퇴조하고 그 자리를 적당한 품질을 가진 표준화된 제품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아쉬움을 가진 사람들도 있겠으나 대량생산 체제가 갖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포드 시스템의 후예에 해당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필자의 자동차는 7년 후에도 여전히 큰 문제 없이 작동하고 있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러하리라 기대된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내 월급의 4배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이러한 자동차를 소유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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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 포드, # 모델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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