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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진칼럼]'미스터 션샤인②' 애신은 결국 조선이었네





‘미스터 션샤인’은 고애신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그린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군과 일본 낭인, 조선 최고의 재력가는 물론 이름없는 민초들까지 모두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내던진다.

이야기는 러브라인을 넘어 그녀의 희생을 막는데 주력한다. 여성 주인공이 수동적인 보통의 로맨스물과 겉보기에는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 법도 하다.

고애신(김태리)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사실 조선 후기 대갓집 애기씨의 운명을 극복할 방법은 없었다. 가마를 타고 하인들과 함께 걸으면 모든 이들이 고개를 숙인다. 귀하고 연약하며 존중받는 귀한 애기씨. 그녀는 그 상황을 당연하게 인식한다.

보통의 로맨스 드라마 여주인공의 캐릭터는 여기에서 설명이 끝난다. 그러나 고애신은 새로운 꿈을 꾼다. 나라를 위해 죽어간 부모의 피, 살아남으라는 할아버지의 말, 기꺼이 스승이 되어준 장승구(최무성). 그리고 그녀의 모든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뒤를 걷는 함안댁과 행랑아범까지.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다.

그녀는 투사가 되어간다. 총쏘는법, 담을 넘는 법, 지체없이 사람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법을 익힌다. 강함을 여인이란 포장지로 숨긴 채 고애신은 그렇게 이름없는 의병의 길로 한걸음씩 나아간다.



고애신의 본모습을 알고 있는 세 남자는 연정을 품는다. 부모를 잃고 미군이 된 ‘경계자’ 유진초이(이병헌), 천민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일본 낭인이 된 구동매(유연석), 그저 세상을 한탄하던 재력가 김희성(변요한)까지.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녀를 지키기 위해 나선다. 이유도 행동도 다르지만 목표는 오직 하나뿐이다.

유진초이는 고애신에 “귀하가 구하려는 조선에는 누가 사는 것이오. 백정은 살 수 있고, 노비는 살 수 있는 것이오”라고 말한다.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던 그녀는 이를 계기로 사람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나라를 꿈꾼다. 외국어를 배우고, 더 나은 세상에 대해 거침없이 말하고, 권위에 도전한다.



김은숙 작가는 고애신이라는 인물의 가치를 사랑으로 포장했다. 그녀가 내재한 본질적 의미는 더 깊이 들어갈수록 ‘나라’와 연결된다. 유진초이도, 구동매도, 김희성도 그리고 모두의 사랑은 애신을 넘어 조국 즉 조선으로 향한다.

있어도 없는 듯 연약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 필요하고 든든한 나라. 사람들을 보호하며 이들이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국가. 그 혼과 자존심을 고애신에 심었다.

로맨스 장르에 특화된 작가는 자신이 가장 잘 표현하는 방식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확장했다. ‘새로운 스타일의 팩션 사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의적 의미를 통해 사랑의 의미를 확장시키는 영리한 선택을 했다.



지금까지 사랑으로 이어져온 흐름은 이제 대립으로 치닫는다. 그녀를 지키려는 이들과 친일파·조선을 전복시키려는 일본인들과 맞선다.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총과 칼, 그리고 붓을 든다. 목숨은 이미 그녀를 위해 던졌다.

그랬다. 스러져가는 것이 뻔히 보이는 나라를 위해 이름 모를 이들이 총과 죽창을 들었다. 정작 교과서와 방송에서 수차례 의병 사진을 봤지만, 이들의 이름 하나라도 하는 이가 있던가. 장승구는 말한다 “듣고 잊어라. 그들은 그저 아무개다. 그 아무개들 모두의 이름이 ‘의병’이다. 이름도, 얼굴도 없이 살겠지만, 다행히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아 유구히 흐른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

‘미스터 션샤인’ 주인공들의 운명도 그럴까. 기억되지 못할 아무개들은 끝내 ‘의병’이란 이름으로 스러질까, 아니면 그 훈장과도 같은 이름조차 얻지 못하게 될까. 김은숙 작가의 판타지로맨스는 늘 해피엔딩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이번만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최상진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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