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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규장각이 술마시던 곳이라고?

조상인 문화레저부 차장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방한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환영식을 서울 창덕궁에서 진행하게 했다. 요즘처럼 하늘 맑은 가을날, 그것도 조선 궁궐 중 가장 아름답고 유일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창덕궁이라니. 기쁘고 반갑기 그지없는 소식이었다. 우리나라를 찾은 국빈이 비공식적으로 창덕궁을 방문한 적은 있지만 대통령이 주최하는 공식 국빈 환영식이 개최되기는 광복 후 처음인 일이었다.

청와대가 배포한 언론 자료와 보도 등에 따르면 이날 양국 정상은 창덕궁의 중심 건물이자 국보 제225호인 인정전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국립국악원이 펼친 궁중무용을 감상한 뒤 전각 내부를 둘러봤다. 원래 인정전은 국왕 즉위식과 신하 하례뿐 아니라 외국 사신 접견 같은 국가적 행사를 치르던 곳이니 제대로 격이 맞았다.

이어 문 대통령과 조코위 대통령은 인정전을 떠나 후원 입구 부용지에 마련된 영화당(暎花堂)에서 환담을 나눴다고 한다. 이곳 부용지 앞에서 문 대통령은 “연꽃이 아름다운 연못이라는 뜻”이라고 소개하고 규장각을 가리키며 “임금님의 도서관인데 정조가 만들었다. 이 공간에서 임금님이 책을 읽기도 하고 바둑을 두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우리 대통령이 직접 우리 문화재를 해설하다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데 그 내용에서 ‘덜컥’ 걸렸다.

규장각을 바둑 두고 술도 마시는 곳이라고 표현한 것이 마치 임금의 사적인 공간처럼 오인할 수 있게 들렸기 때문이다. 부용정 일대를 포괄적으로 가리킨 것이라면 어느 정도 여흥의 공간으로 활용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규장각을 그렇게 묘사한 것은 분명 잘못됐다. 홍순민 명지대 교수가 쓴 ‘홍순민의 한양읽기:궁궐’(눌와 펴냄)을 보면 부용지와 그 옆의 정조가 지은 2층 건물인 주합루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주합루는 주위 경치를 둘러보며 쉬는 공간이 아니었다. 당저(임금) 어진을 모셔놓고 담당자들이 시시때때로 봉심하는 곳이었다. … 규장각은 처음에는 임금과 직접 관련된 자료들을 경봉하기 위한 공간으로 시작하였다. 그러다 점차 왕실의 족보와 관련 귀중품을 보관하는 곳으로, 왕립 서고로, 연구소로, 그리고 나중에는 임금을 측근에서 보필하는 관서로 발전했다.”

하지만 훗날 주합루 안에 모셔졌던 어진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더 나중에는 총독들이 주관하는 연회의 장소가 됐다. 원래의 용도가 변질됐다고도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무슨 잘못이 있겠나. 자료 준비 과정에서 뭔가 오류가 있었거나 혹은 보도자료가 만들어지면서 조금 내용이 틀어졌겠지. 하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보이자 세계유산인 건물을 다른 나라 국빈에게 설명한 자리였던 만큼 그 영향력과 파급력을 따져봤을 때 아닌 것은 아니라고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러나 과거의 유산으로 박제됐던 궁궐이 일반에 개방되고 이처럼 국빈 환영식 장소로 활용된 것은 지극히 반가운 일이다. 문화재 안내판도 알기 쉽게 고쳐 쓰기를 지적한 문 대통령이다. 더 적극적인 문화재 활용을, 그래서 과거의 유산이 미래의 자산이 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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