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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후퇴.변질 조짐
입력1999-02-02 00:00:00
수정
1999.02.02 00:00:00
- 신관치-정치-지역주의 맞물려 차일피일구조조정작업이 후퇴, 변질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관치와 정치, 지역주의 등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금융 기업구조조정을 파장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영국과 뉴질랜드의 구조조정작업이 10년 가까이 걸리고 남미국가들이 잠시의 구조조정 성과에 자만하다 연거푸 경제위기에 빠졌다. 이같은 현실을 볼 때 최근 상황을 방치할 경우 우리 경제가 다시 어려워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충북은행 처리는 구조조정 원칙이 지역정서와 정치논리에 얼마나 무기력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충북은행은 지난해 적자규모가 2,426억원에 달해 자기자본이 마이너스 608억원으로 완전 잠식된 부실은행이다.
퇴출되거나 합병명령 등을 통해 정리돼야 할 형편이고 지난해 9월말까지 1,200억원을 증자하겠다고 약속하고도 이를 이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금감위는 증자시한을 또다시 연장해 주며 처리를 미루고 있다. 이 지역의 유일한 지방은행이 문을 닫아서는 안된다는 지역정서와 이를 의식한 공동여당인 자민련의 개입 때문이다.
자민련 의원들은 지난 1일에는 충북은행 경영진들을 대동하고 금감위를 방문했고 지난 1월 27일 청주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충북지역 경제활성화를 위한 긴급대책회의」에 금감위 당국자를 불러 충북은행의 증자시한을 연기해 주도록 압력을 가했다.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대형 시중은행인 조흥은행은 합병등 경영정상화 계획을 이행치 못해 행장을 포함한 경영진이 전격 교체되고 「신탁통치」에 가까운 수모를 당했다.
이런 판에 파급효과도 미미한 일개 지방은행이 정치권에 기대어 금융구조조정의 형평성을 마구 흔들어버리는 셈이 됐다. 이바람에 정부관계자들은 다른 금융기관들에게 얼굴을 들기 힘들게 됐다.
최근에는 퇴진한 합병은행의 경영진이 후발시중은행의 행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능력은 인정받는 금융인이었지만 부실은행의 경영에 책임이 있는 사람을 재기용하는 것이 온당하냐에 대해 이견이 많았다.
정치권의 인사개입이 관치금융을 낳고 관치금융이 시장경제를 파괴하고 부실대출을 양산해 IMF체제를 불러왔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최근 정부의 금리인하 요청도 대표적인 「신관치금융」 사례로 꼽힌다.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예대마진만을 근거로 은행들이 대출이자율을 낮추도록 강요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총리실, 재경부, 금감위 등 모든 부처가 속내와 관계없이 금리인하 독려에 뛰어들었다.
금융계와 학계는 정부가 입으로는 금융기관이 돈장사 하는 곳으로 「기관」이 아니라 「기업」이라면서도 속으로는 은행을 산하기관 정도로 취급하는 관치적 사고가 여전하다는 점을 보여준 증거라고 꼬집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의 후퇴 변질양상은 보다 복잡하다. 시발점은 정부의 한건주의식 관치발상에서 출발했다. 반도체와 자동차, 전자빅딜을 둘러싼 파열음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가 빅딜에 깊게 개입해 이를 추진, 성사시키는 바람에 이해하기 힘든 양상으로 협상이 꼬여가고 있다. 노사정 합의를 통해 법적으로 정리해고가 가능한 상황에서 빅딜조건으로 100% 고용보장이 예사로 거론되고 있다.
이같은 조건이 수용되면 개별회사 체제일 경우 감원이 가능한 반면 빅딜대상이 되면 감원이 불가능해진다. 결국 빅딜의 긍정적인 효과인 과잉설비의 처분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는 셈이다. 삼성 SM5를 대우가 계속 생산키로 한 것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이처럼 꼬인데는 지역에 기반을 둔 정치행태가 큰 몫을 하고 있다. 내년 선거를 의식한 정치권이 실직에 따른 실업급여 확대, 새로운 생산기반의 유치 등의 생계안정과 지방경제 활성화방안은 별로 고려하지 않고 당장 일자리를 잃게 된 지역민의 불안감을 조장하거나 원상복구만 외쳐대기 때문이다.
자민련은 정부와 현대그룹 관계자들에게 LG반도체공장 직원들의 고용을 향후 5~7년간 보장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구미, 마산 등 빅딜대상업종이 있는 지역을 돌아다니며 빅딜이 현정부의 지역차별 정책인 것인양 선전하고 있다.
정치권의 흔들기가 계속되자 정부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실물경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부양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갖가지 걸림돌이 돌출하자 이미 약속한 구조조정 계획조차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최근 5대그룹은 부채비율만 낮추면 되지 않느냐는 입장으로 전환했다. 기업의 실질적인 내용과는 무관한 자산재평가를 통해 자본금을 늘리거나 물타기식 유상증자로 부채비율만 낮출 작정으로 선회하고 있다. 비주력계열사나 결손 계열사 매각계획은 모두 하반기로 미루는 한편 이를 개선하라는 금감위의 경고에 콧방귀를 뀌고 있다.
정부는 여러차례 참된 구조조정 작업이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해 왔지만 정치권과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을 뚫고 어떻게 이를 관철할 지 묘안이 없어 우왕좌왕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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