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목 시세보기

서울경제

HOME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정여울의 언어정담] '비언어적 표현' 속에 숨은 따스함을 갈망하다

작가
외로울 때 안아준 따스한 손길
고통을 함께 아파해주는 마음
우리들은 그런 사람을 찾고자
삶이란 여정을 걸어가고 있다

  • 2019-01-11 18:32:01
  • 사외칼럼
[정여울의 언어정담] '비언어적 표현' 속에 숨은 따스함을 갈망하다

어렸을 때 읽었던 문학작품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면 문장 하나하나, 세세한 감정 표현 하나하나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섬세한 뉘앙스가 가득 담겨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얼마 전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다시 읽으며 끊임없이 인간의 따스함을 갈망하는 제인 에어, 그러면서도 자유와 독립을 갈구하는 제인 에어의 아름다운 영혼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는 제인 에어가 지닌 매력이 ‘함께 있음의 기쁨’과 ‘홀로 서기의 기쁨’을 동시에 추구하는 여주인공의 놀라운 적극성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제인 에어가 주어진 상황에 수동적으로 머물기만 했다면 그녀의 인생은 평생 우울함과 자괴감으로 점철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때로는 ‘홀로 있음의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때로는 ‘함께 있음의 어우러짐’을 추구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자기 안의 무한한 잠재력을 끌어내는 놀라운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고아소녀 제인 에어가 가장 많이 느끼는 고통은 바로 추위와 배고픔, 외로움과 무서움이었다. 누구도 그녀를 따스하게 포옹해주지 않기에 제인 에어는 낡은 인형 하나를 친구 삼아 그 인형을 꼭 껴안아야만 잠이 들 수 있는 혹독한 외로움의 시간을 보낸다. 제인 에어는 자신을 무자비하게 때리는 사촌오빠 존에게 ‘감히 반항했다’는 이유로 외숙모의 불호령을 듣게 되고, ‘붉은 방’이라 불리는 차디찬 골방에 혼자 갇혀 무시무시한 밤을 홀로 보내며 극한의 공포감을 체험한다. ‘이 세상엔 정말 나 혼자밖에 없구나’라는 쓰디쓴 외로움과 트라우마를 겪은 제인 에어는 그 집을 떠날 수만 있다면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 겉으로는 ‘자선학교’를 표방하지만 알고 보면 학생들에게 형편없는 음식을 제공하여 거의 매일 굶주리게 할 뿐 아니라 심각한 체벌과 인격적인 모욕을 가하는 로우드 기숙학교에서 8년간 공부를 한 뒤, 로체스터의 양녀 아델을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취직한다. 기숙학교에서 6년은 학생으로, 2년은 교사로 지내면서 제인 에어는 자신에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우고 습득하고자 하는 엄청난 열정이 있음을 발견한다. 외로운 제인 에어가 기숙학교의 열악한 환경을 견디도록 해준 것은 바로 친구 헬렌의 따스한 포옹과 템플 선생님의 환한 미소였다.

[정여울의 언어정담] '비언어적 표현' 속에 숨은 따스함을 갈망하다

제인 에어가 실수로 석판을 깨뜨렸다는 이유로 심각한 체벌을 받고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심한 창피를 당한 뒤 잔뜩 움츠려 있을 때, 헬렌 번즈는 마치 ‘괜찮아,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너는 꼭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무언의 미소’를 보내준다. 헬렌은 아무 말 없이 환하게 웃어주기만 하지만, 제인은 그 아름다운 미소가 탁월한 지성과 진정한 용기의 표현임을 분명하게 느낀다. 폐결핵으로 죽어가고 있었던 헬렌은 빼빼 마른 얼굴에 움푹 들어간 눈을 하고 있었지만, 제인의 눈에는 헬렌의 ‘천사같은 미소’가 그 파리한 얼굴을 찬란한 광휘로 물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템플선생은 헬렌의 병세를 알고 있었고, 그녀의 맥을 직접 짚어주며 가슴 아파한다. 제인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엄마처럼, 상상 속에서만 그려보던 엄마처럼 자애로운 미소로 헬렌을 바라보며 말없이 눈물 흘리는 템플선생을 바라보며 그것이 바로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진정한 사랑의 모습임을 알아챈다.

말이 필요 없었다. 모두가 자신을 따돌릴 때 용감하게 자신에게 다가와 어깨를 안아주던 헬렌의 손길, 헬렌의 병세를 알고 그녀의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안타까워하며 말없이 눈물 흘리던 템플 선생의 몸짓. 이 두 가지가 제인 에어로 하여금 ‘함께 있음의 아름다움’과 ‘당당하게 홀로서기의 소중함’을 가르쳐준 아름다운 비언어적 몸짓이었다. 헬렌과 자신을 꼭 안아주고는 뒤돌아서며 눈물을 훔치는 템플 선생님을 제인은 이렇게 묘사한다. “선생님은 헬렌을 나보다 좀 더 오래 안아주었다. 선생님은 헬렌을 좀 더 안타까워하며 놓아주었다. 선생님의 시선이 문까지 따라간 쪽은 헬렌이었다. 선생님이 두 번째로 슬픈 한숨을 내쉰 것도 헬렌 때문이었다. 헬렌 때문에 선생님은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아, 저런 친구와 저런 선생님이 있었다면 나의 유년시절도 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를 위해 말없이 울어주고, 나를 위해 말없이 포옹을 해주는 사람, 우리는 평생 그런 사람을 찾아 인생이라는 험난한 여정을 오늘도 떠나가는 것이 아닐까.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XC

시선집중

ad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이메일 보내기

보내는 사람

수신 메일 주소

※ 여러명에게 보낼 경우 ‘,’로 구분하세요

메일 제목

전송 취소

메일이 정상적으로 발송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