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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 '한강변 놀이터' 성수동이 초고층 아파트 부촌으로 변한 이유 (영상)

역사 덕후의 부동산 버킷리스트 EP.7

말똥냄새 가득했던 동네에서 '부와 힙의 성지'된 성수동

사연많았던 초고층 빌딩 트리마제와 아직 꿈틀대는 재개발 지역까지




분명 낡았는데...이상하게 힙하다? 블루보틀이 처음으로 한국에 상륙한 곳. 인스타그램에 동네 곳곳이 소개되고 주말이면 인싸들이 줄을 잇는 그곳. 혹시 어딘지 아시겠나요?

예전에는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동네였다가 갤러리아 포레, 트리마제, 아크로서울포레스트 삼대장이 올라서며 한강변에서 분위기가 확 반전되고 있는 이 곳. 이번주 역지사지 7번째 지역은 바로 숲을 품은 힙한 동네, 성수동입니다.






성수동의 위치는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는 곳, 압구정과 청담을 마주보는 한강변에 위치해있습니다. 동 전역이 평지인데다 입구에 약 35만평의 서울숲이 허파 역할을 하고 있어 자연적으로 매우 좋은 입지를 가지고 있는 곳이죠. 예전부터 장마철이면 중랑천의 물이 넘쳐 성수동을 지나쳐 한강으로 흘러왔었습니다. 한강 수위가 오르고 중랑천 물이 넘치면 종종 이 성수동 일대가 물에 잠기곤 했었는데 그때 만들어진 일시적인 섬이 바로 뚝섬이었죠. 당시 강북에서 강남의 봉은사 절을 가기 위해 가까운 뚝섬에서 배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많았다고 합니다.

뚝섬은 유독 70~80년대 사람들이 피서지로 많이 찾았는데요. 그 이유는 이곳에 물가를 따라 시원한 미루나무가 있어 뜨거운 햇빛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뚝섬 유원지에서 바라보면 유독 톡 튀어나와있는 초고층 빌딩을 볼 수 있는데요. 바로 재개발 포문을 열며 성수의 집값을 끌어올렸던 갤러리아포레와 트리마제입니다. 얼마전 ‘줍줍 로또’로 불렸던 아크로 서울포레스트도 지금 열심히 올라가고 있는데요. 외관을 보면 “성수는 이제 우리가 이끈다”고 외치는 듯하죠. 트리마제는 평당 7,871만원에 실거래가 28평 20억을 기록하고 있고, 인기 연예인·재벌 2, 3세·전문직 종사자들이 주로 살고 있다는 갤러리아포레는 최소 평수가 70평인데다 31억 이하의 가격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아마 과거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여기가 이렇게 변하지?” 싶은 생각이 들텐데요. 이곳의 과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말과 역사를 함께한 한강변 놀이터

이곳은 예전부터 ‘말’과 역사를 함께한 지역이었습니다. 말똥냄새가 많이 난다고 하여 기피지역이기도 했는데요. 말 목축을 금지시켰던 병자호란 이전의 조선시대에는 이곳이 전국에서 가장 큰 말 목축장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임금은 지금의 천주교회 터에 있었던 성덕정에서 말을 기르는 것과 군대의 훈련을 지켜보았다고 하는데요. 당시 성덕정은 비교적 높은 둔덕으로 홍수가 나면 사람들이 대피장소로 쓰였습니다. 성수동의 이름도 이 성덕정(聖德亭)과 수원지(水源地)의 머리음을 따서 만들어진 것이죠. 왕의 군마 시찰과 말을 놓아 먹이는 낙천정(자양동), 화양정(화양리)이 근처에 있었고 말고기를 파는 골목도 있었다고 합니다.



1922년 이곳에는 조선경마구락부가 발족됐습니다. 조선경마구락부는 경마의 공정한 시행과 원활한 보급, 마사의 진흥과 축산발전 기여를 목적으로 생겼는데 그 해 5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경마가 보급됐다고 하죠. 1928년에는 신설동에 경마장이 개장됐는데 조선경마구락부는 2년 뒤인 1930년 뚝섬을 경마장으로 쓰기 위해 일찍이 땅을 매입했습니다. 6.25 전쟁 후 신설동 경마장이 폐허가 되면서 땅을 쓸 수 없게 되자 한국마사회(경마구락부 이름 변경)는 뚝섬에 본격적으로 경마장 공사를 시작합니다. 그날은 바로 휴전 협정 다음날인 1953년 7월 28일. 모든 재산을 팔아 경마장 사업에 뛰어든 한국마사회는 갖은 노력을 통해 1954년 5월 8일 뚝섬에 경마장을 엽니다. 전쟁으로 3년 11개월간 경기를 못해 급하게 지은 탓에 경마장 곳곳이 채소밭에, 모래와 초지가 섞여있었지만 사람들은 참 즐거운 시간이었을 겁니다.

경마장이 들어섰던 이곳은 1968년 이번엔 골프장이 들어섭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마장 가운데 채소밭으로 쓰던 땅을 골프장으로 개조하라고 지시하면서부터인데요. 그렇게 생겨난 뚝섬 골프장은 이 기간 초보 골퍼들이 정규 골프장에 입문하기 전 실력을 키우기 위해 거쳐가는 코스였다고 하죠. 당시 골프장과 경마장이 한 곳에 있어 마사회 직원들은 경마장에서 골프공을 줍는 일로 출근을 시작했다는 웃픈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약 35년간 꾸준히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오던 경마장은 1989년 지금의 과천 경마장 개장과 함께 문을 닫게 됩니다. 바로 서울시의 ‘서울숲’ 조성 프로젝트 때문인데요. 골프장도 5년 뒤인 1994년 문을 닫으며 서울숲 내 가족공원으로 변신했습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이때의 모습은 1980년도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에 잠깐 등장하는데요. 삼표래미콘 공장 부지 뒤에 예전 경마장의 모습, 보이시나요? 이제 이곳은 서울숲 구석에 승마협회와 말을 보관했던 터만이 남아있습니다. 삼표래미콘 공장 부지도 서울숲 확대 사업에 따라 새 보금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성수동이 ‘힙스터의 성지’로 변신한 이유

성수동의 역사 속에는 ‘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성수는 바로 자칭, 타칭 ‘민자 1호 산업단지’로 불릴만큼 거대한 중소기업의 요람이었습니다. 성수동이 지금 힙한 지역으로 불리는 이유도 바로 이 공장단지를 허물지 않고 개조해 개성있는 거리를 만들었기 때문인데요. 과거 성수동에 유독 공장이 많았던 이유는 바로 3공화국 정부가 “공업화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며 을지로, 종로 등 도심과 가까운 성수에 공장 밀집 지역을 조성했기 때문입니다. 6.25 전쟁 직후 채소밭이었던 이곳은 직원수 5~30명 정도의 제조업체 2,900여개가 옹기종기 모여 둥지를 틀었습니다. 50년간 밤낮없이 기계가 돌아가고 공업단지 주변에 아파트들도 들어서며 일종의 ‘성수 공단’으로 변모하게 되죠. 당시 이곳에 입주한 공장들은 “상업시설과 주거시설이 혼재돼있어 서울에서 제조업하기 이만한 곳도 드물다”, “다리만 건너면 강남이고 강변북로 내부순환로가 근접해 교통이 좋다”는 이유로 성수 공단의 장점을 꼽았습니다.





하지만 70년대 말 구로공단, 반월공단이 생기며 기계공장 철공소 등이 하나둘 성수동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비싼 인건비과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서 였는데요. 당시 공장 부지의 분양가는 구로동보다 10~20% 비싼 평당 450~500만원선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시절 성수동에는 전국민이 가슴아파했던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습니다. 94년 10월 뚝섬과 압구정을 잇는 성수대교가 빗속에서 처참하게 무너진 사건인데요. 수십명의 귀한 생명을 앗아간 성수대교 붕괴참사는 당국의 근시안적 설계와 형식적인 안전점검, 땜질식 사후관리가 빚은 엄청난 인재였습니다. 성수대교가 서울시내 15개 교량 중 공단지대였던 성수와 의정부 방면으로 향하는 대형 화물차량이 가장 많이 이용했던 다리였던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진단됐었죠. 성수대교는 이후 97년 다시 복구돼 무게 43.2톤까지 통과할 수 있는 1등교로 개선돼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조금씩 사람들이 사라져가며 생기를 잃어가던 성수공단에 다시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90년대 후반부터입니다. 실리콘밸리 열풍과 함께 성수에도 벤처기업이 속속 입주했기 때문인데요. 을지로 등에서 넘어온 인쇄업체와 알짜 중견제조업체도 속속 입주하며 성수는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가 섞인 ‘도시형 밸리’로 변신했죠. 공장의 외형도 ‘아파트형 공장’으로 변신하며 기존 2층, 3층에서 10여층 규모로 높이 올라갔습니다.



땅의 용도를 보여주는 도시계획 지도에서 주거지는 노랑, 상업지는 빨강, 공공시설은 파랑, 녹지공간은 초록색, ‘준 공업지역(공업+주거)’은 보라색을 띄는데 서울의 보라색 동네는 딱 세군데, 영등포·구로·성수였습니다. 성수는 이 중에서도 민간의 주도로 변화가 이뤄지는 가장 활력있는 도시였습니다.



두 번의 굴곡을 겪었던 성수는 또다시 새로운 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기존 성수에 있던 ‘테크노’, ‘제지’ 등 벤처, 인쇄 기술들이 떠나면서 빈 공장부지가 복합문화공간 개조되는 등 젊은이들이 창업 열풍을 일으켰기 때문인데요. 이들의 자생적인 노력으로 낡고 칙칙했던 성수는 조금씩 반짝이고 트렌디한 핫플로 변해갔습니다. 커피계의 애플로 불리던 ‘블루보틀’도 상업의 중심인 강남이 아닌 성수에 1호점을 낸 일이 대표적이죠. 상점들은 공장과 상가의 외관은 그대로 유지한 채 독특한 아이디어로 내부를 개조해 골목의 편안한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냈습니다. 대림창고, 어니언 등이 대표적입니다. 지금 성수동을 가보면 80년대의 낡은 골목을 걷는 듯 하지만 홍대, 연남동에 온 듯한 묘한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공신닷컴, 마리몬드 등 신생기업과 큐브 엔터테인먼트 등 연예기획사도 이곳에 둥지를 틀며 조금씩 도시의 색깔을 바꿔내고 있습니다.



■가파른 집값 상승세, 성수동의 비상

노후화되는 공장과 마찬가지로 주택도 낡아가던 성수동은 뉴타운 후보지로 거론되다가 2007년 서울시의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으로 ‘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됩니다. 당시 서울시는 전략정비구역 5개곳과 유도정비구역 5개곳을 한강변에 지정했는데요. 추후 성수동만 제외하고 나머지 9곳이 모두 중도 취소되는 바람에 성수동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진행되는 사업으로 희소성이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한강 르네상스의 포문을 열었던 갤러리아포레는 한화건설이 갤러리아백화점의 고급 이미지를 차용해 2008년부터 분양한 주상복합 아파트입니다. 최고층 45층, 최고 높이가 172M인 이곳은 처음부터 “현금자산 100억원 이상, 연간 백화점 쇼핑 금액 1억원 이상, 서울옥션(미술품 경매) vip 고객을 주 고객으로 삼았습니다. 게다가 입주자들의 상세를 철저히 숨기는 홍보 전략을 펼쳐 신비로운 고급 아파트 이미지를 챙겼습니다. 2008년 2월 3.3㎡당 평균 4,390만원으로 당시로는 굉장히 비싼 금액이었습니다. 2011년 7월부터 본격 입주하며 당시 펜트하우스 분양가 52억원은 10년간 분양가 1위를 기록했다고 하죠. 외부는 요트의 돛을 콘셉트로, 외벽은 유리창으로 구성했고 남산타워와 여의도 63빌딩까지 보이는 완벽한 남향으로 설계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갤러리아포레는 10억 이상의 호가를 불러도 매물이 없을 만큼 성공적으로 분양을 마쳤습니다.





2007년 지정된 성수전략정비구역은 전체 53만399㎡ 면적을 4개 지구로 나눠 추진하기 시작합니다. 2009년 제1종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되며 아파트 총 8,200여가구에 최고 50층까지 건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게 됐죠. 당시 성수동 개발 조감도를 보면 좌측의 트리마제를 시작으로 오른쪽 한강변에 높은 건축물들이 나란히 들어선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건축심의 단계에서 막히며 개발이 멈춰섰다가 2011년 지구단위계획이 변경되면서 4개 지구 각각 개별 정비구역으로 재지정 됐습니다.

사업 난항으로 무산됐던 용산 개발과 달리 성수전략정비구역은 아주 느린 속도로 사업을 진행해오다 2016년 8월 트리마제 입주와 함께 사업성이 높아지며 정비사업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무려 13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요. 지난해 가장 난항이 컸던 성수2지구는 조합설립 동의율 75%를 돌파하며 일몰제 우려도 점차 걷히고 있죠. 또다시 커진 사업 기대감에 성수3지구에 속한 청구강변아파트는 31평 18억으로 1년 사이에 비해 5억이 올랐고, 트리마제 옆 강변 건영아파트는 2016년 28평에 6억이었던 집값이 최근 13억원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성수동은 집값 뿐 아니라 땅값도 상승세를 보이며 지난해 국토부가 발표한 표준지 공시지가가 연 평균 20% 이상 오르기도 했습니다.



갤러리아포레와 함께 성수의 몸값을 이끈 트리마제는 성수전략정비구역에 포함됐지만 원래는 지역주택조합이었습니다. 조합원들이 꼬박꼬박 땅을 사서 모아 조합설립인가를 얻었고 ‘서울숲 두산위브’란 이름까지 만들었었죠. 하지만 막판에 토지 매입이 순조롭지 않았고 사업이 지연되면서 늘어나는 금융비용 때문에 결국 사업부지가 공매로 날아가 버리게 되었습니다. 지주와 조합원들은 사업부지에 대한 권리를 잃고, 분양권도 사라지게 됐던 안타까운 일이었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산중공업이 사업부지에 대한 소유권을 갖게 됐고, 택지를 비싸게 매입하며 고급 아파트를 모티브로 고가 분양을 시도했습니다. 두산중공업이 시공하고 2014년 한양개발이 분양한 트리마제는 평당 3,900만원이란 높은 가격 때문에 169세대가 미분양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매수돼 2017년 완판됐고, 지금은 성공적으로 거래되고 있는 사연 많았던 아파트입니다.

말과 함께 조선시대부터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고, 공단과 주택이 들어서며 복합산업단지로 이용되다 서울숲, 초고층 빌딩 개발과 함께 이젠 ”돈 없으면 못가는“ 지역이 된 ‘성수동’. 10년, 20년 뒤 개발을 마친 성수동은 지금과 또다른 어떤 매력을 우리에게 보여줄까요?

/기획 및 제작=정수현·이종호 기자 value@sedaily.com

/촬영=차현진 인턴기자 ckguswls3@sedaily.com

/영상그래픽=김세림 인턴기자 tpfladudy@sedaily.com

/정수현 valu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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