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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유대인 추방·유배는 허구"···이스라엘 신화를 해체하다

■만들어진 유대인-슐로모 산드 지음, 사월의책 펴냄

"2,000년 유랑 서사 앞세워

단일민족 우월성 강조 유대인

출애굽 등 역사적 근거 없고

폐쇄성·폭력성 정당화" 지적

'팔레스타인도 같은 뿌리' 등

유대인 저자의 도발적인 주장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도 경종

이스라엘인들이 지난해 5월 예루살렘에서 '예루살렘의 날'을 축하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예루살렘의 날'은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승리로 동예루살렘을 차지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EPA=연합뉴스




지난해 한 스포츠 선수의 사연과 함께 이스라엘의 독특한 결혼 제도가 화제가 됐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이스라엘에 최초의 체조 금메달을 안겨 준 아르템 돌고피아트가 정통 유대인으로 인정받지 못해 자국 땅에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우크라이나 이민 가정 출신인 그는 유대인 할아버지를 둔 이스라엘 시민이지만, 어머니는 유대인이 아니다. 모계가 유대인이어야 정통으로 인정받는 유대인 종교법 ‘할라차’와 종교인이 주재하지 않는 민간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이스라엘 결혼법에 따라 그와 같은 처지의 이스라엘 시민은 나라 밖에서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 돌고피아트처럼 국가가 ‘비유대인’으로 구분하는 시민은 이스라엘 인구의 4분의 1에 달한다. 견고한 종족주의가 부추기는 내부 불평등과 배제의 정치, 정복과 전쟁으로 얼룩진 폭력적 패권주의는 그렇게 지금 이 순간도 정당화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이 견고한 정체성을 떠받치는 뿌리에는 다음과 같은 서사가 존재한다. ‘한 유목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해 신이 약속한 땅에 유다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는데, 이후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제국의 침공을 받아 포로기를 경험한다. 이후 이들은 다시 예루살렘을 건설하지만, 로마의 지배 하에 고향 땅을 빼앗기고 추방된다. 2,000년 동안 세상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수많은 핍박에도 정체성을 지키며 살다가 마침내 신이 약속한 땅 이스라엘에 모여 유대인의 나라를 건설한다.’ 이스라엘 국민들, 특히 유대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이며 2,000년의 유랑 생활에도 이방인에 통합되거나 동화되지 않았다는 믿음으로 단일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신간 ‘만들어진 유대인’은 유대 민족의 근간을 이루는 이 ‘신성한 서사’에 메스를 들이대고, 더 나아가 그것이 완전한 허구임을 주장하는 도발적인 책이다. 폴란드계 유대인이자 이스라엘인인 저자가 단일 종족이라는 이스라엘 신화를 해체하는 작업에 나섰다. 2008년 히브리어로 출간된 이 책은 ‘외국어로 가장 많이 번역된 이스라엘 역사서’로 명성을 날리게 됐다. 한국 번역으로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책은 유대 역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추방과 유배’에 ‘허구’라는 진단을 내린다. 저자는 수많은 역사적 기록을 추적한 끝에 출애굽은 존재하지 않았던 사건이며, 기원전 6세기 신바빌로니아에 정복당한 유대인이 바빌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바빌론 유수’는 극히 일부 엘리트 지배층에 국한된 사건이었으며, 기원 후 유대전쟁이 끝난 후 로마인들이 주민 전체를 강제추방한 일이 없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유대인들이 오늘날 이스라엘 땅에서 강제로 추방 당한 역사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추방과 유배만큼 유대 민중 역사에서 중심적이고 근본적인 사건도 없기에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수없는 탐사를 통해 연구가 이루어졌을 것”이라며 “놀랍게도 그런 작업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고, 역사적 실체는 토론이나 의심할 필요도 없는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고 꼬집는다.



유대인이 배척하는 팔레스타인인이 실은 유대인과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과격한 주장도 펼친다. 이스라엘 국가 수립 이전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아랍인들이 7세기 무렵 아랍인의 팔레스타인 점령 후 이슬람으로 개종한 유대 농민의 자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 중동 역사학자의 연구를 들어 ‘팔레스타인인은 인종적으로 볼 때 다른 어떤 민중보다도 유대인과 가까운 친척 관계’라는 점을 초기 유대 민족주의자들도 인정했다고 강조한다.

단일하고 확고한 실체로 거듭나기 위해 만들어낸 집단의 기억은 오늘날 신앙보다 강력한 유대인의 정체성을 빚어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회를 굳건하게 지탱해 온 이 역사적 신화는 이제 이 사회의 붕괴를 초래하고 있다. 저명한 학자들이 나서 시민의 법적 자격을 유대인에 국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가 하면 유대인의 유전학적 특징과 동질성을 입증하려는 유사 과학적 시도까지 벌이고 있다. 저자는 이 같은 빗나간 정체성 강화는 유대인을 이웃으로부터 단절시킬 뿐이며 무력으로 다른 민중을 지배하려는 이스라엘의 군국주의적 정책과 맞물려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책은 수백 페이지에 걸쳐 ‘발명된 민족 유대인’과 ‘만들어진 신성한 역사’를 낱낱이 파헤친다. 그리고 이 해체 작업은 비단 이스라엘 유대인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신화를 사실로 만들고 정치적 도구로 이용해온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사실로 둔갑한 허구’를 써 내려가며 폭력과 배제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방대한 역사 자료에 근거한 탄탄한 분석은 이스라엘의 가장 큰 금기에 도전한 저자의 용감한 시도를 더욱 빛나게 한다. 3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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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부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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