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는 18일(현지시간) 바티칸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다. 교황청의 발표에 따르면 교황과 문 대통령의 개별 면담 시간은 ‘정오’다. 그간 바티칸을 찾은 각국 정상들에 대한 교황청의 의전과 비교하면 파격적이다. 교황과의 개별 면담 시간은 보통 오전 9시 30분 전후로 잡히고, 소요 시간도 30분 정도에 그친다. 사실상 교황을 잠시 알현만 하는 셈이다. 지난 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바티칸 방문 역시 이 같은 일반적 관례의 틀 안에서 이뤄졌다. 이에 반해 문 대통령에게는 그 이상의 시간이 주어졌다. 한반도 상황에 대한 교황의 관심과 애정이 드러나는 부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교황의 한반도에 대한 관심은 늘 각별했다. 2013년 3월 즉위한 교황은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했다. 아시아 국가 중 첫 방문지였다. 천주교에서 ‘순교자의 땅’으로 불리는 한국의 특별한 위치도 있지만 오랜 분단 국가로서 국민들의 상처가 크다는 점도 교황의 발걸음을 한국으로 향하게 했다.
일 년에 두 차례, 부활절과 성탄절에 교황이 전 세계를 향해 내놓는 강복 메시지 ‘우르비 에트 오르비’에서도 한반도는 별도로 언급됐다. 교황은 지난 해 성탄절 ‘우르비 에트 오르비’에서 “한반도의 대치가 극복되고, 상호 신뢰가 높아질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말했다. 지난 4월 부활절 ‘우르비 에트 오르비’도 마찬가지였다. 교황은 “현재 진행 중인 대화가 결실을 보기를 기원하고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를 진전시키길 바란다”며 “(대화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한민족의 안녕을 증진하고, 국제사회에서 신뢰 관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혜와 분별을 가지고 행동하길 빈다”고 강조했다. 특히 올해 부활절은 4·27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었기에 교황의 메시지는 더 특별했다.
문 대통령 역시 지난 해 5월 집권 후 교황청에 김희중 천주교 대주교를 특사로 파견해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친서를 전달하는 등 한반도에 대한 교황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요청해 왔다. 당시 교황은 천주교 신자인 문 대통령에게 묵주를 선물하기도 했다.
교황청에 따르면 교황과 문 대통령의 면담 하루 전인 17일 오후 6시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청 국무총리 격인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를 집전한다.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개별 국가의 평화를 위한 미사가 집전되는 건 극히 드문 일인데다 국무원장의 집전 역시 파격적인 결정이다.
문 대통령은 18일 교황 면담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평양 초청’ 뜻을 대신 전할 예정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유럽 순방과 관련한 브리핑에서 지난 평양 남북 정상회담 기간 중 김 위원장이 “교황님이 평양을 방문하시면 열렬히 환영하겠다”는 뜻을 문 대통령에게 밝혔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관심이 많으니 만나보는 게 어떠냐”고 말하자 김 위원장이 환대 의사를 밝혔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종교계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을 찾았던 김희중 천주교 대주교도 백두산 천지에서 김 위원장에게 “남북이 화해와 평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교황청에 알리겠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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