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부채뿐 아니라 기업 부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국내 기업의 상반기 실적이 크게 부진한 가운데 부실기업의 차입금 규모가 30% 이상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연말 경기 악화로 금융기관이 자금회수에 나설 경우 곳곳에서 유동성 위기가 터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한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이 9일 발표한 '유로존 위기에 발목 잡힌 국내외 기업 상반기 실적 부진 뚜렷'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부실위험기업의 차입금은 116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88조8,000억원에 비해 30.6% 급증한 것이다.
연구원이 제시한 부실기업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619개의 비금융회사 중 이자보상배율이 1배 이하인 기업을 말한다. 이자보상배율이 1배보다 적으면 영업으로 벌어들인 이익으로 금융비용(이자)조차 지급하지 못하는 부실 상태에 처했음을 의미한다.
이들 부실위험기업 차입금은 분석 대상 상장기업 전체 차입금의 36.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실위험기업의 숫자 비중(26.5%)보다 차입금 비중이 높아 기업 부채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부실기업 부채가 이처럼 증가한 이유는 유럽발 재정위기에서 비롯된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기업의 성장과 수익성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보면 상반기 국내 상장기업의 전년 동기 대비 매출증가율은 3.7%로 지난해 상반기 10.3%의 3분의1 수준에 그쳤다. 영업이익률도 같은 기간 5.3%에서 4.3%로 감소했다.
상장기업의 평균 이자보상배율은 지난해 상반기 4.4배에서 올해 3.0배로 하락했다. 이자보상배율이 1배 미만인 부실위험기업의 비중 역시 22.0%에서 26.5%로 확대됐다.
특히 걱정되는 부분은 1년 이내 만기가 돌아오는 단기차입금에 의존하는 기업이 많다는 점이다. 올해 상반기 단기차입금 비중은 77.1%로 지난해의 78.0%보다 소폭 떨어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이 연구위원은 "올 들어 빠르게 악화한 국내 기업의 실적이 더 악화되거나 상당 기간 부진할 가능성이 크다"며 "원가절감을 통한 내부 효율성을 높이고 금융시장 불안 등 급변사태에 대한 위기 대응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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