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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간 건물안전법] 지진 겪고도 설익은 대책 난무 ... '안전 불감증'에 악몽 되풀이

정부, 부실시공 원천 차단 위해

필로티 건축물 기준 강화했지만

건축사-구조기술사 갈등만 불러

재 입법예고 가능성까지 거론

10일 공사장 지반 붕괴로 건물이 기울어진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상도유치원에 대한 철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포항 지진 이후 건축물의 구조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한 대책 가운데 하나가 필로티 건축물에 대한 설계 및 감리 강화다. 이를 위해 국토교통부는 ‘필로티 건축물에 대한 건축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지난 7월 말 입법예고했다. 핵심은 3층 이상 필로티 건물을 신축할 경우 공사감리 때 관계전문기술자와의 협력 의무 확대 등을 골자로 한 것이다. 현재 3~6층은 건축사가 설계 및 감리를 다 맡고 있다.

문제는 이 법안이 건축사와 구조기술사 간의 영역 다툼으로 시행조차 불투명한 상황이 된 것이다. 건축사들은 1,000명밖에 되지 않은 구조기술사가 건물 감리를 하는 것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구조기술사는 건물 구조가 특수해 전문가인 구조기술사가 감리에 참여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무엇보다 국토부가 입법예고 때 고급기술자로 감리 권한을 낮추면서 양측의 대립을 더욱 키웠다.



◇입법예고하자 거세진 영역 다툼=국토부는 7월 말 3층 이상의 필로티 건축물 설계 시 구조기술사의 참여를 의무화하고 감리 때도 구조전문가가 주요 공정에 참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시행령·시행규칙을 입법예고했다. 필로티 건축물은 내진설계에 취약한데다 제대로 된 감리도 이뤄지지 않아 부실시공이 이뤄졌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포항 지진 이후 조사과정에서 자연재해뿐 아니라 인재인 점도 드러났다. 붕괴 위험에 처한 대부분의 건축물이 건축 설계부터 구조 계산이 잘못됐거나 설계는 잘 됐더라도 시공 과정에서 부실시공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필로티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필로티 건축물 구조 기준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7월31일 입법예고가 시작되자 감리권을 둘러싼 건축사와 구조기술사의 업무영역 다툼은 거세졌다. 건축사는 인력이 부족한 구조기술사에게 넘길 수 없다는 입장이고 구조기술사는 건축사는 전문성이 부족하니 권한을 달라는 주장이다. 양측이 대립하는 가운데 국토부의 대안은 양쪽의 불만을 더욱 키웠다. 현실적인 적용을 위해 감리 참여 권한을 관계전문기술사 중에서도 건축 분야 고급기술자로 낮췄기 때문이다.





◇법안 오류로 양측 다툼에 혼란 자초한 국토부=당초 대책 법안을 마련하기 위해 구성된 태스크포스(TF)에서는 구조기술사의 감리 참여 의무화를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입법예고된 법안에는 고급기술자가 새로 등장했다. TF에 참석한 한 구조기술사는 “구조기술사의 인원 부족 문제가 지속적으로 거론되자 도면을 볼 수 있는 수준의 전문가로 풀을 확대하자는 차선책으로 선회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고급기술자는 관련 법안이 미비할뿐더러 상위 건축법과 충돌한다. 2014년의 경주 마우나 리조트 사고 이후 만들어진 현행 건축법 시행령 제91조의3(관계전문기술자와의 협력)에 따르면 6층 이상의 건축물이나 특수구조 건축물은 구조기술사가 설계와 감리에 모두 협력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때 관계전문기술자는 기술사사무소를 개설한 구조기술사로 자격을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고급기술자로 기준을 낮추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특급기술자 지위인 건축사의 설계를 그보다 전문성이 낮은 고급기술자가 허가해야 하는 꼴이 된 것이다.

또한 건축 분야 자격증으로 분야를 넓힌 것도 문제다. 당연히 구조 관련 전문성이 없을뿐더러 과거 부실 사고 때마다 지적됐던 일명 ‘자격증 대여’ 사태가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 기술사사무소를 열지 않고 다른 시공사에서 일하고 있는 구조 분야 고급기술자가 관계 회사 대표에게 도장만 빌려주는 허점을 또다시 방치한 것이다.

◇이권 쟁탈전 속 건축물 안전은 뒷전=구조기술사회는 원안대로 구조기술사의 감리권을 주장한 반면 건축사는 아예 오류 항목을 삭제하고 다른 방안을 마련해보자며 맞서고 있다. 이렇다 보니 법안은 수정을 통한 재입법이 거론되는 것은 물론 통과돼도 제대로 시행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상황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수정안을 내놓겠지만 아직 수렴한 의견을 들여다보는 중이라 어떻게 될지 답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나창순 국민대 건축과 교수는 “현실적으로 감리 감독할 인원 확보의 세부적인 문제가 있기는 하다”면서도 “그렇다고 비전문가가 권한을 갖는 것은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기자 now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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