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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인문학] 150년전 박해 피해온 신자들 염원 간직한 '성당 지킴이'

■나무로 읽는 역사이야기-원주 용소막성당 느티나무

강판권 계명대 교수·사학

병인박해 아픔겪은 가톨릭신자들

원주~제천 전전하다 용소막 정착

주위에 고유의 느티나무 심은 건

서양-한국의 융합 의미 담겼을것

지금은 惡氣막는 장군들처럼 당당

사제관 옆 전나무도 건강미 물씬

강원도 원주 용소막성당의 정면 모습




나무는 인류가 가장 이른 시기에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던 존재다. 인류가 자신과 다른 대상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자신보다 위대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류가 지금도 나무를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여전히 나무가 인간에게 위대한 존재라는 뜻이다. 인류가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나무 외에도 아주 많지만 나무는 그 어떤 믿음의 대상보다 위대하다. 나무를 믿음의 대상으로 삼으면 어떤 분쟁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으면 아주 많은 분쟁이 일어난다. 우리나라에 가톨릭이 들어올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믿음 때문에 희생됐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는 가톨릭 성지가 적지 않다. 강원도 원주시도 그중 한 곳이다.

원주에 가톨릭 신자가 들어온 것은 지난 1866년 병인박해 때문이었다. 가톨릭 신자들은 처음 신림면 황둔에 머물다 충청북도 제천군 송학면의 오미로 옮겼다가 원주시 신림면 용소막으로 이동했다. 1904년 설립한 용소막성당은 1898년 1월13일 설립한 공소에서 출발했다. 풍수지리로 용의 발톱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한 용소막성당은 풍수원성당·원주원동성당과 함께 강원도를 대표하는 가톨릭 성지다. 가톨릭 성지에서는 서양 중세 건축의 아름다운 성당 덕분에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지만 오랜 세월 성당과 함께 살고 있는 나무를 만나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용소막성당 주위에 있는 다섯 그루의 느티나무.


얼마 전 10년 만에 용소막성당을 찾았다. 10년 전에는 동문들과 함께 답사하느라 나무를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10년 전 용소막성당에서 만났던 소나뭇과의 늘푸른큰키나무 잣나무의 아름다운 모습을 추억하면서 성당에 도착하니, 평일 탓도 있었겠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 사람도 없었다. 주변의 차 소리만 아니었다면 정말 적막강산의 성당 분위기였다. 마스크를 쓰고 조심스럽게 성당 주변의 나무를 살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나무는 다섯 그루의 느티나무였다.

느릅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느티나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우주목이다. 서양의 종교를 대표하는 가톨릭 성당을 한국 원산의 느티나무가 보호하고 있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무를 보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보인다. 나무를 선택할 때도 자신의 철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용소막성당에서 느티나무를 심은 것은 단순히 느티나무가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라서가 아니라 느티나무를 통해 서양과 한국의 융합을 추구하고자 하는 뜻을 담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설령 성당 담당자들이 그런 뜻을 갖고 느티나무를 심지 않았더라도 나는 그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용소막성당의 느티나무 다섯 그루의 큰 특징은 모두 뿌리가 밖으로 나와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용소막성당 느티나무의 이 같은 현상은 성당에서 나무를 잘 관리하고 있다는 증거 중 하나다. 대부분의 나무는 한곳에 오래 살다 보면 비바람을 맞아 뿌리가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밖으로 나온 뿌리를 흙으로 덮어주지 않으면 나무가 자라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나무에게 뿌리는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와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뿌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나무의 삶은 위태롭다.



용소막성당의 느티나무 다섯 그루는 방역의 주체다. 성당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다섯 그루의 느티나무는 마치 악기를 막고 있는 사찰의 사천왕처럼 코로나19를 막고 있는 장군 같았다. 나는 용소막성당의 느티나무 다섯 그루를 성당 지킴이와 같은 마을숲이라 생각한다. 마을숲은 코로나19 시대에 한국인의 안전에 아주 중요하다. 용소막성당의 느티나무 다섯 그루도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의 발생원인 중 하나가 숲의 제거라면 한 그루 나무를 방역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아주 중요한 인식이다.

용소막성당 사제관 앞 잣나무와 전나무들.


그런데 나무를 방역 차원에서 인식할 경우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나무를 방역의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생태의식이다. 내가 용소막성당의 느티나무를 방역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방역의 수단으로 여긴다는 뜻이 아니라 나무를 인간처럼 생명체로 인식하자는 뜻이다. 나무가 건강하게 살아가야만 나무를 방역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용소막성당 옆 사제관 앞에는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잣나무가 네 그루, 소나뭇과의 늘푸른큰키나무 전나무가 다섯 그루, 소나무가 세 그루, 측백나뭇과의 늘푸른큰키나무 편백나무가 한 그루 살고 있다. 이곳의 나무들도 모두 사제관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성당을 바라보니 느티나무 다섯 그루 아래 나의 나무 이름인 ‘쥐똥나무’ 울타리가 눈에 들어왔다. 잎이 거의 떨어진 쥐똥나무에는 열매가 거의 없었다. 봄에 비가 많이 내려 꽃이 제대로 피지 않았거나 꽃이 피었을 무렵 비가 자주 내려 수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삶은 언제나 부침과 굴곡이 있다. 나무는 절대 지난 시간을 아쉬워하지 않고 오로지 다가올 시간을 치열하게 준비한다.

강판권 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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