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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워치]하루 20시간 국감 '기획·각본·연출'…우리는 'ㅁㅁ맨'이다

■김 보좌관의 피말리는 국감24시

슈퍼·믿을·예스·영업·강철·버닝…

의원실서 쪽잠 잔지 3일째…

도시락으로 주린 배를 채운다

온종일 질의·자료 수집 지치지만

'국감 스타' 영감님 상상하니 의욕이 샘솟는다

국정감사가 한창인 지난 22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의 야당 의원실에서 한 보좌관이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더미를 앞에 두고 잠깐 눈을 붙이고 있다. /이호재기자




‘띠리리리링~’

야속한 알람 소리에 부스스 눈을 떴다.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아침8시다. 새벽4시쯤 잠자리에 들었으니 네 시간 정도 잤나 보다. 푹신한 집 침대를 두고 국회의원회관 의원실 구석에 있는 라꾸라꾸 침대에서 쪽잠을 잔 지 벌써 3일째. 자고 일어났는데도 온몸이 찌뿌듯하고 눈꺼풀이 무겁다. 국정감사 기간 하루평균 근로시간은 15~20시간 정도다. 화장실에 가거나 잠깐 눈을 붙일 때를 제외하고는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그렇다 보니 틈틈이 스트레칭을 해주지 않으면 목·허리 디스크가 생기기 십상이다. 지난해 국감 때 아래층 보좌관이 디스크가 터져 병원에 실려가는 것을 보고 나서는 시간이 날 때마다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내일은 우리 영감님이 속한 상임위원회 국감이 있는 날이라 질의내용을 바짝 정리해놔야 한다. 다행히 질의순서가 맨 앞이다. 지난번에는 질의순서가 맨 뒤여서 고역을 치렀다. 앞 순서인 다른 의원들이 굵직한 이슈들을 선점해버린 탓에 우리 영감님은 자잘한 질의만 하다 나왔다. 이번에 준비한 내용은 지난 한 달간 날밤 새워가며 공을 들인 ‘역작’이다. 이 아이템으로 ‘국감 스타’가 돼 포털 사이트 뉴스 메인을 장식할 우리 영감님을 상상하니 의욕이 샘솟는다. 질의서 내용은 꼼꼼히 살펴야 한다. 작은 실수라도 생기면 영감님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재작년 국감에서 질의서에 숫자 하나 잘못 썼다가 국감장 복도에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화를 내던 영감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지난주 피감기관에 요청해놓은 자료는 아직도 함흥차사다. 아침부터 열이 뻗쳐 씩씩거리며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는 ‘시간이 부족하다’ ‘공개할 수 없는 자료다’ 등 변명만 늘어놓는다. 화를 낼 힘도 없어 오늘 안에만 제발 보내달라고 애걸복걸한 뒤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벌써 지치는 기분이다. 배꼽시계가 울리는것을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점심은 배달도시락. 점심을 먹던 의원실 막내가 “퇴근하려면 이제 12시간 남았네요”라며 자조 섞인 농담을 했다. 농담인데 눈물이 나는 건 왜일까. 공연히 창밖을 내다보니 오늘따라 날씨가 쾌청하다. 한창 볕 좋고 바람 좋을 가을날 의원실에 하루 종일 처박혀 있는 내 신세가 처량하기 그지없다. 국감이 끝나면 11월인데 그럼 벌써 겨울이다. 올해도 단풍구경은 남의 일이 됐다.





오후4시30분. 의원실 문앞에서 누군가 서성인다. 일전에 두어 번 만났던 기자다. 내일자 기사로 낼 만한 자료가 있나 물어보러 온 듯하다. 나름 친분이 있는지라 아까 요청해놓은 자료가 도착하면 정리해 보내주겠다고 했다. 기자 얼굴에 화색이 돈다. 저녁7시. 저녁도 배달도시락으로 때우기로 했다. 도시락은 이제 물릴 대로 물려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곧장 모니터 앞에 다시 앉아 메일함을 열어보니 요청한 자료가 와 있다. 요즘 모두가 관심을 두고 있는 내용이라 여러 의원실에서 요청해놨을 것이다. 아마 지금쯤 다들 자료를 엑셀로 분석하고 있겠지. 같은 자료를 받으면 가장 먼저 분석해서 가장 먼저 보도자료를 내보내는 의원실이 승자다. 자칫하면 다른 의원실에 선수를 빼앗겨 여태 준비한 게 물거품이 될 수 있으니 1분 1초가 아쉽다.

밤11시쯤 되니 슬슬 잠이 몰려온다.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셨다. 8잔째다. 카페인에 내성이 생겼는지 정신이 들기는커녕 몽롱하기만 하다. 건너편 다선의원 방은 슬슬 퇴근 준비를 하는지 소란스럽다. 다선의원은 상대적으로 질의 부담이 덜 하지만 우리 영감님은 이름을 알려야 하는 초선인지라 국감에서의 성과가 중요하다. 그만큼 업무량이 많다는 얘기다. 잠도 깰 겸 복도를 잠시 걸었다. 아직 불 켜진 방이 많다. 군데군데 텐트도 보이고 침낭도 보인다. 잠옷을 입고 복도를 서성이는 보좌관들도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다.

다시 책상에 앉아 심기일전해 엑셀 작업을 마치고 보도자료를 만들고 나니 새벽4시30분. 오늘만큼은 집에서 자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짐을 챙겨 나왔는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힘겹게 택시에 몸을 싣고 시계를 보니 새벽5시다. 한두 시간은 눈을 붙일 수 있다. 아까 오후에 봤던 기자에게 완성한 보도자료를 메신저로 보내놨다. 드디어 하루가 끝났다는 안도감이 든다. 선루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스르르 눈이 감겼다.
/양지윤기자 y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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