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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스타2018|그 때 그 자리에 잭이 있었다

  • 골프매거진 편집부
  • 2018-04-04 16:36:20
  • 스포츠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오거스타2018|그 때 그 자리에 잭이 있었다

스포츠 대회는 성대한 잔치가 있는가 하면 장엄하고 격조 높은 대접을 받는 행사도 있다. 이번 호의 마스터스 특집이면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충분히 가능하다. 한마디로 하얗게 불태웠다. 이제부터 그 결과물을 만끽하기 바란다.




2016년 가을, 아널드 파머가 세상을 떠났다. 그 슬픔은 여전히 오거스타 내셔널의 목련 주변과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듯한 조용한 페어웨이를 떠돌고 있다. 잭 니클로스 역시 그의 부재를 가장 깊이 느끼고 있는 인물 중 하나다. 사람들은 골프 황제 파머에 대한 잭의 투명하면서도 특유의 직설적인 회상을 통해 그때의 얘기를 들을 수 있으며, 그가 체험한 마스터스의 경험을 통해 그 시절을 몸소 느낄 수 있다. 마이클 뱀버거가 오거스타의 궁극적 우승자이자 살아있는 역사, 또 이야기의 샘인 잭과 얘기를 나눴다.


오거스타2018|그 때 그 자리에 잭이 있었다
1965년 잭 니클로스는 여섯 번의 그린재킷 중 두 번째 재킷을 걸쳤다. 그의 친구이자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파머가 당시 재킷을 입혀준 덕분에 더욱 잘 어울렸다.


여기 다시 그가 있다. 바로 골프계의 거목 잭 니클로스다. 그는 미리 살펴보는 또 다른 마스터스 이야기를 위해 오랜만에 이야기 자리에 나섰다. 그렇지만 이는 그에게 필요한 일은 아니다.

사실 그동안 니클로스의 고향에서 발간되는 석간신문 <콜럼버스 디스패치>에 그의 아버지가 1959년 이래로 기사 거리를 제공하며 이러한 논평 기사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 해왔다. 어쩌면 당시 찰리 니클로스가 대회에 출전한 아들에게 4번 우드를 5번 우드로 바꾸는 방법에 대한 도움말이 실린 <골프매거진>의 창간호(1959년 4월호)를 쥐어줬을지도 모른다. 아울러 그는 정말 자신의 아들이 훗날 여섯 번의 마스터스 우승으로 그린재킷을 걸치며 오거스타 내셔널의 회원이 되고, 새로운 세대의 골프 영재들에게 대중적 멘토가 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골프계의 거목 잭 니클로스. 우리가 한 해의 이맘 때 그를 찾아가 문을 두드린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장소는 미국의 1번 고속도로 변에 자리한 플로리다 남쪽의 니클로스 사무실이었으며 때는 한겨울의 어느 화요일 오후 3시였다. 사무실은 보통 크기였다. 이제 78세인 니클로스는 골프를 많이 하진 않고 있었지만 그 날은 골프를 했다. 골프가 여전히 그에게 즐거운 일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자리에 앉은 뒤 나는 이 멋진 선수에게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마스터스에서 163라운드를 선수로 뛰었는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나?” 나는 아주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니클로스는 나의 질문에 “그런 사실을 알게 돼 기분이 좋다”고 했으며, 그 순간 그런 수치를 모르고 있었다고 우회적으로 인정한 그의 말을 통해 곧바로 수치는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거스타2018|그 때 그 자리에 잭이 있었다
마스터스의 순간들 : 1963년 잭이 아버지 찰리와 함께 우승의 감격을 누리고 있다.


언제나 위대한 자산인 그의 정신은 분명 골프에 잘 어울리는 측면이 있다. 니클로스는 니클로스 컴퍼니에 대한 매일 매일의 관리 업무에서 자신의 역할을 줄이겠다고 발표하려 하고 있었다. 니클로스 컴퍼니는 <골프매거진>의 새로운 소유주인 하워드 밀스타인과 함께 니클로스가 소유하고 있는 회사다.

그는 오후의 일정 중에 여러 통의 중요한 전화를 받았다. PGA 투어 대회인 혼다 클래식이 다가오고 있었고, 이 대회에서 어린이 진료 재단의 기금을 모금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아내와 다섯 자녀, 22명의 손주를 둔 잭은항상 여기저기서 찾는 바쁜 몸이다. 그리고 그를 찾아와 과거를 재생하려는 나도 있다. 나는 니클로스에게 새로운 오거스타 내셔널의 의장인 프레드 리들리에 대해 물어봤다. 그들은 1976년 마스터스의 첫 라운드에서 함께 플레이했었다.

니클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멋진 선수라고 생각했다. 그 자신이 골프라는 게임을 정복해야할 존재가 아니라 아마추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는 육체적으로 강인하진 않았지만 뛰어난 선수였다.” 잠시 그가 말을 멈추더니 계속 이어갔다. “그는 잭 그라우트에게서 교습을 받고 있었다.”

아주 좋은 화제 거리였다! 사이오토 컨트리클럽의 잭 그라우트는 니클로스의 스승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리들리에게도 골프 교습을 해줬다는 것이다. 니클로스는 그냥 자신만 즐거웠던 얘기를 하지 않고 흥미로운 인연을 알려줬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오거스타 내셔널의 공략법을 배우기 위해 그를 찾아온 선수들로 넘어갔다. 찰 슈워첼과 트레버 이멜만은 버틀러 케빈에게 교습을 받고 있었지만 잭을 찾아왔었다. 그밖에도 다양한 선수들이 잭을 찾아왔다.


오거스타2018|그 때 그 자리에 잭이 있었다
1959년 마스터스에 참가한 아마추어로 깔끔한 출발을 보여줬던 순간.


그는 플로리다에 살고 있었지만 마음은 오거스타가 자리한 조지아로 향하고 있었다. 니클로스의 실무 책임자이자 회사의 오랜 홍보 담당인 스콧 톨리가 잭이 주된 주제를 벗어나지 않도록 나를 도와줬다. 그것이 바로 내가 니클로스에게서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니클로스의 말이다. “내게 있어 오거스타는 다섯 번의 어려운 샷이 있는 곳이다. 그 코스의 나머지 샷은 그 정도로 어려운 경우는 없다. 2번홀의 티샷이 예다. 11번홀의 티샷도 그렇다. 13번홀에선 티샷과 세컨드샷이 어렵다. 15번홀 티샷도 마찬가지다. 항상 이 샷들을 조심해야 한다.”

그의 얘기는 독특하게도 두 가지 시점에서 동시에 수긍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경험에서 나오는 과거의 답이자 아울러 현재의 답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스터스에 참가해 오거스타 내셔널에서 플레이하는 것과 같은 아주 복잡한 일을 간단한 듯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니클로스에게 오거스타에서 우승을 거둘 때 지능의 역할이 중요했는지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지능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절제가 가장 중요한 요소다. 우승자가 반드시 갖춰야할 것은 절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정도로 현명해지는 것이다.”


오거스타2018|그 때 그 자리에 잭이 있었다
1966년 15번홀에서 일요일 손에 넣은 버디로 토미 제이콥스의 발목을 잡았던 순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고 니클로스는 줄기세포 전문가인 한 의사와 상담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3년차 레지던트처럼 의학용어를 능숙하게 입에 올리며 대화를 나눴다. 나는 이전에 있었던 여러 차례의 방문을 통해 잭이 아널드 파머에게 다양한 의료 전문가를 소개해주기 위해 얼마나 많이 애썼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잭은 말했다. “많은 측면에서 아널드로부터 조언을 받았다. 하지만 아널드는 남의 조언을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멋진 사람이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고집이 센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나는 그의 플레이를 도와주려 노력했으며, 그렇게 한 것이 수백 번은 될 것이다. 한 번은 그의 스탠스가 조금 흐트러져 볼을 정확히 맞히지 못한 적이 있었다. 게리 플레이어와 나는 아널드에게 우리가 도와줘야 할 것 같으니 10분만 연습장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응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가르쳐준 방법으로만 플레이했다.”

“1975년 마스터스는 아널드가 실질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참가한 마지막 대회였다. 3라운드에서 우리는 하루종일 서로를 꺾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는 대회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75타를 기록했고 우승권에서 밀려났다. 나도 73타를 기록해 거의 우승권에서 밀려날 뻔 했다. 하지만 나는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가 우승을 거뒀다. 당시 라운드를 마치고 나는 그에게 ‘우리가 중요한 대회에서 플레이하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간절하게 서로를 꺾으려는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타고난 충동을 억제하면서 차분하게 당시의 기억 속으로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오거스타2018|그 때 그 자리에 잭이 있었다
2000년 PGA 챔피언십 때만 해도 타이거 우즈는 니클로스의 메이저 기록을 넘어서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다.


니클로스는 주한 미국 대사관 직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나는 그들이 무슨 얘기를 나눴지는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가업에 종사하고 있는 잭의 그 유명한 손자인 잭 3세가 한국에서 개최되는 2018 동계올림픽에 갈 계획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행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 2015년 프레지던츠컵의 개최지인 인천의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코리아’가 한국 골프의 중심지 중 한 곳이 됐기 때문이다.

전화 통화가 끝나고 대화가 다시 시작됐다. 니클로스는 아널드의 아버지에 대해 언급했지만 나는 다시 그의 아버지 찰리 니클로스에 대해 물어봤다. 잭이 말했다. “보비 존스는 1902년에 태어났고, 우리 아버지는 1913년에 태어났다. 존스가 1926년에 사이오토의 US오픈에서 우승을 거둘 때 아버지가 그 자리에 있었다. 아버지는 존스의 팬이었다. 1959년에 내가 오거스타에 가서 마스터스에 참가했을 때 그곳에는 아버지와 내게 존스 선생을 보러 오라고 초대하는 메모가 있었다. 그때 이후로 내가 오거스타에 갈 때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전해진 그 메모가 여전히 있냐?’고 물었다. 매년 빠짐없이 물었다.”

찰리가 존스를 만난 것은 그의 희귀한 척추 질환이 점점 나빠지던 시절이었다. 그것은 지팡이를 이용하다 목발에 의존하게 된 슬픈 과정이었으며, 걸어 다니던 사람이 결국은 휠체어에 앉게 된 시절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정신에는 영향이 없었다. 찰리 니클로스는 1970년에 세상을 떴고, 보비 존스는 그 다음 해에 세상과 작별했다. 찰리 니클로스는 진정으로 자신의 아들을 통해 자신이 좋아했던 영웅이 어땠을지 상상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오거스타2018|그 때 그 자리에 잭이 있었다
오거스타의 전설적 인물들인 게리 플레이어, 아널드 파머, 보비 존스(앉아있는 인물, 왼쪽), 클리포드 로버츠.


니클로스에 대해 무엇인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주관하는 PGA 투어 메모리얼 토너먼트의 모든 면이 그에게 매우 중요하며, 마스터스가 모든 면에서 그 대회의 모델이 됐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PGA 투어의 대회 주관자가 되면 현재 제이 모나한이 맡고 있는 투어 회장과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다. 물론 PGA 투어의 회장이 되면 잭 니클로스와 관계를 갖는 것이 아주 뜻 깊은 일이 된다. 모나한이 잭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나는 다시 자리를 비켜줬다. 돌아온 나는 니클로스에게 내년 5월말 시작되는 PGA 챔피언십의 새로운 개최 날짜가 6월초에 개최되는 메모리얼 토너먼트에 방해가 될 수 있지 않겠냐고 물었다. 니클로스는 그에 대해선 전혀 걱정하고 있지 않으며, 두 대회가 연이어 열리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그는 PGA 투어의 대회가 1년 내내 미국 전역에서 개최되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 잭의 생각은 많은 경우가 그와 같아서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없었다.

메모리얼 토너먼트가 개최되는 뮤어필드 빌리지는 니클로스가 1996년 브리티시오픈의 우승을 거둔 스코틀랜드의 뮤어필드 골프장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나는 잭에게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와 오거스타 내셔널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잭은 “오거스타 내셔널은 미국의 세인트앤드루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리들리의 전임자인 빌리 페인 얘기를 꺼냈다. “언젠가 내가 빌리에게 존스와 매켄지가 오거스타 코스를 설계할 때는 올드 코스가 전체적인 철학적 기반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빌리는 ‘나는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때 나는 빌리에게 말했다. ‘오거스타의 코스를 한 번 살펴보라. 드라이버샷을 해보면 완전히 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세인트앤드루스와 완전히 똑같은 세계다. 페어웨이에서 적절한 쪽으로 샷을 가져가면 그린까지 적절한 어프로치샷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그런 경우다. 세인트앤드루스와 완전히 똑같다. 그게 바로 골프에 접근하는 존스의 전체적인 자세였다. 이 골프 코스를 변경하기 전에 보비 존스가 이 코스에 대해 말한 것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해보는 것이 좋을 거다. 오거스타는 세인트앤드루스의 완전 복제판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니클로스는 오늘날의 선수들이 때려내는 샷거리와 그러한 변화가 코스의 기본적이고 전략적인 요소들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를 언급했다. 그는 이곳저곳에 새로운 티가 설치될 거라고 말했지만 사실 니클로스는 코스가 점점 길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골프볼의 샷거리를 줄이길 원했다. 그는 1977년 이래 지속적으로 그러한 주장을 펼쳤다. 그는 “골프볼을 규제해야 한다. 너무 터무니없이 멀리 날아간다”며 “오거스타는 그들 기준의 골프볼로 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며 선수들은 그에 따라 플레이를 해야 한다” 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시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오거스타가 그렇게 할 것 같지 않다. USGA가 우리의 규칙 제정 단체다. 오거스타는 그 위에 존재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중에는 타이거 우즈 역시 골프볼에 대해 언급을 했다.


오거스타2018|그 때 그 자리에 잭이 있었다
잭은 2017년의 마지막 마스터스 때 1번홀 티잉그라운드의 기념식에서 하늘나라의 아널드 파머에게 경의를 표했다.


나는 니클로스에게 타이거 우즈의 메이저 대회 전망에 대해 물어봤다. “타이거가 건강을 유지했다면 가장 우승 가능성이 높았던 것은 마스터스가 됐을 것이며, 그 다음은 디오픈이었을 것이다.

오거스타는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공간을 갖추고 있어 볼이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다. 그는 그렇게 볼이 빗나갔을 때 장애물 지역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예전의 타이거는 어느 대회에서도 우승할 수 있었다. 그는 경이적인 골퍼이자 경이적인 운동선수다. 건강을 유지하기만 하면 앞으로도 메이저 대회에서 2승 이상 거둘 수 있는 충분한 기량을 갖고 있다.”

과거와 오늘을 오고가던 우리의 얘기 속에서 우리는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아마도 옛 시절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물어볼 것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잭에게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려면 마스터스의 우승이 필요한 로리 맥길로이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냐고 물었다. 잭은 이렇게 말했다.

“대회 2주 전에 그곳에 가서 살아야 한다. 다른 세계와는 문을 닫아야 한다. 그곳이 완전히 편안하게 느껴질 때까지 플레이하고, 또 플레이해야 한다.” 그는 자신이 통산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을 때의 나이가 24세였다고 언급했다. 그리고는 현재 로리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 했고, 탁자 가까이 놓여 있던 커다란 푸른 원통을 건네 달라고 부탁하더니 그 원통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푸른 원통은 아마존의 인공지능 스피커 장치인 알렉사였다. “알렉사? 골퍼인 로리 맥길로이가 몇 살이죠?” 잭이 그렇게 물었다.

“이것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로리는 2년11개월 전에 태어났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이 됐나요?” 니클로스가 그의 나이를 알아보기 위한 시도를 펼친 것은 모두 세 번이었다. 스콧 톨리에게 물어본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잭의 오랜 비서인 로스 갈리도에게 물어봤을 때 드디어 만족스런 답이 나왔다. 옆방에서 온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28세입니다. 5월4일에 29세가 됩니다.” 잭이 자신의 인공지능장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알렉사, 프랭크 시나트라 노래 좀 틀어주세요.” 어떤 사람들은 기계에게도 정중하게 부탁할 정도로 참으로 예의가 바르다. 오래된 프랭크 시나트라의 히트곡이 잭의 새로운 장난감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퀸시나 나이액으로 가는 카약을 타요.’

잭은 이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스콧 톨리가 말했다. “알렉사, 누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퍼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골퍼는 두 말할 필요 없이 잭 니클로스입니다.” 원통형 스피커가 그렇게 말했다. 잭이 웃었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제 우리의 오두막을 떠나요.’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의 일상을 빠져나가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기로 해요.’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가 마치 영화의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에서 나오는 음악 같았다. 잭이 말했다. “당신이 필요한 것을 얻었길 바랍니다.”

시간은 저녁 6시를 지나고 있었다. 잭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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