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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문화를 키워라] <상> 놀고 있는 문화 인프라

공연장 늘었지만 가동률 '뚝' … 기존 시설부터 제대로 활용하자

지역문예회관 이용률 11% … 대부분 1년에 한번도 안찾아

주민 능동적 참여환경 조성·유휴시설 활용 방안 모색을

'고향유정'을 연기하는 대전의 연극 동아리 대살미생활문화공동체. 풀뿌리 문화 육성을 위해서는 우선 기존 인프라 활용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방문객들이 체험활동을 하고 있는 강원도 영월의 조선민화박물관. 풀뿌리 문화 육성을 위해서는 우선 기존 인프라 활용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전남 장성군에 사는 김순자(67)씨는 지난해 말 몇몇 공연을 관람하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연극 '김유정의 봄봄'과 팝페라 '희로애락'을 2,000~5,000원으로 싸게 관람했던 것. 김씨는 "서울에 사는 딸네 집에 갈 때나 공연을 볼 수 있었는데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연극 '김유정의 봄봄'은 장성군이 지난해 지방 문예회관 특별 프로그램 개발지원사업에 뽑혀 연말 무대에 올릴 수 있었지만 평소 군민들이 제대로 된 공연을 만날 기회는 많지 않다. 군 단위 기초자치단체 대다수의 상황이 비슷하다.

지난해부터 문화계의 핵심 화두로 떠오른 '문화 융성'은 누구나 문화를 경험하고 누리며 즐길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 정부 정책 방향도 누구든 원하는 문화를 선택하고 누릴 수 있게 풀뿌리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풀뿌리 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물적·인적 인프라의 확충도 중요하지만 기존 인프라의 효율적 운영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구축된 인프라부터 제대로 활용을= 문화기반시설은 전체적으로 크게 늘었지만 오히려 이용률이나 가동률이 떨어지고 있는 게 문제다. 지난 2012년 말 현재 문화기반시설은 2,182개로 2005년(1,133개)에 비해 무려 2배나 늘었다. 하지만 문화예술공간 이용률은 2010년 52.2%에서 2012년 39.4%로 크게 줄었다. 지역 문예회관의 연간 이용률은 11.5% 수준에 그쳤고 지역주민이 문예회관 주최 문화행사에 참여한 횟수는 1년에 0.2회밖에 안 된다. 1년에 한 차례도 문예회관을 찾지 않는 지역민이 대다수라는 얘기다.

이렇듯 문예회관을 비롯한 지역 문화시설의 가동률이 떨어지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1,000석 이상의 대형 공연장이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유명 오페라나 뮤지컬 등 양질의 공연들이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수도권에 집중되는 게 1차적인 문제다. 아울러 문화예술 작품을 기획·생산하는 인적 인프라(문화전문 인력)도 수도권에 몰리면서 지역에서 좋은 공연이나 전시를 만날 기회가 적었다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결국 물적·인적 인프라가 부족한데다 충분한 예산 및 인력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지역에 양질의 문화상품이 생산되지 못하는 악순환이 거듭된 것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양혜원 박사는 "그간 정부 주도로 문예회관이나 국공립 박물관을 전국에 건립하고 이를 통해 고급 문화예술을 국민에게 보급하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이는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능력과 자원을 가진 일부 계층에 국한되는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양적으로만 팽창해 유휴 상태에 놓인 지방 문예회관의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 우수한 문화전문 인력을 지역 곳곳에 배치하는 한편 콘서트와 뮤지컬 중심의 프로그램을 다양화할 수 있도록 지역 문화예술단체를 육성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주민 참여 높이고 유휴시설 활용 지원해야='풀뿌리 문화'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들이 적극적·능동적으로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한민호 문체부 지역민족문화과장은 "각 지역 간 특성이 있는 만큼 지역의 고유색을 간직하면서 새로운 시대흐름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살미생활문화공동체(이하 대살미)의 사례는 풀뿌리 문화가 지역주민과 결합했을 때 지역민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전시 중구 중촌동 주민들로 구성된 대살미는 지역의 작은 연극 동아리가 마을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지역 내 문화예술의 구심점이 됐다. 대살미는 중촌동의 옛 이름이면서 '대대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뜻을 가졌다. 10대부터 70대까지 세대를 아우르며 연극을 매개로 교류하자는 차원에서 시작된 연극 동아리는 어느새 정기공연과 초청공연을 하면서 프로 극단 못지않은 명성을 자랑한다. 오홍록 예술감독은 "대살미를 거쳐간 마을주민이 100명을 넘었고 우리가 사는 이야기를 소재로 연극을 만들다 보니 손자와 할아버지가 소통할 수 있는 세대 공감의 장으로 거듭났다"면서 "관계가 단절됐던 이웃들이 연극을 매개로 소통하면서 서로에게 의지하고 위안을 받으며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문화의 사각지대인 농어촌 지역이나 도심 내 폐교나 창고, 버려진 공장, 인적이 끊긴 다방 등을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재활용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폐교(동천초교)를 리모델링해 지난해 말 설립된 후 부산 남구 감만동의 문화 메카로 떠오른 감만창의문화촌이나 평창초교 노산분교 자리에 들어서 지역 내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 감자꽃스튜디오 등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감자꽃스튜디오 대표인 이선철 용인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유휴시설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임대조건을 완화해주는 등 필요한 인프라는 지방자치단체가 깔아주고 문화전문 인력이 지역에 맞는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상생 모델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도삼 서울연구원 미래사회연구실장은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을 계기로 지역문화 브랜드화 전략이 필요하다"면서 "각 지역별로 간직하고 있는 정체성과 고유성을 유무형의 문화상품으로 발현시켜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커뮤니티센터 홀씨 역할 기대=정부가 올해 새롭게 추진하는 복합문화커뮤니티센터 조성사업과 문화가 있는 날 시행, 문화·여행·스포츠이용권을 통합한 문화누리카드 등은 풀뿌리 문화를 확산시키는 홀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복합문화커뮤니티센터는 이른바 '마을문화 사랑방'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폐교나 창고 등 유휴공간과 문예회관 등 기존 문화시설을 복합문화커뮤니티센터로 리모델링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할 방침이다. 양 박사는 "복합문화커뮤니티센터는 지역민에게 생활문화예술을 할 수 있는 장소와 기회를 제공하고 문화예술 동호회 활동이 이뤄질 수 있는 장을 제공해 문화 민주주의의 거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사상 처음으로 선보이는 '문화가 있는 날' 역시 풀뿌리 문화 확산에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지난달부터 매달 마지막 수요일로 정해진 '문화가 있는 날'은 국민 모두가 쉽게 문화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관람료 무료·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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