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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용산참사 10주기] "호떡장사라도 하며... 용산참사 진실 밝혀야죠"

19일 용산 참사 10주기 유족 만나보니

17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부근의 한 도시락가게 주방에서 고(故)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씨가 일하고 있다./신한나기자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주상복합 건물 건설현장인 용산참사 현장 앞에서 고(故) 양회성씨 부인 김영덕씨가 호떡 장사를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방진혁기자


“우리는 지난 2009년 1월20일 용산참사 그날에 딱 멈춰 있는 거예요.” “호떡 장사라도 해서 살아야 진상을 밝힐 것 아니에요.”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옛 남일당 터에 주상복합 건물이 층수를 높여가는 동안 살아남은 자들의 한숨은 깊어만 갔다. 별안간 생활터전을 잃은 이들이 내몰린 곳은 결국 생존을 위한 전장. 용산참사 10주기(1월20일)를 맞아 서울경제신문은 남일당 건물에 끝까지 남았던 철거민 2가구와 만나 그들의 지난 10년을 들어봤다. 이들은 용산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다. 남편 고(故)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75)씨와 고(故) 양회성씨의 부인 김영덕(64)씨가 그들이다.

용산참사가 벌어지기 전만 해도 이들은 어엿한 ‘사장님’이었다. 이들은 재도약을 꿈꾸며 생업에 매진했다. 김씨는 “IMF가 터지면서 용산으로 이사를 오게 됐다”며 “다시 살아보겠다고 복어랑 아귀를 요리해 팔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꿈은 잠시뿐이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한강르네상스’ 사업이 진행되며 용산 일대 재개발이 급속히 추진됐다. 쇠파이프를 든 용역과 철거민들의 대치가 시작됐다. 관계기관은 침묵했다. 결국 이들은 망루에 올랐다. 이후 24시간도 안 돼 용산참사가 벌어졌다.



무분별한 공권력의 투입으로 남편을 잃게 된 이들에게 참사 이후의 삶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전씨는 “남편 장례를 치르고 아들은 구속되니 먹는 것은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며 “아들과 남편이 보고 싶어 매일 바깥에 나가 몇 년을 살았다”고 말했다. 김씨 역시 “남편 장례를 치르고 1년 정도는 그저 멍하게 있었다”고 회상했다.

남편과 생활터전을 잃었어도 삶은 계속됐다. 이들은 다시 몸을 추스르고 생업전선에 나섰다. 전씨는 “5년 전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도시락 가게를 차리게 됐다”며 “아들도 남영동에 맥주가게를 다시 차려 요즘은 밥은 먹고 산다”고 말했다. 김씨는 숙명여대 인근에서 8년가량 주점을 운영하다 영업이 어려워져 폐업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옛 남일당 건물 앞에서 호떡 장사를 시작했다.

이제 이들의 목표는 당시 사고의 진상을 밝히고 제2의 용산참사를 막는 것이다. 김씨는 “호떡 장사라도 해서 살아야 진상을 밝힐 것 아니냐”며 “억울해서 못 죽는다”고 말했다. 전씨는 “지금도 내몰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벼랑 끝으로 가면 죽을 수밖에 없다”며 “다시는 용산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함께 싸워 이겨내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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