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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로또 사는 사람들과 고흐의 편지

김경훈 디지털미디어부 차장





# 비가 내리는 어느 날. ‘복권 추첨’이라는 문구의 표시판이 내걸린 건물.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길게 줄지어 선 남루한 행색의 사람들.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1882년 그린 작품 ‘복권판매소’에 담아낸 모습이다.

스케치를 위해 건물 앞에 앉아 있던 고흐는 복권을 사려고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고 마음속으로 애잔함을 느꼈다. 그림의 제목은 ‘가난한 자와 돈’이라고 붙였다.

‘힘들게 벌었을 돈으로 복권을 사지만 기대하는 행운이 돌아갈까.’ 이런 고흐의 생각이 제목의 배경이 됐다고 평론가들은 말했다.

2018년 대한민국의 상황이 고흐의 그림과 겹친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복권판매현황’에 따르면 로또를 포함한 전체 복권 판매액은 지난해 처음으로 4조원을 넘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벌써 2조1,705억원어치가 팔렸다. 로또 판매액은 1조9,687억원으로 전체의 90%를 웃돌았다. 기록 경신은 일찌감치 예고해놓았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은 815만분의1. 길을 가다가 벼락에 맞아 죽는 것보다 더 낮은 이 숫자에 기대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이 넘친다.

인생역전. 풀어보면 인생이 180도 뒤바뀐다는 의미다. 주말이면 명당이라고 입소문 난 로또 판매점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매주 토요일 저녁 추첨이 끝나자마자 당첨 번호가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다. ‘뒤집어져야만 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지난 2월 10만 명대로 주저앉은 이후 바닥을 헤매고 있는 취업자 수 증가 폭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1~9월 실업자 수는 월평균 111만7,000명을 기록했다. 현행 통계 기준이 적용된 1999년 6월 이후 최고치다. 열심히 돈 벌고 뛰고 싶은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고 나라 경제를 떠받치고 가정을 책임져야 할 30~40대 일자리는 크게 줄었다.

앞으로 사정이 나아질 가능성도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올해 8월 한국의 경기선행지수(CLI)는 전월보다 0.1포인트 하락한 99.2(100 이하면 경기하강)를 기록했다. OECD 경기선행지수는 6~9개월 뒤의 경기 흐름을 예측하는 지표다. 이미 17개월째 전월 대비 하락한데다가 올 4월부터는 100을 밑돌고 있다.

‘복권에 대한 환상이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정말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어. 먹을거리 사는 데 썼어야 할 돈, 마지막 남은 얼마 안 되는 푼돈으로 샀을지도 모르는 복권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저 불쌍한 사람들의 고통과 쓸쓸한 노력을 생각해보게.’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고흐는 이렇게 썼다. 만약 고흐의 편지가 국민청원에 올라가고 20만명이 동참해 청와대가 답변을 해야 한다면 누가 뭐라고 답할지 정말 궁금하다. styxx@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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