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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창만필] 박수칠 때 떠나라

서구일 모델로피부과 원장

중단 어려운 인공호흡기 연명치료

소생가능성 낮은 환자에겐 고통

인생을 품위있게 마무리 하려면

사전 의향서 작성해 마음의 준비를





필자가 주로 시술하는 보톡스·필러 주사는 효과가 일시적이라는 특성상 3~6개월 내지 1년에 한 번 정도는 고객을 다시 보게 된다. 같은 고객을 본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몇 개월 만에 다시 보고 그것을 두세 번 반복하면 1년이 금방 지나간다. 그런데 자신의 헤어스타일을 알아서 잘 해주는 헤어디자이너도 바꾸기 힘든데 자신의 얼굴을 젊게 관리해주는 의사를 바꾸기는 참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열심히 오는 고객 중에는 ‘원장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한다’며 나를 위하는 건지 자신들을 위하는 건지 아리송한 덕담을 많이 한다. 그런데 거꾸로 열심히 오다가 안 오는 고객들이 있으면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건강상이나 경제적으로 안 좋은 상황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10여년간 1년에 두세 번은 꼭 오시던 밝고 명랑한 40대 후반의 여성고객이 1년간 안 오셔서 안부가 궁금한 적이 있었다. 그 여동생이 와서는 언니가 수술도 할 수 없는 췌장암 말기이고 현재는 요양원에 들어가 있는데 아직도 본인의 죽음을 못 받아들인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줬다. 안타까운 마음에 예쁜 난초 화분을 가평에 있다는 요양원으로 보내드린 적이 있고 그 뒤로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사람이 언젠가 죽는 것은 만고불변의 법칙인데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죽음을 얘기하는 것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소홀히 하기 마련이다. 심지어는 의사들조차 자신의 환자가 죽으면 실패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권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일단 인공호흡기 연명치료를 시작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지난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의 여파로 인해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서도 연명치료를 중단하면 의사가 살인방조혐의로 고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 통계에 따르면 총 사망자 중 75%가 병원에서 사망하는데 이들 대부분이 소생 가능성이 낮은 상태에서도 단순히 생명연장을 위한 각종 시술과 치료를 받는 게 현실이다. 더욱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혼수 상태에 빠져 환자 자신의 의사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본인의 의견을 사전에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가족들이 연명치료를 할지 말지를 결정하기는 참 어렵다. 어떻게든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좋다는 게 가족들의 일반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모친도 지난해에 비슷한 경우를 겪었다. 모친은 백혈병의 일종인 다발성골수종으로 1년 반 정도 항암치료를 받으셨고 그 후유증으로 6개월을 대학병원에 입원해 계시다 임종하셨다. 입원기간 동안 호흡곤란으로 중환자실을 다섯 번이나 전전하시다가 마지막 두 달은 기관절개술까지 받고 인공호흡기를 달고 계시다가 잘 있으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돌아가셨다. 모친은 입원 중에 자식들에게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치료를 중단하고 집에 가자고 여러 번 말씀하셨고 남동생인 외삼촌에게는 수면제를 갖다 달라는 말씀도 하셨다. 그러나 그때는 어머니 말씀을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지 않고 한쪽 귀로 흘려듣는 우를 범했다. 또한 복기해보면 인공호흡기를 다는 인터벌이 점점 짧아졌는데도 중환자실에서 네 번이나 살아나오시니 다섯 번째는 별생각 없이 인공호흡기를 달게 된 것인데 마지막에는 호흡기를 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처럼 미리 준비하지 않고 그 상황에 빠지면 가족들은 상황 논리상 연명치료를 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연세대병원 김할머니 사건 이후 2018년 2월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에 의해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서 환자 본인의 의사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됐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다. 몇 살에 죽든 아쉽지 않은 나이가 있으랴만 가족들이, 주변 사람들이 아쉬워할 때 가는 것이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아름다운 생을 품위 있게 마무리하기 위해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기 전이라 다섯 번이나 인공호흡기를 달고 계셨던 모친에게는 죄송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있다. 무려 6개월이라는 힘든 입원생활을 견뎌 주셔서 자식들이 어머니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해주신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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