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실명제 등) 인터넷 관련 정책을 '국내용'으로 접근해선 안됩니다. 인터넷에 대한 개념을 정립할 때 전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전길남(68ㆍ사진) 게이오대 교수(KAIST 명예교수)는 지난 10일 고려대 법학연구원 혁신ㆍ경쟁ㆍ규제법센터(ICR센터) 창립 1주년 기념행사 특강에서 "인터넷 실명제 등은 글로벌한 개념이 아니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규제에 대해서도 "중동의 재스민 혁명이나 지난 10월 터진 영국 폭동의 전파를 막기 위해 집권층에서 인터넷을 통제하고 싶어 했지만 기술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SNS를 통제하려고 고민하기보다 인터넷에 대한 사회적 합의(consensus)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이어 "인터넷 규제라는 주제를 놓고 과학ㆍ법률ㆍ인문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국제 심포지엄 등을 열어 사회적인, 그리고 글로벌한 합의점을 우리가 도출해 낸다면 한국은 선진국과 후진국을 연결할 수 있는 인터넷 허브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전세계 정부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 교수는 "인터넷을 혁명이라고 본다면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10년 안에 데이터ㆍ웹ㆍ네트워크 공학(science) 등이 새로운 학문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데이터 공학은 최근 인터넷 데이터의 90%를 차지하는 동영상이 네트워크에 심각한 병목현상을 초래하면서 주목을 끌고 있다. 전 교수는 인터넷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대책 수립도 강조했다. 그는 "해킹을 통한 사이버 공격 등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며 사이버 전쟁은 핵전쟁에 버금갈 정도로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한 뒤 "사회간접자본(SOC)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하는 수단이라면 인터넷도 기술중심이 아닌 인간중심의 환경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인터넷 인구가 현재 약 20억명에서 10년 뒤 50억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을 소개한 뒤 "인터넷은 이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통신망이 아니라 없어서는 안될 SOC, 특히 전세계가 연결돼 있는 글로벌 사회의 필수 SOC"라고 지적했다. 미래 인터넷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비포장 도로가 고속도로로, 흑백TV가 고화질TV로 끊임없이 발전해왔듯이 전세계인이 사용할 수 있는(sustainable) 인터넷을 만들기 위해서는 취약한 보안, 느린 모바일 속도 등 개선할 점이 산더미"라면서 "미국ㆍ일본ㆍ유럽 주요 나라들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누구도 주도권을 쥐지 못한 상태다. 서구 중심의 인터넷이 정답이 아닌 이상 한국도 더 늦기 전에 중장기적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오사카대 전자공학과(학사)와 미국 UCLA(시스템공학 석ㆍ박사)를 졸업한 뒤 록웰인터내셔널 컴퓨터시스템 디자이너 등으로 일하다 박정희 정부의 러브콜을 받고 1979년 귀국해 전자기술연구소(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컴퓨터시스템개발부장을 몸담고 있던 1982년 경북 구미 전자기술연구소와 서울대 중앙컴퓨터 간 유선 네트워킹에 성공,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미국의 기술보호로 네트워크 핵심 부품인 라우터를 들여오지 못하자 소프트웨어적으로 그 기능을 구현한 덕이다. 이후 KAIST 전산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2008년 정년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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