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친환경 만리장성’의 장벽을 높이면서 자동차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베이징 등 대도시의 대기오염이 나날이 심각해져 환경 규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게 중국 정부의 입장이지만 그 이면에는 외국 자동차업체의 진출을 막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속내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차량 보조금 정책을 수정하면 주력 차종의 포트폴리오는 물론 투자 계획까지 바꿔야 할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고 말했다.
당장 환경 규제 강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5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당초 오는 2020년 시행 예정이었던 ‘국(national)6’ 배출가스 규제를 오는 2017년으로 앞당겨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6은 유럽연합(EU)이 시행하고 있는 ‘유로6’와 비슷한 수준의 강력한 배출가스 규제다.
현재 중국 시장에 진출한 현대·기아차는 소형 승용차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중심으로 판매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데 규제가 조기 시행되면 SUV 차량 매출 목표 실현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친환경 승용차에 대한 보조금 지급 조건도 까다롭다. 중국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차량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으나 전기차(EV) 모드로 50㎞ 이상을 달릴 수 있어야 한다는 높은 조건을 제시했다. 신정관 KB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 쏘나타의 경우 EV 주행거리가 44㎞로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보조금을 받으려면 중국향 모델을 새롭게 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변덕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지난 1월 발생한 전기버스 배터리 보조금 지급 철회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중국 정부는 자국 업체가 주로 생산하는 리튬인산철(LFP) 방식 배터리에만 보조금을 주고 삼성SDI와 LG화학 등 한국 업체가 주도하는 ‘삼원계’ 방식 배터리에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아 보조금을 줄 수 없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한 대에 2억~3억원 정도 하는 전기버스에 대당 1억8,000만원가량의 보조금을 줘 도입을 장려하고 있는데 보조금을 받지 못하면 사실상 버스를 팔기 어렵다.
한국 정부는 “삼원계 배터리가 지난 10년간 폭발 및 화재 사고를 낸 적이 없었고 캐나다 등에서도 삼원계 배터리 버스를 운영하고 있다”며 중국 정부에 강력 항의했으나 아직 보조금 지급이 재개되지는 않았다.
LG화학은 지난달 컨퍼런스콜을 통해 “안전성 기준만 확정되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이슈이며 하반기 중 보조금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해결이 미뤄질 경우 매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