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개편안이 등장한 데는 산은의 책임이 크다. 대우조선 사태에서 보듯이 자회사에 낙하산을 내려보내 자리를 꿰차는 데 급급할 뿐 관리·감독은 뒷전이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산은만 뜯어고치면 모든 게 정상이 될까. 2008년 이후 대우조선 사외이사 18명 중 12명이 정피아 또는 관피아였다. 산은이 지시해도 대우조선에서 꿈쩍하지 않았던 이유다. 산은이라고 다를까. 홍기택 전 회장이나 이동걸 현 회장 모두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실질적인 결정권이 주어진 것도 아니다. 그저 서별관회의나 금융당국이 이미 내린 결론을 그대로 실행했을 뿐이다. 산은 방만경영의 뿌리가 저 깊은 곳까지 뻗어 있다는 의미다.
암에 걸렸는데 진통제만 투여한다고 병이 낫지는 않는다. 정책금융의 대부인 산은을 지금처럼 망가뜨린 주범을 찾아야 한다. 전문성도 책임감도 없는 인사를 누가 낙하산으로 내려보냈는지, 수년 전부터 지적돼온 기업 구조조정을 이제서야 시작하게 된 이유가 뭔지, 또 누가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철저히 파헤치고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혁신안을 백번 내놓아봤자 말짱 도루묵이다.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인사와 정책 결정으로 그러잖아도 불경기에 허리를 졸라매고 있는 국민들이 12조원 이상의 부담을 더 짊어지게 됐는데 적어도 그 정도 성의는 마땅히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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