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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유출 못 막으면 미래도 없다] 1년 지나서야 유출 감지..잘나가던 강소기업 한순간에 파산

<상> 보안 구멍에 무너지는 기업

유출사건 3건 중 2건은 중기..개발만 몰두하다 보안 소홀

예산·전문인력 없어 감지 더디고 복구에도 1년 이상 걸려

피해입증 어려워 소송해도 장기전..거래끊겨 결국 문닫아





# 지난 2014년 국내 이동통신 중계기 개발업체 A사 영업담당 상무 B씨는 회사 기밀을 빼돌리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에 덜미를 잡혔다. B씨가 유출한 기밀은 당시 A사가 일본 기업과 손잡고 추진하던 스마트폰용 중계기 개발사업의 핵심 기술. B씨는 미국 경쟁사에 1년 3개월 동안 일곱 차례에 걸쳐 각종 자료를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사활을 걸었던 일본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A사는 이듬해 문을 닫았고 회사 대표는 지병 악화로 세상을 떴다. 매출 500억원대에 연구개발(R&D) 인력만 60명이던 강소기업이 기술유출로 한순간에 무너졌다.

# 올해 6월 수원지방검찰청은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C연구원의 전 센터장 D씨를 산업기술 유출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C연구원은 아시아 최대 풍력실험장 등 세계 최고 수준의 풍력 설비와 시험 기술을 보유한 곳이다. D씨는 중국 최대 풍력 블레이드 생산업체에 ‘풍력 시스템 개발 실증 기술’ 자료를 넘겨주고 금품을 받았다가 적발됐다. D씨가 센터장으로 부임한 후 1년간 기술유출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됐지만 연구원은 이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 첩보를 입수한 한 국정원 직원이 2년에 걸친 추적 끝에 산업기술 유출의 실체를 밝혀 국책기관의 보안 불감증에 경종을 울렸다.

중소기업이 기술유출로 무너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술 보안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현실을 딴판이다. A사처럼 성장 가도를 달리던 R&D 기업이 하루아침에 파산하는 사례는 다반사다. 대기업과 달리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기술유출을 적발하더라도 이미 경쟁사가 관련 제품을 시장에 내놓으면 위기를 맞는다. 또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 이상 걸리는 소송으로 재판에 매달리다 보면 회사는 껍데기만 남기도 한다.

13일 국정원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 8월까지 적발된 해외 기술유출 사건(150건) 가운데 중소기업이 피해를 본 사건은 전체의 67%(102건)를 차지한다. 정부출연 연구원과 대학 등의 피해도 10%(15건)였다. 대기업은 23%(35건)에 불과했다.

이들 피해 중소기업의 대부분은 기술 보호 시스템에 투자할 여력이 없거나 보안 의식이 비교적 낮아 피해를 입은 것으로 분석됐다. 2016년 산업통상자원부 조사에서 국가 핵심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의 보안 역량은 62점에 머물렀다. 대기업 90점의 3분의2 수준에 머물렀다는 점이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가 국내 기업 2,693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중소기업의 기술 보호 역량 점수는 51.3점에 그쳐 대기업 67.9점에 크게 못 미쳤다. 당시 조사에서 드러난 중소기업 기술유출 사고의 이유로는 ‘보안 관리 감독체계 미흡’이 46.5%로 가장 많았다. 이어 ‘임직원 보안 의식 부족(23.5%)’과 ‘보안 관련 투자 미흡(11.6%)’ ‘보안 전임 담당자 부재(3.8%)’ 등이었다.



이러한 이유를 따져보면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기술 개발에 집중한 나머지 기술 보호에 소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첨단 기술을 개발하면서도 산업 보안에 대한 인식이나 예산 부족으로 보안 관리는 초보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의 한 관계자는 “산업스파이가 노리는 기술이 과거에는 정보기술(IT)과 조선·자동차 분야에 치우쳤지만 최근에는 중소기업이 주축인 소재·부품 등 정밀기계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면서 “하지만 중소기업 대부분은 기술유출 피해를 당하고도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거나 사건이 발생하고 난 다음에야 보안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상당수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기술유출 사고를 당하고도 제때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장항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에 따르면 산업기술 유출 사고를 당한 중소기업의 29.4%는 1년 이상이 지난 뒤에야 사고를 감지했다. 대기업 7.7%와는 대조적이다. 사고 복구에 1년 이상 걸린 중소기업은 전체의 47.1%에 이르는 반면 대기업은 27.3%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보안 사고를 감지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리고 사고를 복구하는 데도 더딘 셈이다. 그만큼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장 교수는 “아직도 산업 현장에서는 ‘보안은 통제’라는 인식이 남아 있어서 기업이 생존하려면 기술을 보호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다”며 “기업의 보안 의식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술유출 피해를 복구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핵심 기술을 빼앗긴 중소기업 대부분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특히 대기업에 기술을 빼앗긴 협력사는 기나긴 소송과 거래 단절에 따른 경영난에 시달려야 한다.

지난해 12월 대기업 협력업체 2곳은 기자회견을 열고 국내 굴지의 완성차 업체가 자사 기술을 탈취해 파산에 직면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들 기업은 “대기업과 대형 로펌(법무법인)을 상대로 대법원까지 7년의 소송 기간을 버틸 수 없다”면서 “수사기관이 기술 탈취 초기에 수사를 진행해달라”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들 중 한 기업은 실제로 1년간 소송에 매달린 끝에 특허무효심판에서 이겼지만 대기업이 재심을 신청함에 따라 앞으로 길게는 5년 이상의 시간을 다시 소송에 허비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술의 탈취나 유용을 경험하더라도 대기업을 상대로 법적 대응하는 중소기업이 많지 않다. 기술유출 사실을 직접 입증하는 게 어려울 뿐만 아니라 대기업과의 거래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소송을 꺼린다. 국내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대기업을) 압수수색을 하지 않는 한 기술유출 증거를 확보하거나 입증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최소 6개월에서 3년 이상 이어지는 재판도 비용 부담과 결과에 대한 불안이 뒤따른다”고 말했다.

김선영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 중소기업기술지킴센터장은 “아직도 중소기업의 상당수는 기술 보안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며 “무료 또는 적은 비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정부 서비스를 활용해 기술유출을 예방하는 안전장치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성수선임기자 ss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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