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시어드(63)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전 부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10년을 맞아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단기적으로는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과 신흥국 위기에 대해 우려하는 한편 잘 나가는 미국 경제에 대해서도 “경기 확장기가 끝나면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에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년 전 파산한 리먼브러더스의 글로벌 수석이코노미스트로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세계 경제의 대침체를 불러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한 그는 지난 6월 말까지 S&P 수석이코노미스트 겸 부회장으로 활동하다 지금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선임연구원으로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와 대응책을 연구하고 있다.
베어링과 리먼·노무라를 거쳐 S&P까지 23년간 월가를 누볐던 시어드 전 부회장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 대해 “출구가 없는 혼돈에 빠진 듯했고 동료들과 헤어지며 맛본 패배감은 인생 최대의 아픔 중 하나였다”고 회고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또다시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사한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하고 같은 위기가 또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면서 “월가는 처참하게 무너졌던 만큼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왔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상처와 교훈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미 증시의 거품 논란에 대해서도 그는 “증시가 최장 기간 강세장을 이어가면서 밸류에이션이 많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고 유의할 점”이라면서도 “단기 조정은 있을 수 있어도 버블은 아니어서 증시 폭락으로 단숨에 하락장으로 반전할 위험은 별로 없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경기 확장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며 “다음 경기 침체기에는 래리 서머스 미국 전 재무장관이 지적했던 만성적 수요 부진에 따른 ‘장기 침체’가 일어날 위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현시점에서 그가 무엇보다 주목하는 것은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이다. 최근 신흥국 위기가 심상치 않은데다 쉽사리 해결될 가능성도 낮은 상황에서 중국 경제마저 흔들릴 경우 또 한 번의 위기가 닥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긴축적 통화정책에 강도를 더하면서 신흥국 시장이 살얼음 위에 있는데 중국 경제가 휘청여 그 위에 떨어지면 ‘파괴적’ 수준의 충격이 세계 경제를 덮칠 것으로 그는 우려했다.
시어드 전 부회장은 “신흥국들이 과도한 부채 속에 달러화 부족 현상에 직면해 금융위기를 맞고 있지만 연준이 이 때문에 금리 인상을 늦출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 “미국의 금리 인상은 신흥국 통화에 대한 달러 강세를 유발해 시장 불안을 지속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연준이 이달 하순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미국 기준금리를 올해 말 2% 중반으로 끌어올리는 데 이어 “내년에도 세 차례 정도 금리를 더 올릴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여기에 미중 무역관계 악화로 중국 경제가 한층 타격을 입을 경우 위기는 심각하게 확대될 수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시어드 전 부회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층의 강한 요구에 쉽사리 중국에 대한 압력을 거두지 않을 것”이라며 “부채가 많은 중국 기업들이 무역전쟁으로 타격을 입으면서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조짐이 역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경제가 구조적 경착륙 상황에 이르지 않더라도 흔들리는 모습만 보여도 신흥국들의 피해(damage)는 훨씬 커질 것”이라며 “이 경우 신흥국 위기가 심각하게 확대되면서 세계 경제가 큰 타격을 입게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경제위기를 초래할 만큼 보호주의를 밀어붙일 가능성은 낮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일부에서 반(反)무역주의자로 부르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호주 출신으로 모나시대를 졸업하고 호주국립대(ANU)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취득한 시어드 전 부회장은 월가 진출 전 오사카대 교수를 지내고 일본은행의 방문 연구원을 역임한 일본통이기도 하다. 특히 일본의 ‘잃어버린 90년대’에 관한 전문가인 그는 “한국 경제가 일본과 비슷한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를 잘 알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한국은 일본과 비슷한 측면이 많지만 다행히 다른 경쟁력들도 있다”면서 “K팝 등 문화산업을 한층 강화하고 경쟁력 있는 정보기술(IT) 분야와 적극 융합해 ‘소프트파워’를 확장해 가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남북관계 개선 속에 한반도 통일을 겨냥한 경제 발전 전략을 착실히 모색해나간다면 장기 침체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뉴욕=손철 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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