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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죽계구곡으로 힐링 여행>태백산 품은 산사의 아침...心身을 깨우다

부석사

일주문 들어서자 정겨운 새소리

죽계구곡

소백산 아홉굽이 계곡 피로가 싹

새벽 5시에 맞춰놓은 알람이 울렸다. 부석사의 모습을 아침 빛이 좋은 시간에 찍고 싶은 욕심에 씻지도 않고 숙소를 나섰다. 5시면 충분히 이른 시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해가 올라오고 있었다. 운전을 하면서도 때때로 동쪽을 바라보며 해의 높이를 살폈다. 그렇게 부석사에 도착한 시각은 6시. 이미 세상은 밝았지만 그나마 부석사 뒤편의 소백산맥이 쨍쨍한 햇볕은 가려주고 있어 가느다란 희망을 걸고 사진기를 꺼내 들었다.

무량수전은 지난 1962년 국보로 지정됐는데 정면 5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 주심포 양식의 건물로 676년 창건 후 몇 번의 중창이 있었다.




◇부석사=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일주문을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의 입에 왜 그처럼 부석사가 회자되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고즈넉한 산사에는 아침을 맞는 새소리만 울려 퍼질 뿐 인기척이라고는 없었다.

그런데 절에 들어서 편액으로 눈길이 가는 순간 두 개의 의문이 생겼다. 첫 번째는 걸려 있는 편액마다 산 이름이 다른 것이었다. 일주문에는 ‘태백산부석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범종루에는 ‘봉황산부석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절 하나에 산이 두 개 들어앉아 있을 리는 없는데 산 이름이 달리 적혀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절을 둘러보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새벽잠 없는 기자 탓에 잠도 못 자고 달려 나온 김금순 해설사는 “절터가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 있는 봉황산 중턱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두 번째 궁금증은 부석사(浮石寺)라는 절 이름이었다. ‘돌이 떠 있다니?’ 이 무슨 조화일까? 이 궁금증은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절 뒤편 안내판을 통해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석사라고 불리는 이유는 무량수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부른 데서 연유하였다”는 설명과 함께 “실제로 실을 넣어 밀면 반대 방향으로 나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 적혀 있다.

부석사가 다른 절과 다른 것은 대웅전 대신 무량수전이 있고 무량수전은 부처 대신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는 점이다. 무량수전은 지난 1962년 국보 제18호로 지정됐는데 정면 5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 주심포 양식의 건물로 676년 창건 후 몇 번의 중창이 있었다. 이곳에는 국보 제45호인 소조 여래좌상이 있는데 무량수전 건물은 남향인 데 반해 불상만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점도 이채롭다.

소수서원이 있던 자리에는 원래 숙수사라는 절이 있었고 단종을 끔찍이도 아꼈던 숙부 금성대군이 유배를 왔던 곳이기도 하다.


◇소수서원=영주시 순흥면 소수서원을 찾은 시간은 아직 해가 중천에 오르기 전인 오전11시쯤이었지만 뜨거운 햇볕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소수서원이 있던 자리에는 원래 숙수사라는 절이 있었고 단종을 끔찍이도 아꼈던 숙부 금성대군이 유배를 왔던 곳이기도 하다. 금성대군은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 실패했고 세조는 불온한 세력의 씨를 말렸다. “순흥 일대는 불바다가 됐고 사방 10리에 개와 닭의 울음소리마저 그쳤다”는 기록이 전해오고 있다. 이 일대에 거주하는 이들은 젖먹이까지 도륙당해 소수서원 자리에서 7㎞ 떨어진 냇가까지 핏물이 흘러내렸다고 한다. 그곳의 지명이 피끝마을이 됐을 정도다.



아픔 속에서도 세월은 흘러 중종 38년(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서원을 세웠고 최초의 사액서원이 된 소수서원은 수많은 명현거유(名賢巨儒)를 배출했다. 처음 세워졌을 때는 백운동서원으로 불렸으나 퇴계 이황이 풍기 군수로 부임한 후 조정에 건의해 소수서원으로 사액됐다. ‘소수(紹修)’는 ‘이미 무너진 교학을 닦게 하였음’이라는 뜻이다. 당시 국왕이었던 명종이 소수서원이라는 편액 글씨를 직접 써서 하사했다고 전한다.

죽계구곡 중 1곡인 백운동취한대의 모습.


◇죽계구곡=영주시 순흥면 배점리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소백산을 따라 흐르는 죽계구곡을 만나게 된다. 죽계구곡은 죽계천 유역을 흐르는 아홉 곳의 경치로 백운동 소수서원에서부터 상류의 중봉합류까지 산재해 있다. ‘죽계지’ 등에 따르면 상류부터 1곡 백운동취한대(白雲洞翠寒臺), 2곡 금성반석(金城盤石), 3곡 백자담(栢子潭), 4곡 이화동(梨花洞), 5곡 목욕담(沐浴潭), 6곡 청련동애(靑蓮東崖), 7곡 용추비폭(龍湫飛瀑), 8곡 금당반석(金堂盤石), 9곡 중봉합류(中峯合流)를 죽계구곡이라 불러왔다.

김 해설사는 “3곡의 풍경이 가장 빼어나다”고 했는데 날씨가 가문 탓인지 수량이 적어 오히려 상류의 1곡에 비해 물이 말라 있었다. 9곡에서 1곡에 이르는 길은 동남아시아에서 수입한 삼나무 매트가 깔려 있어 무릎에 부담이 가지 않아 편하게 걸을 수 있다. /글·사진(영주)=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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