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묘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급소 일격이다. 아무리 거대한 대마라도 사활의 급소를 찔리면 그대로 맥없이 주저앉게 마련이다. 그것도 완승 태세였다가 허망하게 패하는 박영훈은 실로 통분한 입장이 되었고 한 순간에 천국이 지옥으로 화한 것이다. 흑13으로 버티어 보지만 이미 상황이 종료되었음을 쌍방이 알고 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해설 담당 한철균은 계속 혀만 끌끌찼다. 흑13으로 참고도의 흑1에 막으면 어떻게 될까. 백4로 끊겨 우변의 흑대마가 속절없이 잡힌다. 흑5로 공격해 보아도 백6 이하 12면 포위망이 뚫릴 것이다. 사실은 급소 일격을 당한 그 순간에 돌을 던져야 마땅했다. 유일한 저항이라면 실전의 진행과 같이 수상전을 벌여 보는 것. 그냥 돌을 던지기가 너무도 억울해서 박영훈은 일단 그 수순을 밟아 본다. 해답은 미리 나와 있다. 1수 늘어진 패. 게다가 흑이 쓸 수 있는 팻감이 도무지 없다. “상변을 모조리 잡으면 계가가 아닐까요?” 한철균이 묻자 서봉수가 고개를 흔든다. “다 잡아도 흑이 져. 늘어진 패니까 백이 잡히지도 않고….” “돌을 던지는 게 시간 문제군요.” “가는 데까지 갈 거야. 사람의 심리가 묘해서 이런 경우에는 돌을 던지기가 쉽지 않아. 오타케 히데오(大竹英雄)처럼 탈속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런 식으로 무너지면 다음 판에도 나쁜 영향이 있을 것 같아요.” “만약 다음 판을 영훈이가 이긴다면 정말 알아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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