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기다무'로 펼쳐진 전자책…'도서정가제'로 덮히나[인터랙티브]

도서정가제 폐지 청원 20만 돌파…웹툰·웹소설에 미칠 영향은

도서정가제 폐지 청원/청와대 홈페이지




이번엔 달랐다. 지난 13일 마감한 ‘도서정가제의 폐지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청원 게시글은 20만9,133명의 동의를 이끌어내며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 명을 돌파했다. 지금까지 도서정가제 폐지 요구는 수차례 있었지만, 대부분 다섯 명 남짓의 지지를 받았을 뿐이다.

이번 청원이 유난히 더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지난 10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출판유통심의위원회가 보낸 공문 때문이다. 출판유통심의위원회는 ‘전자출판물의 도서정가제를 강화하겠다’는 취지의 공문을 전자책 출판사에 보냈다. 이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웹툰이나 웹소설에도 엄격한 도서정가제가 적용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도서정가제는 서점이 출판사가 정한 도서 정가에서 일정 수준 이상 할인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법안이다. 2014년 개정법에 따르면 현재 모든 도서를 종류에 상관없이 최대 15%까지만 할인할 수 있다.

웹소설 플랫폼 카카오페이지(상)와 네이버 시리즈(하)


현재 웹툰·웹소설과 같은 전자출판물은 기존의 도서정가제를 적용받지 않아 할인이 가능했다. 덕분에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대형 플랫폼은 사용자들이 대부분의 웹툰을 무료로 볼 수 있도록 서비스했고, ‘미리보기’ 유료 서비스를 제공해 더 빠르게 다음 회차를 보고 싶어하는 독자에게만 결제를 유도했다. 웹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웹소설 시장을 본격적으로 키우게 된 계기로 꼽히는 카카오페이지는 ‘기다무(기다리면 무료)’ 서비스를 통해 웹 콘텐츠를 유료로 소비하지 않는 독자들까지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도서정가제가 전자출판물에 확대 적용된다면 전자도서 플랫폼들의 이 같은 할인에는 제동이 걸릴 수 밖에 없다. 당장 독자들은 모든 웹툰·웹소설을 편당 결제해서 봐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필연 매니지먼트가 출간하는 웹소설 ‘나를 잡아먹지 말아줘’ 표지/필연 매니지먼트


이처럼 도서정가제는 산업의 운명을 결정 지을 큰 이슈이지만, 전자출판물 업계는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웹을 기반으로 작품을 유통하는 소규모의 웹소설 출판사는 도서 협회나 플랫폼의 눈치를 봐야하는 ‘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로맨스 소설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필연 매니지먼트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도서정가제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5년부터 전자출판물 업계에 몸 담아온 정세현 필연 매지니먼트 대표는 도서정가제가 전자출판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Q. 웹소설 출판사의 입장에서 도서정가제 확대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돈 한 푼 없어도 볼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통해 도서인구를 늘려놨다. 그런데 도서정가제가 도입되면 지금까지 무료로 보던 것에 돈을 지불해야 하니 독자가 떠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독자가 떠나면 산업의 저변이 무너진다. 이제 막 산업이 크고 있는데, 거기에 규제를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웹소설이나 웹툰은 무료로 보여주니까 독자들이 한 번 보고, 괜찮으면 결제를 하도록 유도해서 시장을 키워왔다. 아직 산업이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한 웹소설, 웹툰 시장에 무료 공개 서비스를 규제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하다.

Q. 유료 독자들은 남지 않을까?



충성도 있는 유료 독자들에게도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전자 출판 업계가 성장하게 된 동력은 낮은 진입 장벽이다. 종이 책을 기반으로 출판할 때는 회사 규모가 작으면 책을 만들기 힘들었다. 기본적으로 책을 인쇄하는데 드는 종이 값이 비싸고, 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을 경우 서점이 출판사 측에 반품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규모가 큰 출판사만이 작품을 고르고 골라 출판해왔다. 그러나 전자 출판은 제작이나 편집에 크게 돈이 들지도 않고 어렵지 않다. 그렇기에 작가의 소위 ‘이름 값’이나 편집자의 뛰어난 기획력 없이도 괜찮다 싶은 작품들은 모두 유통할 수 있었다. 이에 더해 독자들이 무료로 작품을 접해보고 선택할 수 있어 출판사 입장에서는 더욱 다양한 작품을 쉽게 선보일 수 있는 구조다. 당연히 유료화 된다면 이 같은 다양한 선택지도 줄 것이다.

Q. 작가들의 입장은 어떠한가?

당연히 반대한다. 지금처럼 산업의 규모가 생기기 이전에는 대부분의 장르문학 작가들이 본업을 두고 짬을 내서 취미로 썼다. ‘기다무’를 통해 작가들의 수입이 안정화 되면서 장르 문학계에도 프로 작가들이 많아졌다. 도서정가제가 확대 적용되면서 ‘기다무’와 같은 무료 체험 서비스가 사라지게 된다면 지금처럼 다양한 작가들이 활동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자연히 웹소설의 다양성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작가들이 무엇보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청와대 청원이나 커뮤니티 활동 등을 통해서 도서정가제 도입 반대 움직임에 앞장 서고 있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입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업계에서는 도서정가제가 전자출판물에도 전체 적용이 될 경우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플랫폼이 부가세를 내는 쪽을 택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들은 ‘도서정가제가 확대적용 된다면 우리도 음악처럼 그냥 콘텐츠로 부가세를 내겠다. 기존에 시행하던 서비스를 바꿀 수는 없으니까’라는 입장이다. 도서정가제 적용을 피하기 위해 전자출판물의 도서 지위를 포기하고 콘텐츠 지위를 적용해 부가세를 내고 할인 프로모션을 그대로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품에 부가세가 붙으면 당연히 가격은 올라갈 테고, 그 가격 부담은 소비자에게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누적 조회수 2,600만 뷰를 돌파한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유튜브


우리나라보다 앞서 도서정가제를 시행한 타 국가들의 제도는 어떠할까. 도서정가제를 가장 먼저 법제화하고 도입한 프랑스는 엄격한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프랑스는 전국적으로 어느 곳에서나 동일한 가격으로 도서를 판매하여 국민의 독서 평등권을 확보하고 출판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동네 서점을 보호하기 위해 해당 법안을 도입했다. 덕분에 프랑스는 중소출판사와 동네 서점이 여전히 활성화되어 있는 국가 중 하나다. 다만 해당 법이 적용된 상황은 우리나라와 사뭇 다르다. 출간한 지 24개월이 지난 도서에 대해서는 도서정가제를 적용하지 않아 할인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도서정가제는 구간에 대해서도 도서정가제를 적용하고 있다. 일본 또한 도서정가제를 도입하고 있으나 전자출판물에 대해서는 예외를 적용하고 있다.

정 대표의 말대로 전자출판시장은 이제 막 커가는 단계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웹툰 시장은 올해 매출액 1조원 규모를 넘어섰고, 웹소설 시장은 2013년 100억원 수준에서 2018년 4,000억원으로 폭발적 성장을 이뤘다. 5년 만에 약 40배 규모로 급성장한 셈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이 같은 성장세를 두고 장르문학을 중심으로 한 전자출판 콘텐츠가 출판 산업 전반을 견인하고 있다고 평했다. 웹소설·웹툰을 기반으로 한 전자출판시장은 급성장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성장기에 접어들지는 않았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전자출판물 시장의 성장은 비단 출판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에서 나아가 한국의 콘텐츠 IP(지적재산권)산업도 이끌고 있다. KT 경영경제연구소 등은 네이버와 카카오의 해외 웹툰·웹소설 거래 규모가 올해 1조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웹툰 자체가 해외로 수출되는 것은 물론, 웹소설이 웹툰화를 거쳐 해외에 수출되기도 한다. 웹툰의 영화화·드라마화 사례는 일일이 세기 힘들 정도이다. 최근에는 누적 조회 수 2,600만 뷰를 돌파한 인기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이 영화 ‘신과 함께’를 제작한 영화사 리얼라이즈픽쳐스와 장편 영화 5편 제작에 대한 판권 계약을 맺기도 했다.

한국 전자출판물이 전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유로 가장 우선 꼽히는 것은 ‘저비용’이다. 웹툰이나 웹소설은 큰 제작비용 없이 펜과 작가의 상상력만 있다면 어떠한 스토리든 생산해낼 수 있다. 거기에 스마트폰 사용이 보편화 되면서 누구나 쉽게, 무료로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을 끌어모았다. 낮은 진입 장벽이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를 끌어모아 선순환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도서정가제가 확대 적용될 경우 이 같은 선순환의 고리는 끊어지게 마련이다. 도서정가제 확대 적용에 대한 논의가 전자출판업계에 대한 충분한 고려 후에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정현정기자 jnghnjig@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