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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뇌과학 임상전문가 허지원 교수] "사이비 심리상담 성행...제대로 된 마음치료 위해 앱 개발"

국내 심리학 관련 자격증 2,800개 넘어

TV출연 상담가 중에도 비전문가들 많아

과학적 근거 없는 치유방법 떠돌아 걱정

심리치료에 부담 느끼는 이들 돕고 싶어

지난해 전문 앱 '마성의 토닥토닥' 오픈

한국인 마음 병 주 원인은 과중한 책임감

성공의 명제 갇혀 늘 불안감 안고 살아가

'자라투스트라...' 읽고 철학도 꿈꿨지만

사람들 마음 관찰에 빠져 심리학 선택

세계 최초 조현병 성격장애 원인 규명도

허지원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가 서울경제신문을 만나 심리치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한국인의 마음이 멍들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조사한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 네 명 중 한 명은 일생 동안 한 번 이상의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다. 공황장애는 더 이상 낯선 병명이 아니다. 부산 일가족 살인사건, PC방 살인사건 등 정신질환으로 인한 강력범죄도 나날이 늘고 있다. 우리는 왜 불안하고 우울할까.

최근 신간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를 펴내 주목받고 있는 허지원(37·사진)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뇌과학 등을 전공한 임상전문가다. 그는 권준수 서울대병원 교수와 함께 연구해 세계 최초로 정신분열의 일종인 조현병 성격장애 특성 원인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 7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그는 “많은 사람이 심리나 힐링(치유) 이야기를 하는데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책을 통해 쉽게 과학적인 심리학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저서 출간의 배경을 소개했다.

허 교수는 한국에 ‘가짜 심리학’이 늘고 있다고 걱정했다. 사이비를 걸러내고 제대로 된 심리전문가를 육성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허술한 탓이다. 그는 국내 심리학 관련 자격증만 해도 2,800개가 넘을 정도로 남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리치료센터라는 간판을 단 곳들도 우후죽순 늘고 있는데 이 역시 심리치료센터의 적정 개소요건에 관한 법규가 없기 때문이라는 게 허 교수의 분석이다. 특정한 인터넷 프로그램 이수만 하면 누구나 오늘 밤 당장이라도 심리치료센터를 열 수 있을 정도라고 그는 우려한다.

“정말 심리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좋은 말만 해주며 2~3년을 허비하는 사이비 심리상담가들이 많아요. 연구 결과상 심리치료 접근이 어려운 이유로 낙인효과보다 비용 문제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어요. 한 회에 10만~12만원이어서 아무래도 부담이 되나 봅니다. 그래서 3만~5만원 정도 하는 심리카페 등 입증되지 않은 곳으로 사람들이 찾아가더라고요.”

허 교수는 대중들이 간접적이나마 제대로 된 심리학을 접하고 치유를 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기도 했다. 지난해 공개한 심리학 상담 앱 ‘마성의 토닥토닥’이다. 그는 “전문적인 심리치료에 접근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며 “앱을 통해서라도 (심리적 불안을 겪는 이들이) 심리치료자와 간헐적으로 만나면 심리치료에 준하는 효과가 나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주된 원인은 무엇일까. 허 교수는 우리 국민 특유의 ‘과중한 책임감’에서 요인을 찾는다. 그는 “(한국인들이) 좋은 조건에서 시작하지 못했더라도 어떻게든 이를 뚫고 성공해야 가족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다”는 명제에 갇혀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강박 때문에 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고 자신만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우울해진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하지 않았지만 보란 듯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가진 사람이 많아요. 심지어 조직 내 폭력이 있고, 매일 학대당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피해자 역할을 담당하면 조직이 깨지지는 않겠지’라는 생각으로 버티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물론 책임감이 높다고 다 나쁜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이 정도면 병리적이에요.”

그렇다면 국민들의 분노와 우울증은 어찌해 느는 것일까. 평소 소소한 실패를 통해 마음을 단련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게 허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점점 사회가 고도화·전문화되며 일상 속 사소한 좌절을 겪을 일이 줄어들고 있다”고 환기했다. 이어 “이제 버스를 무작정 기다릴 일도 없고 친구와 약속이 엇갈릴 우려도 없다”며 “오히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게 특이한 상황이 돼 사람들의 성격이 더 급해지고 사소한 좌절에도 분노하고 공격성을 보이거나 우울해한다”고 분석했다. 허 교수는 이처럼 분노나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마음 훈련을 돕고 싶어했다.



2018년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혐오’였다. 여성·노인·동성애자·난민 등이 특히 표적이 됐다. 허 교수는 대중들이 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감을 표출하는 배경에 대해 “자기 자신부터 너무 힘들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사회적 책임에 짓눌리던 개인이 좌절하면서 그 공격성을 약자에게 표출한다는 것이다. 그는 “의무와 책임을 개인에게 너무 무겁게 부과하는 사회를 지적해야 하는데 개인 역시 이에 지쳐 사회를, 큰 그림을 볼 여력조차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지금은 촉망받는 뇌과학자이자 임상심리학자이지만 원래 허 교수는 철학도를 꿈꿨었다. 고등학생 시절 독일 철학자 니체의 저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다’를 읽고 나서 철학을 전공하기 위해 고려대 인문학부로 입학했다고 한다. 막상 대학생이 되고 나니 사람들의 마음속을 관찰하는 데 더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심리학을 계속 공부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해당 분야의 교수로 활동하게 됐다.

허 교수는 대중들이 심리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마음이 병들었을 때 제대로 된 심리학전문가로부터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싶어한다. 예컨대 성폭행을 당해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이 적기에 제대로 된 전문가에게 심리상담을 받지 못한다면 상황이 더 악화돼 오랫동안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을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치료시기를 놓치면 심리적인 문제가 만성화되고 정신과전문의와 같은 전문가들이 개입하려고 해도 치유시키기가 매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대중들이 성업하는 가짜 심리전문가들에게 현혹돼 잘못된 상담이나 치료를 받는 일이 없기를 허 교수는 바라고 있다.

그는 “맘카페(자녀를 둔 여성들의 온라인 동아리) 등에 게시된 글 중에는 심리상담을 받아봤는데 소용이 없더라는 내용이 있어 누가 상담을 해줬는지 살펴보니 한국심리학회에서조차도 잘 모르는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더라”면서 “심지어 TV 프로그램에 (심리학전문가라는 타이틀로) 출연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이비 자격증을 지닌) 사람이 있다”며 제대로 된 심리학전문가 육성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허지원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가 서울경제신문을 만나 심리치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이호재기자.


She is...

△1981년 서울 △2003년 고려대 문과대학 심리학과 △2006년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과 임상 및 상담심리 전공 석사 △2009년 한국임상심리학회 임상심리전문가 및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임상심리사 1급 수련 및 자격 취득 △2012년 미국 밴더빌트대 심리학과 방문학자 △2014년 서울대학교 뇌인지과학과 박사 △2014년 서울대 의학연구원 인간행동의학연구소 선임연구원 △2015년 중앙대 심리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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