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국회 비준과 발효를 앞두고 있다. 우리나라의 앞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거대 중국 시장의 빗장이 열리는 역사적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기계산업의 경우 관세율 측면에서는 중국보다 2% 정도 낮으므로 FTA를 하게 되면 중장기적으로 우리가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시장 크기 면에서도 중국 내수시장은 우리나라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이기 때문에 FTA 이후 관세장벽이 허물어진다면 비교우위의 제품경쟁력을 바탕으로 거대한 중국 내수시장을 선점할 기회가 올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내수시장에도 중국 제품이 들어와 중저가 시장에서는 경쟁이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중 FTA에 이어 조만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도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시점에서 제조업 혁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업계로서는 확대된 경제영토 내에서 중국 제품과의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가격과 품질 및 서비스 면에서의 혁신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가격으로는 중국을 능가하고 품질과 성능으로는 독일을 넘어서며 서비스로는 일본을 제친다는 확고한 목표를 세우고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계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제조업의 거의 모든 제품은 금형·주조·열처리·표면처리·용접·가공 등의 공정을 포함하고 있다. 제조업을 혁신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특히 금형 등 뿌리산업 생태계를 조성해 기초체력을 튼튼히 해야 한다.
정부에서는 제조업 혁신3.0 전략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전 업종에 걸쳐 스마트공장 육성 등 다양한 시책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뿌리산업 분야의 인프라 조성을 위해 첨단 금형산업 기반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총 사업비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민간이 공동 분담해 최신 설비를 갖춘 금형센터를 건립하고 고정밀화·고효율화 금형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과 시험생산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를 통해 스마트 생산설비에 투입되는 각종 부품과 기자재의 품질과 성능 및 생산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므로 결국 수혜자는 정보기술(IT)·반도체·기계·자동차·철강 등 전후방 연관산업이 될 것이다. 이에 이 인프라 구축사업에 대한 삼성 등 대기업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
정부로서는 제조업 혁신 및 건강한 산업생태계 인프라 조성을 통한 경쟁력 강화와 함께 해당 시장에 우리 기업이 진출하는 데 실질적으로 걸림돌이 되는 각종 비관세 장벽을 낮추는 데도 주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플랜트기자재를 비롯한 각종 제조업 제품에 수반되는 기술규격 인증에 관한 업계의 애로사항도 신속히 모니터링해 효과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한중 양국 간 상호인정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구체적인 스케줄에 따라 후속협상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의 제조업을 떠받치고 있는 금형 등 뿌리산업 생태계의 인프라가 약해지고 핵심역량이 서서히 중국 등 해외 후발국으로 이전되는 경우 기계·자동차·전자·IT·반도체·철강 등 전후방 연관산업의 국내 부가가치 생산은 점차 위축되고 해당 산업의 대기업들도 국내 일자리 창출과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삶아지는 것도 모르고 솥 안에서 헤엄치고 노닐고 있는 물고기'라는 뜻인 부중지어(釜中之魚)라는 말이 있다. 눈앞에 닥친 위험을 모르고 유유자적하는 부중지어가 돼서는 결코 안 된다. 한중 FTA 조기 비준과 발효를 통한 거대 중국 시장 선점과 함께 제조업 혁신과 이를 위한 금형 등 뿌리산업 생태계 인프라 조성에 관민 합동의 범국가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영탁 한국기계산업진흥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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