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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경제] 미래세대 '나몰라라'...돌려막기뿐인 국민연금 개편

“국민연금의 가장 근본적인 모순은 가입자 모두가 내는 것보다 받아가는 게 더 많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연금법을 준비했던) 1986년에 그렇게 설계했습니다. 그때는 근로자가 항상 많고 노인이 항상 적을 거라고 생각했죠. 노인이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65세 이후 잔여수명도 얼마 안 돼서 많이 받아가도 연금재정에 크게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하지만 예상을 벗어나 지금은 훨씬 장수하는 사회가 됐습니다. 모든 사람이 더 많이 받아가면 제도가 버텨낼 수 없습니다.”



지난 10월 초 대구에서 열린 마지막 국민연금 대국민 토론회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한 얘기입니다. 한 마디로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이 불가피하다는 뜻입니다. 박 장관은 국민연금법이 1986년 12월31일 제정됐을 당시 외부 전문가로서 정부와 함께 법을 만들었던, 국민연금의 ‘산 증인’입니다.

두 달 후인 14일.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국민연금 개편안은 반대로 갔습니다. 현행 그대로 유지하는 안과 오히려 ‘더 받는’ 안 4가지를 발표했습니다. 국민연금 적립기금의 소진을 늦추고 앞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미래세대의 보험료 부담을 어떻게 덜어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담기지 않았습니다. 단일안을 제시하는 데도 결국 실패했습니다. 장기개혁의 가늠자가 될 재정목표 원칙조차 제시하지 않은 이번 정부안에 대해 “반쪽짜리” “사상누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1안 현행유지 △2안 기초연금 강화 △3·4안 노후소득보장 강화 등 4가지입니다. 1·2안은 사실상 국민연금에 대해선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것입니다. 3·4안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둘 다 올리자는 것입니다. 2~4안은 모두 ‘더 내고 더 받는’ 안입니다. 세금을 더 내서 기초연금을 올릴지, 보험료를 더 내서 국민연금 급여액을 늘릴지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지난달 7일 복지부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중간보고한 초안에는 소득대체율을 인상하지 않고 보험료만 올리는 방안도 포함돼 있었지만 최종안에서는 결국 빠졌습니다. 당시 문 대통령이 퇴짜를 놓으면서 “국민 여론을 좀 더 충실히 반영하라”고 한 데 따른 결과입니다. ‘인기 없는’ 개혁안은 물린 것입니다.



◇1·2안=정작 국민연금은 손 안 대고…‘세금폭탄’ 불러올 기초연금 일괄 인상안 내놔

1안 ‘현행유지’는 오는 2028년까지 40%로 떨어지는 소득대체율과 현재 9%인 보험료율을 그대로 두자는 것입니다. 대신 정부의 기초연금 강화 정책에 따라 기초연금 최고지급액은 내년 4월부터 소득 하위 20% 어르신에 대해 25만원에서 30만원으로 올립니다. 하위 20~40%는 2020년, 하위 40~70%는 2021년부터 인상하기로 했습니다.

‘현행유지’는 당초 정부 논의과정에서 거론됐지만 ‘연금개혁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에 초안에서는 빠졌습니다. 하지만 보험료 인상을 꺼리는 국민 여론에 따라 결국 최종안에 들어갔습니다. 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김상균 서울대 명예교수는 “국민연금이 악화되는 걸 방치하겠다는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하자는 방향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5년 뒤 다음 정부에게 또 한 번 폭탄을 돌린 셈입니다.

2안은 국민연금은 그대로 두고 기초연금 상한만 2022년부터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올리는 안입니다. 가입자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합쳐 한 달에 받는 실질급여액(생애 평균 250만원 소득자가 국민연금 25년 가입 시)이 101만7,000만원으로 4개 안 가운데 가장 많습니다. 하지만 세금으로 충당하는 기초연금을 올리면 국가재정 부담이 천문학적으로 커져 결국 세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초연금을 소득 하위 70% 어르신 모두에 대해 일괄적으로 40만원으로 올리면 내년도 11조5,000억원인 기초연금 예산은 2088년 1,416조원 수준까지 불어날 것으로 알려진 바 있습니다. 하지만 복지부는 2안이 선택될 경우 필요한 기초연금 재정 추계를 2026년(28조6,000억원)까지밖에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너무 현 세대 국민 눈높이에만 따른 안”이라며 “기초연금을 취약계층 중심으로 차등지급하고 최대지급액은 당분간 30만원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합니다.





◇3·4안=보험료·소득대체율 동시 인상…“재정안정, 세대간 형평성은 오히려 후퇴”

‘노후소득 보장 강화’를 내세운 3~4안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동시에 올리는 방안입니다. 3안은 소득대체율을 45%에서 유지하되 현재 9%인 보험료율은 2021년부터 5년마다 1%포인트씩 올려 2031년 12%까지 총 3%포인트 인상합니다. 4안은 소득대체율을 2021년까지 50%로 더 인상하고 보험료율은 2036년 13%까지 총 4%포인트 올립니다. 역시 2021년부터 5년마다 1%포인트씩 올려 인상 속도는 3안과 같습니다.

두 가지 안 모두 내는 돈(보험료)과 받는 돈(소득대체율)을 둘 다 올리는 식이어서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에는 효과가 거의 없습니다. 기금 소진시점은 각각 2063년, 2062년으로 현행 제도를 유지할 때(2057년)보다 5~6년밖에 차이가 안 납니다. 연금액을 올리는 데 필요한 비용을 메꿔줄 뿐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보험료도 5년마다 1%포인트씩 올리게 돼 있어 인상 시점이 올 때마다 5년마다 정권이 바뀌면 이 스케줄도 흔들릴 가능성도 높습니다. 당장 현재 소득대체율도 2028년까지 20년간 10%포인트 낮추기로 지난 2008년 법이 개정됐지만 이번에 뒤집히게 됐습니다.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이 시급하지만 오히려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방안이 나온 데 대한 우려도 큽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지난 8월 펴낸 보고서에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추가로 인상하자는 것은 현 세대의 ‘모럴 해저드’를 강화시키는 나쁜 주장”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소득대체율을 더 올리면 안 그래도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할 미래세대에 추가 부담을 얹어주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소득대체율이 40%로 떨어지는 현행법상으로도 기금이 소진되는 2057년까지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면 40년 후에는 한꺼번에 25% 이상의 보험료를 내야 합니다. 소득대체율이 더 오르면 나중에 미래세대가 내야 하는 보험료는 이보다 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윤 위원은 “3~4안은 재정안정과 세대간 형평성 측면에서는 오히려 후퇴한 방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70년 뒤 적립배율 1배’ 재정목표 삭제…“목적지 없이 비행하는 꼴”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안에 대해 “연금개혁을 안 하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특히 지난 8월 제도발전위가 제시한 향후 연금개혁의 ‘원칙’인 재정목표가 정부안에서는 사라진 데 대한 지적도 나옵니다. 당시 제도발전위는 ‘향후 70년 후 적립배율 1배(1년치 연금 지급액 보유)’가 유지되도록 하는 재정목표를 세우고 앞으로 연금제도 개편 때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등을 수정하라고 제안했습니다. 실제 일본은 100년, 미국은 70년 후 재정목표를 정해놓고 이에 따라 연금제도를 손질합니다.

김 교수는 “(3·4안이 선택되더라도) 2031~2036년 보험료를 인상한 후에는 어떻게 되느냐”며 “연금개혁의 기본은 70~100년짜리 장기계획·재정목표 원칙을 정하고 그 안에서 중단기 개편을 해나가는 것인데 현 개편안은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비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습니다. 복지부가 단일안 대신 복수안 4가지를 내놓은 데 대해서도 “정부안은 단일안으로 나와야 시민과 국회가 그를 토대로 의견을 제시하고 수정해나갈 수 있다”며 “복수안을 내놓은 것은 정부가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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