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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Market] 국내 바이오기업간 상생협력이 힘든 이유

황유경 GC녹십자랩셀 세포치료연구소장

'내것' 손해 안보려는 이기심에

서구 기업에 비해 협력성과 미미

합리적 기술거래 경험축적 시급





현대인의 생활필수품인 휴대폰에는 수천 가지 특허기술이 집약돼 있지만 어느 한 제조사에서 휴대폰 제작에 필요한 모든 특허기술을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경쟁사들끼리 특허기술을 교환해 사용하는 일명 크로스라이선싱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해야 제조사도 소비자도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첨단 바이오의약품의 개발도 마찬가지이다. 휴대폰에 필요한 기술보다 다소 덩치가 큰 특허기술들로 구성돼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겠지만 약이 되는 과정이 통상 10년 이상 걸리는 것을 보더라도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원천기술을 확보해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어야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특허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의약품 연구개발(R&D)에서 필수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를 내 손으로 만들고 어디부터 협력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던 노바티스의 킴리아를 예로 들어보자. 킴리아는 백혈구의 일종인 B 세포가 종양으로 변한 악성 백혈병을 치료하는 유전자세포치료제로 지난 2017년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이 약의 개발 주역으로 칼 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를 기억하고 있지만 사실 세인트주드어린이병원의 다리오 캄파나 교수가 이 키메릭항원수용체(CAR) 유전자 조합을 개발했다. 노바티스가 펜실베이니아대에서 킴리아 개발에 관한 권리를 사들였지만 결국 CAR 유전자 사용에 관한 주요 특허권 분쟁에서 세인트주드어린이병원이 승리하게 된다. 즉 유전자 개발과 임상을 통한 개념 증명, 그리고 약이 되기 위한 허가 과정을 각각 다른 기관들이 맡아 한 셈이다.

연구자들이 약을 개발할 때 핵심이 되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로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모두 내가 만들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대책 없이 남의 기술을 따라만 하면 안 되겠지만 더러는 남이 만든 특허기술을 빠르게 사 와 내 기술을 더욱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 학교와 기업, 기업과 기업 간에 열린 자세로 교류와 협력하는 개방형 혁신이 중요하다고 수없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기초연구자 간의 협력은 비교적 수월하다고 하나 치밀한 계산을 깔고 있는 기업 간의 협력은 그리 쉽지 않다. 그나마 해외 기업과는 협력이 비교적 잘되는데 일본보다는 서구 기업과의 협력이 잘된다. 그런데 국내 기업은 언어도 같고 감정도 비슷하고 소통도 훨씬 쉬워 갈등을 해결하기도 쉬울 것 같은데 오히려 협력이 더 쉽지 않은 경험이 많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직 우리나라에서 기술거래가 활발하지 않아 기술적인 미숙함도 있었겠지만 근간을 살펴보면 ‘내것’에 집착하고 조금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이기심이 깔려 있음을 본다. 캄파나 교수가 개발한 CAR 유전자는 칼 준 교수를 통해 T세포에 적용해 임상으로 유효성을 입증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경쟁자인 두 사람이 서로 기술을 교류함으로써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내것’을 내어놓는 것이 잃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건강한 기업 생태계가 완성되려면 기초연구에 집중하는 대학이나 연구소, 초기 단계의 개발을 하는 회사들, 초기 임상에 집중해 유효성을 증명하는 회사, 그리고 대규모 임상 및 판매가 가능한 대형 제약회사들 간의 협력과 기술 거래가 활성화돼야 한다. 또 모든 기업이 기초연구부터 제품 판매까지를 다 담당할 수는 없어 기업들은 자기들이 잘하는 영역에 집중해 기술을 완성해야 한다.

우리도 우수한 바이오기술이 성숙하는 단계에 따라 이들 전문 기업들이 릴레이하듯 기술을 이어받으며 상생·협력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꿈꾼다. 내가 만들기도 하고 사 오기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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