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신흥국 증시가 경쟁적으로 고점을 갱신하며 랠리를 지속하고 있지만 개인들의 소비증가로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왔다. 증시 활황기에는 자산이 늘어난 개인이 소비를 늘리는 '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나타나기 마련이지만 최근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는 이러한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4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신흥국들의 주가지수를 종합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이머징아시아지수는 올 들어 전 세계 MSCI 지수의 세 배 정도인 12.7%나 상승했지만 해당 국가의 소비 증가세는 미미하거나 오히려 지난해 수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경우 1·4분기 상하이종합지수가 16% 가까이 올랐지만 이 기간 소매판매는 전년동기 대비 10.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는 매년 같은 기간 대비 9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국과 싱가포르 증시도 10% 넘는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지만 소비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오히려 각각 5.7%, 7.4% 하락했다.
주가상승에도 이처럼 신흥국 소비증가가 부진한 것은 부의 효과를 상쇄해버리는 낮은 임금 상승률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HSBC가 지난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 신흥국들의 평균 실질임금 상승률은 지난 2013년 3.3%에서 지난해 2.0%로 뚝 떨어졌다. HSBC는 "낮은 임금 상승률은 가계가 임금소득에 의존해서는 실제 소비를 늘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특히 홍콩과 필리핀 근로자들은 지난해 구매력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중국증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올랐지만 (부의 효과와 관련해서는) 의미 없는 통계가 돼버리는 흥미로운 사례마저 발생했다"고 꼬집었다.
특히 중국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낮은 증시 비중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경제 규모에 비해 주식시장 규모가 작다 보니 주가가 올라 소득이 늘어도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국가별 GDP 대비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을 보면 중국은 상하이시장 기준으로 38.4%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 뉴욕시장은 GDP 대비 135.4%로 중국과 큰 차이를 보인다. 또 중국은 홍콩시장과 선전시장을 합산해도 GDP 대비 74.3%로 뉴욕과 나스닥의 178.9%는 물론 한국(코스피+코스닥)의 82.1%와 비교해도 작은 규모다. HSBC는 "주가상승은 미래소득에 대한 기대를 증가시키지만 투자를 늘리는 대신 가계의 현재 소비를 감소시키는 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개미투자가 몰리고 있지만 본토 투자자들의 증시 참여율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것도 중국의 주가상승이 소비로 연결되지 않는 원인으로 분석됐다. 리처드 제럼 싱가포르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슈퍼 부자가 아닌 일반투자자들이 수백만개의 신규 계좌를 열며 주식 투자를 시작했지만 이들의 수익금 총액이 얼마인지는 의문"이라며 "만약 지난해 대략 15조위안의 수익금이 발생해 그 중 5%를 소비한다고 가정해도 63조위안(중국 2014년 총 GDP) 규모의 경제에서 1조위안도 안 되는 돈으로는 소비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과 홍콩 증시는 국내투자자의 주식 소유, 고른 지분 분포 등으로 긍정적이라고 HSBC는 평가했다. 한국증시의 시가 총액은 GDP에 비해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지만 다양한 금융상품이 많아 증시상승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올 초부터 18.75% 오른 홍콩증시에는 저평가된 주식을 찾아 중국 본토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