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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타는 만남 A to Z] 아프니까 청춘? 아픈 청춘 달래주는 ‘좀 놀아 본 언니들’

‘이불 밖은 춥고 내 옆구리는 시리고 내 몸 하나 받아주는 곳도 없고...’ 숱한 고민들에 치여 안녕하지 못한 이 시대 청춘들의 자화상이다. 하지만 ‘젊을 때 사서 고생해야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영혼1도 없는 말들이 들려오는 슬픈 현실. 어느 누구 하나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답답한 마음에 직접 청춘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일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 오늘도 울지 않고 잘 버텨준 청춘들을 토닥이기 위해 24시간 편의점처럼 감정 해우소를 시작하게 됐다는 남자. 서울경제썸이 아픈 청춘들을 위해 고민 상담소를 운영하는 ‘좀 놀아본 언니들’ 대표 장재열씨를 만나봤다.







청춘 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들’ 대표·작가·방송인 장재열(32)씨


안녕하세요. ‘좀 놀아본 언니들’ 의 왕언니 장재열(32)입니다. ‘좀 놀아본 언니들’은 지난 2013년 가을에 설립돼 올해로 5년차가 된 고민 상담소로 비영리 단체입니다. 저희 상담소엔 2030대로 구성된 13명의 ‘좀 놀아본 언니들(스태프들의 명칭)’이 재능기부 형태로 온·오프라인 무료 고민상담을 해주고 있어요. 오프라인의 경우, 월 1~2회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 나이 7살 때 3살배기 남동생을 사고로 잃었어요. 그래서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남아 좀 우울한 시기를 보냈어요. 이후 시간이 흘러 삼성 제일모직의 인사 담당자로 입사해 처음 취업설명회를 하러 대학교를 방문했었죠. 기업 부스에 앉아 취업준비생들의 이력서를 보면서 상담을 하다보니 문득 세상을 떠난 제 남동생이 떠오르더라고요. ‘살아있었으면 딱 이 친구들과 같이 이력서를 들고 취업 준비를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들었죠. 한동안 또다시 트라우마 때문에 고생하다가 우울증까지 왔어요. 결국엔 업무까지 지장을 받으니까 입사 1년 만에 퇴사를 하게 됐죠. 그 당시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오랫동안 심리 상담소를 다녔었는데 당시 심리 치료 과정 중에 온라인 블로그에 매일 ‘자문자답형 상담일기’를 썼어요. 그게 사실 청춘 상담소의 시초였어요.



2013년 초기까지만 해도 오로지 저를 위해 스스로 묻고 답을 찾아가는 개인 블로그였어요. 그런데 우울증 치료를 위한 제 일기가 블로그에 쌓이다보니 포털 검색을 통해 노출이 되더라고요. 청년들의 주고민이었던 ‘취업, 삼성, 백수, 우울’ 등 키워드를 일기에 자주 썼으니까요. 어느 순간 팔로워가 6,000명이 넘어섰고 게시글에도 200~300개의 ‘좋아요’가 달렸죠. 물론 상담 요청한다는 쪽지도 수십통씩 쌓였고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턴 혼자서 다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러던 와중에 제 팔로워 중에 댓글을 달면 늘 좋아요가 무려 400개가 달리는 숨은 상담 고수가 있었던 거예요. 그걸보니까 문득 사람들이 서로 묻고 답하고 묻고 답하고 자유롭게 고민과 조언을 주고받는 상담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멤버를 구하고 본격적으로 고민상담소로 탈바꿈하기 시작했죠.



같이 상담소를 운영하는 일명 ‘언니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모두 과거에 저한테 고민 상담을 했던 친구들이에요. 오랫동안 상담을 주고받은 경험을 통해서 어떻게 상담을 해야하는지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이죠. 그래서 저희는 채용 공고대신에 상담을 받았던 친구들을 대상으로 연 1회 운영진 모집을 합니다. ‘지금은 내가 상담자이지만 나중엔 누군가의 마음을 토닥여 줄 수 있는 멘토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저희의 모토예요.



저희가 모두 전문 상담인이 아니니까 간혹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를 대비해서 심리학 박사과정을 마친 전문가를 1명 영입했고요. 미혼모, 다문화, 성소수자 등의 상담은 주변 전문 기관과 자매결연을 맺어서 전문 상담가 매칭을 해주고 있어요. 예를 들어 퇴사학교나 지역 미혼모 커뮤니티, 동성애 커뮤니티 등 스페셜리스트와 전략적 제휴(?)를 맺는거죠. 일명 좀 놀아본 언니들의 ‘친구들’이랍니다.(웃음)



청년들을 위한 강연을 진행하고 있는 장재열씨/사진=장재열씨 제공


상담소 운영 멤버가 꾸려지고 나서 상담소 이름을 정해야하는데 막상 안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평소 팔로워들이 생각하는 저의 모습이 궁금해졌어요. 그간 블로그에선 익명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제 신분이 전혀 노출되지 않은 상황이었거든요. 그들이 생각하는 제 모습은 “30대 초반의 여성 흡연자이며 서울대 미대를 나와 패션업계에 몸을 담그고 있는 골든 미스다”고 추측한거죠. 특히 제가 평소에 직설화법을 구사하다보니 다들 ‘센 언니 캐릭터일 거다’라고 상상하더라고요. 거기서 영감을 얻어 “좀 놀아본 언니들”이라는 이름을 짓게 됐죠.



저를 처음 만나는 분들은 ‘금수저, 엄친아같다’고 말해요. ‘서울대 미술 전공에 대기업 패션계에서 근무했다’는 얘길 하면 고생 한 번 안 해보고 곱게 자랐을 것 같다더라고요. 근데 사실 정반대였어요. 10대 때 오랜 기간 왕따를 당하면서 20대땐 누구보다 화려하고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것이 제 삶의 목표였거든요. 그래서 서울대를 목표로 고군분투했어요. 삼수를 거쳐 드디어 들어가게 됐고 대학 들어가서도 남들보다 뒤처진 시간만큼 끊임없이 스펙을 쌓았어요. 그 당시 서울대 내에서 35개 스펙을 가진 유명인이었죠. 그래서 대학 졸업 후 바로 삼성 제일모직에 바로 입사했지만, 정작 제가 원하던 패션 마케팅팀이 아닌 인사팀으로 발령이 났어요.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결국 입사 1년 만에 번아웃상태에 우울증까지 겹쳐 퇴사하게 됐죠. 저도 보통 대한민국 청년으로서 아픈 청춘기를 겪었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은 행복합니다.(웃음)



사람들이 각각 똑같은 고민을 털어놔도 저는 그 사람의 성격, 상황 등에 맞춰서 다르게 조언을 해줘요. 예를 들어 두 여성이 각각 실연을 당했더라도 그들이 헤어지게 된 과정이나 지금 느끼는 감정이 조금씩 다르잖아요. 또 누군가는 돌직구 조언을 얻길 바라고 다른 이는 토닥토닥 다독여주길 바라죠. 그 부분을 잘 파악해서 조언해주는 것이 제 장점인 것 같아요.





3년 동안 매년 한 번씩 저를 찾아오는 친구가 있었어요. 2014년 당시 취업준비생이었던 그 친구가 ‘앞으로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오랜 시간 상담을 받고 갔어요. 그리고 그 다음해에 다시 찾아왔을 땐 취업이 됐다고 말했지만 이 회사 직무가 본인의 적성과 너무 안맞는다는 게 고민이었어요. 그래서 사표를 써야겠다고. 그 때 제가 딱 이 한 마디를 던졌어요. “사표 그까짓거 써도 상관없다. 다만 네가 쓰려는 그 사표가 부장에게 쓰려는 사표인지,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기위한 출사표인지 잘 생각해봐”라고. 그 뒤로 또 한참동안 연락이 없다가 작년에 마지막으로 절 찾아왔어요. 드디어 본인의 적성을 찾아서 그 꿈을 위해 능력치와 자금을 쌓고 있는 중이라고 했어요. 본인의 꿈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러 왔다고요. 그 순간 정말 한 사람 목숨을 살린 것처럼 뿌듯했던 것 같아요.



저희 상담소의 방문자 연령대는 18~29세가 가장 많아요. 여성이 60%, 남성 40%고요. 지금까지 약 3만명의 상담이 접수됐죠. 저희 상담소의 특장점은 청년들에게 돈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주 상담객의 연령대가 가장 고민이 많고 조언을 갈구하는 10~20대이기 때문이죠. 이 친구들은 상담비를 낼만한 여유가 없잖아요. 그래서 상담소를 통한 수입은 사실 없죠. 그래서 지금은 책 3권 출판하고 칼럼을 쓰거나 각종 강연을 다니면서 수입을 얻고 있어요. 최근엔 라디오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을 하고 있어서 고정적인 수입이 들어오고 있죠. 그래서 대기업에 입사했을 때 월급보다 지금 훨씬 많이 벌고 있어요.







저희 상담소의 근본적인 목표는 한국 사회가 서로 삶의 고민들을 스스럼없이 꺼내고 상호 조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에요. 1인 가구 시대에 고민 상담이 필요한 사람들끼리 언제든 조언해줄 수 있는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죠. 너무 거창한가요? (웃음)



올해부턴 전국적으로 지방 언니들을 만들려고 구상중이에요. 또 지방에서 서울 수도권으로 올라온 청년들을 위한 커뮤니티도 준비중이고요. 지난 1월에 지방 언니 1호로 ‘울산 언니’가 탄생했고, 이제 곧 2호 ‘광주언니’, 3호 ‘전주언니’들이 출동 대기 중입니다.



청년들의 고민을 계속 듣다보면 저도 모르게 우울한 감정이 계속 쌓여서 스트레스가 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우울감이 쌓이지 않도록 매일 3시간씩 운동하면서 우울감을 다 날려버려요. 땀을 쫙 빼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개운해지더라고요. 저에게 고민이 생길 땐 상담소를 운영하는 다른 언니들에게 상담을 받곤 해요. 상부상조하는거죠. 서로 끈끈한 유대관계도 생기고요.



20대들의 고민은 한 분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복합적인 고민이 많아요. 쉽게 말해서 연애 상담 속에 취업, 직장 문제, 가정문제까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거죠. 어떤 한 항목 분야를 뗄 수 없는게 20대들의 고민인거죠. 어떻게 보면 20대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한꺼번에 맞고 있는 세대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무계획 여행을 하는 것이 취미예요. 제가 평소엔 분단위로 계획을 짜고 알람에 맞춰 움직일 정도로 매우 규칙적인 삶을 사는 플랜맨이거든요. 그래서 한 번씩 아예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냥 마음이 끌리는 대로 떠나는 여행을 해요. 딱 지갑과 휴대폰만 쥐고 기차역에 가서 10분 내로 탑승할 수 있는 기차표를 끊고 떠나는 식이죠. 무계획으로 방방곡곡을 다니다보면 한 번씩 예상치 못한 상황을 겪게 되는데 그 과정 속에서 배움과 깨달음을 얻게 되더라고요. 혹시 지금 너무 우울하거나 고민이 많은 분들이라면 무계획 여행을 해보세요. 머릿속 비우기엔 정말 이만한 게 없거든요(웃음)

/정가람기자 gara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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