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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척 없는 공간, 인간의 자취를 담아내다

'사진 거장' 칸디다 회퍼 개인전

텅 빈 도서관·미술관·공연장 등

사람 없는 풍경서 '역사' 포착

전성기 시절 작품 30여점 전시

칸디다 회퍼 ‘비첸차의 올림피코 극장 I(Teatro Olimpico Vicenza I)’ /사진제공=국제갤러리




오스트리아 성 플로리안 수도원 도서관의 수백 년 된 서가에는 수만 권의 책들이 꽂혀있다. 오래된 도서관의 역사보다 더 긴 시간 축적된 인류의 지식으로 빼곡한 공간이다. 이곳 도서관을 촬영한 칸디다 회퍼(74)의 작품은 가로 약 2m의 대작이지만 현미경으로 본 듯 각각의 책이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실제로 가까이 들여다보면 어떤 책인지 가늠할 수 있을 정도다. 바로크풍의 도서관 천장장식은 파란 하늘을 그리고 있다. 인간의 손기술은 자연을 실내로 끌어들였고 그 자연을 거느릴 지식을 쌓았다. 사람 하나 없는 빈 도서관이지만 책 하나하나가 인간의 존재요, 이들이 모인 도서관은 그 자체로 거대한 역사를 웅변한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 사진 거장 칸디다 회퍼의 개인전 ‘깨달음의 공간(Spaces of Enlightement)’이 오는 26일까지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 2관에서 열린다. 그녀는 세계 현대사진사(史)의 한 축을 이루는 ‘베어학파’의 1세대 대표작가다. 토마스 스투르트, 토마스 루프,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등과 비슷한 시기에 공부했지만 그중에서도 회퍼가 가장 먼저 놓인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지난 50여년 작업들 중에서도 1990년대 말부터 2016년작까지 전성기 20년간의 대표작 30여 점을 엄선했다.

칸디다 회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세르반테스 극장(Teatro Cervantes Buenos Aires)’ /사진제공=국제갤러리


회퍼의 작품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의 초기작에는 인물도 간혹 있었으나 1970년대 말 이후 공간에 집중하고 있다. 실내 공간을 촬영하지만 인공조명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특징 중 하나다. 자연광과 건물 부속 조명 등을 활용할 뿐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한 일체의 빛은 사양한다. 철칙이다. 작가는 “그곳에 원래 있지 않은 빛을 더해 이미지를 과장해서 극적인 효과를 내고 싶지 않다”면서 “조명뿐만 아니라 그 장소에 놓인 것들까지, 이미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독일 출신의 사진거장 칸디다 회퍼. /촬영=안천호, 사진제공=국제갤러리




이른바 ‘사람 없는 풍경’이지만 그 안에 아주 강렬한 사람의 존재가 감지되는 게 감동의 원천이다. 특히 이번에는 도서관과 미술관, 공연장 등 18세기 서구 계몽주의 사상으로 전개된 깨달음의 공간들을 담고 있다. 회퍼는 “이런 공간들이 늘 나를 설레게 한다”며 “사람 없는 공간이 (오히려) 사람들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고 얘기했다. 사람이 없기에 비로소 그 공간을 있는 그대로 더 풍부하게 알아챌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공연장 연작은 뒤셀도르프 시립극장을 시작으로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아르헨티나의 극장과 오페라 하우스의 내부 공간을 보여준다. 박수갈채가 그친 직후의 묘한 진동과 여운이 객석 빈자리에서 느껴진다. 명문가 사유지에 마련됐던 개인 극장의 화려함, 닫힌 공간을 더 넓고 깊게 보이도록 원근법을 가미한 내부 장식이 볼거리다. 귀족들이 독점했던 박스석과 저렴한 입장료로 서서 관람해야 하는 파르테르(오늘날의 스톨석)는 왕족·귀족들만 향유하던 음악이 계몽시대 중간계급으로 확대되고 대중화로 이어진 일련의 역사를 속삭인다.

칸디다 회퍼 개인전 전시전경. /사진제공=국제갤러리


“내부 공간과 사진이라는 매체는 매우 이상적인 조합입니다. 건축물의 내부 공간은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프레임을 갖기에 그 안에 특유의 구조와 질서가 있습니다. 빛이 중요하고, 그 자체가 문화이며, 사람들에 의해 제작돼 쓰이고 그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은 것이 건축물입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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