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의 지향점도 문제지만 내용 자체부터 틀렸다. 히틀러의 나치는 결코 조용하게, 부작용 없이 바이마르헌법을 무력화하지 않았다. 아소 부총리가 말한 독일 수권법(전권위임법)은 주요 야당의 의회출입을 봉쇄하는 강압적 분위기에서 만들어졌다. 수권법 제정 직전에는 제국의회의사당에 불을 질러 공산당 소행으로 몰아붙이는 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폭력과 조작으로 일관한 수권법을 '소리 없는 개헌'으로 여긴다니! 역사책이나 제대로 읽어보기 바란다. 수권법으로 독재를 굳힌 히틀러의 독일이 걸었던 파시즘과 패망을 일본도 따르고 싶은 것인지도 묻고 싶다.
△독일과 일본은 닮은 점이 적지 않다. 규율과 질서를 중시하는 풍토가 그렇고 카메라렌즈에서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제조업의 강국이라는 점이 그렇다. 1854년 개항 직후 세계를 모델로 삼아 미국의 기업경영과 영국의 해군, 프랑스의 법률과 육군을 배우려던 일본이 보불전쟁(1870년)에서 프로이센 승리를 목도한 뒤 벤치마킹 대상을 독일로 바꾼 이래 두 나라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공교롭게도 양국은 2차 대전을 일으킨 주축국의 핵심이자 전범국가다.
△의회의 입법권을 행정부에 넘겨버린 수권법으로 이상적인 법체계로 평가 받던 바이마르헌법의 붕괴와 독일의 전체주의화를 방조하고 도와준 나라가 미국이다. 히틀러의 군수공장들도 소련을 견제하려는 미국 자본으로 세워졌다. 오늘날의 역사도 비슷하게 흐르는 분위기다. 전후 독일의 파시즘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던 미국이 유독 일본에는 관대한 것처럼 보인다. 끊임없이 나오는 일본의 침략 미화ㆍ극우 발언에도 미국은 무덤덤하다. 독일의 수권법과 일본 극우세력이 원하는 헌법개정에는 오싹한 공통점이 있다. 국가폭력의 정당화와 군국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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