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에게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 용돈을 주기로 했다. 한 권을 읽으면 얼마를 주는 식이다. 처음에는 읽더니 책의 두께가 갈수록 얇아지고 빨리 읽을 수 있는 만화책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지금은 이런 약속을 하지 않는다. 내재적 동기유발 없이 돈으로만 해결하려 한 것이 좋은 방법은 아니었던 셈이다.
어느 어린이집의 실험 결과다. 저녁 늦게 아이를 데려가는 경우 금전적 부담을 시켰더니 아이를 늦게 데려가는 부모들이 더 많아졌다. 늦게 데려가면 안 된다는 '규범의 문제'가 돈만 지불하면 된다는 '시장의 문제'로 옮겨 가면서 도덕의식을 무너뜨린 결과다.
현 상황에서 심각하고 중대한 국가 현안 중 하나가 '관세화를 통한 쌀 수입 문제'다. 지난 1986년 세계의 무역자유화를 위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전통적으로 식량은 생존과 관련돼 자유무역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이 많았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농업보조금 전쟁 이후 인식이 바뀌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논리가 지배하면서 쌀을 포함한 농산물도 자유무역 대상이 됐다.
최근에는 개별국가 간에 맺어지는 자유무역협상(FTA)을 통해 농산물에 자유무역이 촉진되고 있다. FTA 협상이 발효됐거나 타결된 나라 중 미국·캐나다·호주·EU 등은 전통적으로 농산물 수출국이다. 나머지 칠레·페루·터키 같은 나라는 농축산물이나 광물자원을 주로 수출한다. 달리 해석하면 우리나라는 전자·자동차 등 '금전적 분야라 할 수 있는 제조업 지원'에 주안점을 두고 있고 상대 국가는 농업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규범과 같은 생명산업 육성'에 더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느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때 삼성전자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일본 소니도 현재 수조원의 적자기업으로 전락했다. 제품수명 주기처럼 성장기를 지나면 언젠가 침체기에 이를 수 있다. 이때를 대비해 농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배가 고프다고 식량 대신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를 뜯어 먹고 살 수는 없다. 농업을 살리는 것은 곧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농업·농촌·농업인에 대한 생각은 금전적으로만 접근하는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사회적 규범'이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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