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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경기 꺾이는데 재고만 146조···수출까지 발목 잡힐 수도

■공급망 쇼크에 기업 재고 비상

하반기 경기둔화 기류…8월 재고율 15개월來 최대폭 상승

美 성장 전망 하향·中 기업 부채 등 불확실성 갈수록 커져

취득원가 높아진 채 '재고 잠김' 땐 자산 평가손실 가능성





기업 입장에서 재고는 양날의 검이다. 재고를 늘린 후 전방 산업이 호조세를 띠면 기업들은 기존보다 더 높은 매출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재고를 쌓은 후 경기가 꺾인다면 그간 축적된 재고자산은 악성 재고로 돌아와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 국내 기업들이 최근 1년간 재고 지출을 급격히 늘린 것도 코로나19 확산 이후의 경기회복을 겨냥해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시장의 전망대로 글로벌 경기가 활황을 보여 재고 증가세가 매출 상승으로 연결됐다. 매출 상위 50대 코스피 상장 제조 업체들의 지난 2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2.8% 늘어 재고자산(11.2%)보다 높은 증가율을 나타냈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마비,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 확대, 그린플레이션 우려 등이 맞물리면서 적정 재고 사이클을 가늠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골드만삭스도 10일(현지 시간)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5.6%로 일주일 만에 또다시 하향 조정하는 등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이처럼 경기 위축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재고 출하까지 둔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기업들이 그간 쌓아온 재고자산이 재무 악화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11일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코스피 상장사 중 매출 상위 50개 제조 업체의 재고자산 총계는 145조 9,55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조 7,039억 원(11.20%) 늘었다. 업종을 막론하고 국내 주요 제조 업체에서 전반적으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6월 말 삼성전자의 재고자산은 총 33조 5,924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3.31% 불어났다. LG화학(44.68%), SK하이닉스(7.09%), 현대모비스(12%), LG디스플레이(33.51%), 삼성전기(17.99%) 등 다른 주요 제조 업체들도 1년 전보다 재고가 증가했다.

국내 제조 업체들의 재고자산이 늘어난 요인은 크게 재고량과 취득 가격으로 나눠서 볼 수 있다. 재고자산은 재고량에 원가를 곱해서 산출한다. 우선 고객사의 수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원재료·완제품 재고량이 늘어났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글로벌 경제를 뒤덮었던 코로나19 확산세가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힘입어 국내 주요 반도체·화학·철강·전자부품·자동차부품 기업에 고객사들의 주문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펜트업(pent-up) 수요로 물류대란이 불거지면서 제품이 제때 출고되지 못해 재고자산이 늘어난 사례도 빈번했다. 한 기계 제조 업체 관계자는 “우리 회사의 경우에는 수출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달하는데 선박을 잡기가 어려워 제품 계약분을 해외에 인도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말했다.

폭발적인 경기 반등세가 역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불확실성을 부추기면서 선제적으로 원재료를 쌓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외부 환경을 예측하기 어려워지다 보니 필요한 재고량보다 더 많은 재고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원자재 인플레이션도 재고자산 증가로 이어졌다. 정유 업체가 대표적 사례다. 에쓰오일의 2분기 재고자산은 전년 동기 대비 67.01%, SK이노베이션은 53.4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이 87.09%나 상승하는 등 유가가 급등세를 보이면서 재고자산 취득 원가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재고자산 증가는 유가 상승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재고자산 증가가 매출 상승과 맞물려 돌아갔다. 실제로 코스피 매출 상위 50개 제조 업체들의 평균 재고자산회전일수는 지난해 2분기 65.11일에서 올해 2분기 50.30일로 줄어들었다. 재고자산회전일수는 재고가 매출화되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이 수치가 작을수록 제품이 팔리는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다.

문제는 하반기 들어 이 같은 재고 순환에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제조업 재고율은 8월 112.3%를 기록하며 전월보다 8%포인트 늘어났다. 지난해 5월(8.8%포인트) 이후 15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이다. 재고율이 높을수록 출하되는 재고보다 기업 창고에 쌓이는 재고가 많다는 의미다.

김성노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보기술(IT), 자동차, 철강, 화학 등 주요 제조업을 중심으로 출하 둔화와 재고 증가가 진행되고 있다”며 “재고순환지표 둔화는 일반적으로 주가 조정의 신호로 인식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공급망 차질 장기화와 중국·인도 지역의 전력난, 중국 부채 리스크 등이 이어지면서 글로벌 경기가 꺾일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7일 발간한 ‘10월 경제 동향’에서 “자동차 등 일부 업종의 중간재 불안 및 물류 차질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의 통화정책과 중국 기업 부채에 대한 우려로 대외 여건에 대한 하방 위험도 확대되면서 향후 제조업 개선세를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기업들의 재고 출하가 지난 상반기보다는 원활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간 쌓인 재고자산이 기업들의 재무 리스크로 등장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재고가 원활하게 팔리지 않을 경우 기업들이 보유한 재고자산이 악성 재고가 돼 창고에 묶일 수 있다. 원자재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재고를 쌓아왔다는 점도 향후 기업들의 원가 관리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잠재적으로는 원자재 가격 시장 변동으로 현재 기업이 보유한 재고자산의 시장 가치가 떨어져 평가손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한 회계법인의 재무 담당 임원은 “재고자산 증가는 기업의 돈이 잠기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현금 흐름 측면에서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며 “제품 판매 단가가 떨어져 재고 공정가치보다 취득 원가가 높아진다면 재고 자산 평가손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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