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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설탕의 굴욕





1598년 독일인 법률가 파울 헨츠너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을 알현한 자리에서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여왕이 웃을 때 치아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이유는 나중에 밝혀졌다. 단 것을 너무 좋아했던 엘리자베스 여왕이 설탕을 입에 달고 사는 바람에 치아가 모두 썩었던 것이다. 당시 영국 귀족층 사이에 설탕 소비 열풍이 얼마나 거셌는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설탕이 본격적으로 유럽에 들어온 것은 항해술을 앞세운 신대륙 정복과 관련이 있다. 원래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는 남태평양과 뉴기니·인도네시아 등에서 재배됐으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등이 신대륙을 정복하면서 카리브해 전역으로 재배지가 확대됐다. 영국이 설탕 생산 대열에 합류한 것은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대서양 제해권을 장악하면서부터다. 영국은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서인도제도로 데려와 이들을 이용해 생산한 설탕을 유럽에서 팔아 훗날 산업혁명에 필요한 자본을 축적했다. 1806년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 때문에 서인도제도로부터 설탕 수입이 어려워지자 독일의 한 화학자가 사탕무에서 설탕을 추출하는 데 성공하며 설탕 생산량은 급속도로 증가했다.



한반도에 설탕이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로 추측되나 공식 문헌에 등장한 것은 고려시대부터다. 이인로의 ‘파한집(破閑集)’에는 한 승려가 임금에게 화엄경을 강론하고 받은 돈으로 설탕 100덩어리를 사서 방 안에 쌓아뒀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문종이 와병 중인 어머니 소헌왕후가 그토록 사탕을 맛보고 싶어 했지만 끝내 구하지 못해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조선시대만 해도 설탕이 왕실에서도 구하기가 힘든 귀한 상품이었던 것이다.

최근 들어 국제시장에서 설탕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고 한다. 4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설탕 선물가격은 파운드당 10.64센트까지 떨어졌다. 2016년 4·4분기 평균 거래가격이 20.81센트였던 점을 감안하면 1년8개월 만에 반토막이 난 셈이다. 설탕이 당뇨와 비만·암을 유발한다는 연구들이 나오면서 소비자들이 설탕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탕은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원인데다 음식의 맛을 내는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먹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몸에 해롭지 않을 만큼 섭취량을 조절할 필요는 있다. 지나치면 모자라니만 못한 것이 어디 설탕뿐이겠는가.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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