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10일 성명서를 내고 “현행 사법부는 법 앞의 평등이라는 원칙을 망각하고 사법농단을 바로잡을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있다”며 △사법농단 관련자 수사 협조 △적극적 진상규명과 사태 재발 방지 △사법농단 피해자 권리 구제를 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재학생들은 “법관은 그 양심에 따라 독립 심판하는 게 원칙인데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의 특정 요구사항을 재판부에 전달했고 개별 판사들을 사찰했다”며 “이 같은 시도가 어떤 법률과 양심에 따라 이루어진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또 “현행법상 모든 국민이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갖는데도 실제 재판거래 의혹을 보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누구에게나 보장된다고 감히 말할 수 없게 됐다”며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도 사법농단 관련 청구된 영장들이 연이어 기각되는 걸 보면 사실이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재학생 모임은 “사법의 권력은 헌법의 이념에 충실하고 국민의 신뢰를 받을 때에만 그 존재가 정당화된다”며 “진실을 은폐하는 자와 은폐를 방조하는 자가 진상규명과 정의 실현을 지연한다면 스스로 정당성을 저버리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사법부에게 뒤늦게라도 수사에 협조하고 진상규명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성명서는 로스쿨 재학생 470명 중 299명(71.06%)의 찬성표를 받아 공개됐다. 앞서 로스쿨 재학생 모임은 지난 8일과 9일 이틀간 로스쿨 재학생 전원을 대상으로 성명서 공개 여부 투표를 벌여 찬성 299표와 반대 31표, 무효표 4표를 얻었다.
서울대 로스쿨 재학생 성명서 ‘사법부에 고한다’ 전문
사법부에 고한다 -사법농단 사태 앞에서 사법의 길을 고민하며
우리는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짓밟았다는 의혹에 직면한 사법부에 참담한 심정으로 고한다.
헌법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그러나 특별조사단에 의해 밝 혀진 바와 같이 법원행정처는 개별 판사들의 정치 성향과 판결 내용을 사찰하였고, 특정 사안들에 대한 대법원의 요구사항을 재판부에 전달함으로써 법관의 독립성을 침범하였다. 나아가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 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등의 문건은 그 존재 자체로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였다. 사법부가 청와대와 접촉 하려 했던 시도가 어떤 법률과 양심에 따라 이루어진 것인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헌법 제27조 제1항,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재판청구권의 핵심 전제는 재판의 공정성이다. 그러나 사법부는 재판을 거래하였다는 의혹을 자초함으로써 바로 그 공정성을 위협하였다. 의혹이 처음 제기된 5월, KTX 승무원들은 대법원에서 “우리가 지금 법을 믿을 수 있는 상황이냐”고 외쳤다. 그 비통한 외침 앞에서, 그리고 계속하여 드러나는 재판거래 의혹의 정황들 앞에서, 사법부 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누구에게나 보장된다고 감히 말할 수 없게 되었다.
헌법 제1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 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법을 적용하는 법관이라 할지라도 법 앞에서 는 다른 시민들과 평등하다. 그러나 사법농단 수사 과정에서 청구된 영장들은 연이어 기각되고 있고, 이는 유례없 이 상세한 기각이유들로 뒷받침되고 있다. 현 사법부가 법 앞의 평등이라는 원칙을 망각하고 사법농단을 바로잡 을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다.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사법의 권력은 헌법의 이념에 충실하고 국민의 신뢰를 받을 때에만 그 존재 가 정당화된다. 그러나 진실을 은폐하는 자와 은폐를 방조하는 자가 아울러 진상규명과 정의 실현을 지연하면서, 사법부는 스스로의 정당성을 저버리고 있다. 사법부는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을 법과 양심에 따라 엄정하 게 행사하여 민주적 기본질서와 법치주의를 확립하여야 한다는 법관윤리강령을 다시금 깊이 새겨야 한다.
선배 법조인들이 걸어가며 남긴 판결문은 우리의 길이 되어왔다. 그 걸음을 온전히 따라가기도, 비판적으로 바라 보기도 했지만 적어도 그 모든 문장은 헌법과 법률에 의한 법관의 양심에 따라 쓰였으리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오늘의 사태에 이르러 그 믿음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공정한 재판은 공허한 말로 퇴색되었고, 법관의 저울에 놓인 법치의 이념은 무게를 가늠하기 어렵게 되었다.
법을 공부하며, 법에 따라, 법과 함께 살아갈 미래의 법률가로서 우리는 헌정사의 굴곡에서 사법의 길을 고민한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우리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생들은 뜻을 모아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사법부 역사에 오명을 남긴 관여 법관들은 책임을 통감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 하나, 사법부는 진상을 규명하고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라. 하나, 사법부는 현 사태로 인해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의 권리를 구제하라.
2018. 10. 10.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재학생 일동
/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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