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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스타2018|마스터스 데뷔 앞둔 소방관

  • ALAN SHIPNUCK
  • 2018-04-04 17:23:49
  • 스포츠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오거스타2018|마스터스 데뷔 앞둔 소방관

스포츠 대회는 성대한 잔치가 있는가 하면 장엄하고 격조 높은 대접을 받는 행사도 있다. 이번 호의 마스터스 특집이면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충분히 가능하다. 한마디로 하얗게 불태웠다. 이제부터 그 결과물을 만끽하기 바란다.




사악할 정도로 힘겨운 미드-아마추어 대회의 우승자인 매트 파지앨리는 뜨거운 불길을 다루는 데 익숙한 매사추세츠주 브록튼의 소방관이기도 하다. 마스터스 신인인 그는 이번 마스터스에 참가하면서 긴급 상황을 다룰 클럽과 약간의 행운을 가져가고 싶을 것이다.


오거스타2018|마스터스 데뷔 앞둔 소방관


미국 미드-아마추어 대회의 새로운 우승자가 일하는 곳은 일류 대학 출신들이 가는 법률 회사나 투자 은행이 아니다. 또 편안하게 일하면서 특권을 누리는 어떤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아니다. 매트 파지앨리의 근무처는 한때 좋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보스턴의 외곽, 매사추세츠주 브록튼의 낙후된 지역에 자리한 소방서다. 소방서 건물은 낡아서 가운데가 내려 앉아 있었다. 최근의 어느 날 오후에 파지앨리는 프레전트가에 있는 이 인상적인 식민지 시대의 소방서 건물에 잠시 들렀다.

소방서의 회색빛 나무 바닥은 10년 동안 광택제를 바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여러 군데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고, 파지앨리는 그 건물에 있는 냄새나는 작은 방을 자랑삼아 보여줬다. 그곳은 지난 5년 동안 그가 수없이 잠을 잔 곳이었으며, 아무 것도 덮여 있지 않은 매트리스의 네 귀퉁이가 그 방 안에 구겨져 들어가 있었다. 방에서 홀로 내려가 보니 소방서에 근무 중인 소방관들이 따뜻한 점심을 즐기고 있었으며, 그들의 뒤쪽에선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액션 영화가 방영되고 있었다. 그 방은 소년같이 보이는 30세의 파지앨리가 살짝 들여다 보자 마치 그를 환영이라도 하듯 이내 불이 들어왔다.

“안녕, 할리우드 스타!” 누군가 그렇게 외치며 인사를 했다. 파지앨리는 이곳에선 약간의 과장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미소 지을 뿐이었다.

6명 정도의 남자들이 동시에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은 파지앨리에게 소방 대장으로 지내다 지난해 가을 은퇴했으며 같은 지역에서 33년간 일한 파지앨리의 아버지 빅에 대한 안부를 물었다. 얘기의 화제는 필연적으로 파지앨리가 출전할 앞으로의 대회 일정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한 남자가 말했다. “대회를 보러가도록 노력할게. 그런데 지금 응원을 하기 위해 나도 입을 수 있는 초록색 상의를 구하고 있는데 그게 구하기 어렵네.” 방에 웃음이 터졌다.

하늘나라 어디에선가 보비 존스가 소방차를 본떠 만든 보스턴의 유명한 자동차 백드래프터가 오거스타에 줄 지어 늘어서 있는 광경을 보면 분명 충격을 받겠지만 그래도 미소를 지어줄 것이다. 마스터스에 파지앨리와 같은 선수의 자리를 만들고 그가 마치 영화처럼 오거스타로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마추어 골프에 대한 존스의 변치 않는 사랑 덕분이었다.

파지앨리의 스윙 코치인 숀 헤스터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알다시피 브록튼은 살기 힘든 곳이며, 직업이 소방관이면 하는 일 자체가 상당히 힘들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그가 마스터스에 출전하게 됐다. 믿기지 않는 일이다.”

이 지역은 파지앨리가 골프를 처음 접한 곳이 스윙 소리 들리는 컨트리클럽이 아니라 브록튼 장터 인근의 공터였다는 사실이 자연스러운 곳이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인 카마인은 연습볼 가방을 짊어지고 공터에서 직접 자신들만의 드라이빙 레인지를 만들었다. 카마인이 손자에게 처음 골프 레슨을 해줬을 때 다섯 살이었던 매트는 백스윙을 하면서 할아버지의 가슴을 때렸다. 이 일은 이들 가족이 소중하게 여기는 이야깃거리가 됐다. 카마인은 그때의 일로 속이 상한 것이 아니라 스윙을 뻗어주는 매트의 동작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매트는 어릴 때 아주 뛰어난 아이스하키 선수였으며 빅이 팀의 모두에게 기술 지도를 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열세 살이 됐을 때 그는 소니 리 골프클럽의 골프백 관리실에서 일하게 됐다. 그곳은 뉴잉글랜드에서 강인한 골프 선수들을 배출해 내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골프와의 작은 인연이 됐다.


오거스타2018|마스터스 데뷔 앞둔 소방관
지난해 10월, 파지앨리는 애틀랜타의 캐피탈시티 클럽에서 열린 2017년 US 미드- 아마추어 대회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을 거뒀다.


그 클럽에선 12명 정도에 이르는 파지앨리 또래의 아이들이 일하고 있었으며, 형제처럼 어울린 이들 아이들은 거의 매일 근무가 끝나고 나면 경쟁이 치열한 게임을 벌이곤 했다. 우승을 기념해 그의 이름을 붙인 샌드위치가 있는 그 클럽에서 점심을 먹으며 파지앨리는 이렇게 말했다.

“항상 소니 리에선 치열한 대결이 펼쳐졌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비싼 대가를 치르는 일일 수도 있었다. 당시 운이 나쁜 날이면 20 달러 정도를 잃곤 했다. 그 날 팁으로 받은 돈을 모두 날리는 일이었기 때문에 매우 속이 쓰린 일이었다.”

브록튼은 유명한 권투선수인 마빈 헤글러와 록키 마르시아노를 배출했으며, 후자의 경우엔 그와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어 놓은 동상이 이 지역의 고등학교 교정에 높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브록튼은 ‘챔피언의 도시’라는 거창한 애칭을 갖고 있으며, 심지어 10대 시절의 파지앨리도 이 도시가 사랑하는 투지 넘치는 아들로 여겨지면서 좋은 모델로 통하고 있다. 소니 리 집단의 1명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파지앨리의 가장 친한 친구로 남아 있는 그렉 찰라스는 이렇게 말한다. “매트는 항상 멋진 스윙을 보여줬지만 그를 돋보이게 해준 것은 사실 정신력이었다. 매우 강인했고 항상 투지가 넘쳤다. 그는 한 번도 싸움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파지앨리는 플로리다주 레이크랜드에 있는 사우스이스턴 대학으로 진학했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게임 기량이 가속적으로 향상됐다. 2008년에는 주니어로 개인 메달을 수상했으며, 자신의 팀을 이끌고 미국 기독교대학 체육연합의 전국 챔피언십에 참가했다. 졸업 후 파지앨리는 프로로 전향했으며, 소니 리의 회원들로 구성된 컨소시엄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3년 동안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는 결국 2013년에 프로 무대를 떠났다.

매트는 이른 은퇴를 아쉬워하는 주변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골프에 몰두하면서 대회를 준비하고 플레이하는 것이 좋았다. 경쟁 자체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때가 내가 떠날 시간이었다. 후회는 없다. 내가 항상 잘하고 있는 일 중 하나는 결정을 내리면 100%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파지엘리는 브록튼으로 돌아왔으며, 그가 알고 있는 유일한 삶으로 복귀했다(삼촌과 처남도 소방관이다). 매트는 소방서에서 자랐으며, 매일매일 이 남자다움이 넘치는 영웅들을 숭배했다. 또 그들이 공유하는 동지애에 넋을 잃었다. 그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은 그 직업이 정말이지 너무 즐거운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말이다. “항상 모든 것이 급했다. 혼란스러웠다. 온통 혼돈이었다. 혈압이 치솟고, 아드레날린이 높아지며, 돌봐야할 사람을 구해 어깨를 나란히 걸고 나오고, 일을 모두 팀워크와 결단력을 통해 하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 굉장한 경험이었다.”

브록튼 소방서의 정책은 가족이 모두 희생되는 일을 막기 위해 같은 가족 구성원이 같은 화재 현장에 출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만 언젠가 파지앨리는 자정 바로 직후에 화마에 휩싸인 어느 집으로 출동하라는 호출을 받았다. 파지앨리의 말이다. “불이 엄청나게 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주택의 화재 때는 눈앞에 있어도 아무 것도 보이질 않기 때문에 거의 눈을 감고 화재를 진압하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 생긴다. 그 당시 누군가 나를 붙잡고 누구냐고 물었다. 그냥 감각으로 앞으로 나가기 때문에 바로 사람을 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나는 그의 재킷 아래쪽을 살펴봤고, 이름이 그곳에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예요, 아버지’라고 답했다. 내가 초과근무를 한 탓에 같은 현장에서 만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신경쓰지 않았다. 아버지와 나는 소방 호스를 함께 잡고 물을 뿌리며 화재를 진압했다. 그때가 내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다.”


오거스타2018|마스터스 데뷔 앞둔 소방관


하지만 골프와 그의 본업 사이에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 항상 쉽지는 않았다. 2017년 소니 리 클럽 선수권전의 36홀 결승전을 앞두고 파지앨리는 계속해서 걸려오는 응급 의료 요청 전화 때문에 온밤을 꼬박 지새워야 했다. 그는 잠도 못 자고 첫 번째 티에 올라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스코어는 74타로 엉망이 됐다.

점심 때 그는 보드카가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판단했다. 칵테일을 한 잔 마신 그는 오후의 18홀 라운드에서 66타를 기록하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2017년에는 매사추세츠 아마추어 대회를 포함해 또 다른 우승을 쌓아가며 야심에 찬 자신의 목표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파지앨리는 오랫동안 뉴잉글랜드의 헨릭 스텐손으로 통했다. 스텐손은 가공할 3번 우드샷을 자랑하는 스웨덴 선수다. 사실 그는 프로 인생을 마감한 뒤 몇 년 동안 드라이버를 갖고 다니지도 않았다. 짧은 홀에 들어서면 그는 드라이버 없이 플레이할 수 있었고, 3번 우드로 280야드를 때려낼 수 있었다. 샷은 완전히 똑바로 날아갔다.

하지만 전국 수준에선 그러한 기량이 통하질 않았다. 그렇게 드라이버에 손을 대지 않고 있던 그가 2017년 5월 US오픈 예선 때 드디어 완전히 드라이버 타격을 받아들이며 승부수를 던졌다. 그러자 파지앨리의 나머지 플레이에서도 문이 열렸다. 그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치러지는 미드-아마추어 대회의 예선을 휩쓸어 버렸고, 이어 36홀의 결승전에서 6홀을 남기고 8홀 우세로 노스캐놀라이나주 커너스빌에서 온 조시 니콜스를 눌렀다. 그의 비공식 기록은 63타였다. 그리고 이 우승을 통해 불확실하던 오거스타 초대가 확정됐다.

그날 밤 파지앨리는 약혼녀인 앨리슨 허버드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보스턴으로 돌아왔으며, 집에 도착하니 밤 2시였다. 5시간 뒤, 그는 출근했다. 얼마 되지 않아 출동한 화재 현장에서 잔해가 떨어져 어깨를 다칠 뻔 했고, 화재 진압이 너무 위험해 앞으로는 하지 말아야 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그는 마스터스 준비를 위해 휴직을 했다. 생활은 약간 빠듯해지겠지만 약혼녀가 행복한 마음으로 기본적인 생활비를 충분히 지원해주고 있다. 파지앨리의 여행 경비와 기타 골프 관련 지출은 매사추세츠 아마추어 골프 연맹과 이 지역 출신 선수의 성공을 돕기 위해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는 여러 명의 브록튼 골퍼들이 부담할 예정이다.

마스터스에서 아마추어가 약간이라도 사람들의 주의를 끈 마지막 순간은 라이언 무어가 13위에 오른 2005년이었다. 믿기지 않는 오거스타 행에도 불구하고 파지앨리는 그곳에 어울리지 못할 선수가 아니다. 헤스터의 말이다. “마스터스 연습장에서 아마추어를 골라내는 일은 아주 쉬운 일이다. 하지만 매트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투어 프로 수준에 올라있다.” 물론 골프에는 그것 이상의 많은 요소들이 있다. 전 골프백 관리실의 보조원이었던 그가 마스터스의 엄청난 광경에 압도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빅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설마! 매트는 여러 차례 아슬아슬한 상황을 겪어왔다. 불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내게 그가 절대로 두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는 그런 상황을 겪게 되면 정신적으로 매우 강인해진다. 오거스타에서 가장 어려운 홀이라는 아멘 코너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아멘 코너를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편집부 / BY ALAN SHIPN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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