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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 선임기자의 무기이야기] 美 몽니에 '해상작전헬기' 표류…예산·도입시기 못 맞출수도

< 74> 경쟁입찰로 선회한 해상작전헬기 2차사업

경쟁사 불참에 '와일드캣' 수의계약 앞뒀는데

美정부 'FMS 공문' 한통으로 원점서 재검토

시호크, 성능 우수하지만 해군함정과 안맞아

이·착륙하려면 수백억 들여 재설계·개조 필요

신형호위함 주변에서 대잠수함전 훈련 중인 한국해군 소속 와일드캣. 기체가 작지만 가격 대비 성능이 좋고, 특히 에이서 레이더로 300km 이상의 목표물까지 찾아낼 수 있다./사진= 해군




‘2024년과 9,500억원.’ 해상작전헬기 2차 사업의 도입완료 시점과 예산 규모다. 사업개요는 호위함에 신형 해상작전헬기를 배치한다는 것. 연초만 해도 이 사업은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갑자기 변수가 불거졌다. 방위사업청이 사업형태를 바꾼 탓이다. 지난해 말 날아온 미국 정부의 공문 한 장이 사업구도를 뒤흔들었다. 여기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 최소한의 절차와 상도의를 무시하는 미국 때문에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 돼버렸다는 비판과 성능이 우수한 헬기를 도입할 기회라는 상반된 반응이 동시에 나온다. 우려와 기대 어린 논란이 격화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점은 간과되고 있다. 과연 예산과 시기를 지킬 수 있느냐는 점이다.



◇ 미, 공개경쟁입찰 절차 무력화=방사청이 해상작전헬기 12대를 더 도입하는 사업을 공고한 시기는 지난해 6월18일. 그러나 유찰됐다. 레오나르도(AW-159 와일드캣)만 응찰했기 때문이다. 방사청은 10월31일 사업을 재공고했으나 역시 레오나르도만 응했다. 결국 11월14일 또 유찰. 방사청은 미국 록히드마틴(MH-60R 시호크)과 유럽연합(EU)의 NH인더스트리( NH-90)에 사업 참여를 권했으나 둘 다 듣지 않았다. 록히드마틴은 한국에서 제시한 가격이 너무 낮다며 사업 불참 의사를 밝혔다. 경쟁사들의 포기로 AW-159가 유리해지는 것 같았다. 방위사업법에도 경쟁입찰에 1개 업체만 참여해 2회 유찰되면 수의계약이 가능하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수면 밑은 상황은 다르게 돌아갔다. 2차 사업이 유찰된 11월14일자에 맞춰 미국 정부는 록히드마틴의 MH-60R을 FMS 방식으로 판매할 수 있다는 공문을 보냈다.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해외무기판매인 FMS도 역시 일종의 수의계약으로 볼 수 있다. 공개경쟁입찰은 외면하다가 한국의 법 절차대로 사업이 진행되고 다른 업체가 수의계약을 맺을 것으로 예상되자 “새 판을 짜서 우리와 수의계약을 하자”고 제안한 셈이다. 방사청은 미국의 무례하고 무리한 요구를 두달여간 쉬쉬하다 ‘사업을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결정을 최근 내렸다.

◇가격 맞출 수 있나, 예산 증액 불가피할 수도=미국은 방사청에 시호크 가격을 낮추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얼마나 내렸는지는 알 수 없다. 워낙 비싼 탓이다. 국회 국방위 소속 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이 방위사업청 등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당 도입 가격은 AW-159 534억원, MH-60R 787억원, NH-90 668억원이다. 12대를 도입할 경우 기체 비용으로만도 6,408억원, 9,444억원, 8,016억원이 들어간다. 총사업비의 20∼30%인 운영지원 비용을 더하면 AW-159 외에는 가격을 맞추기 어렵다. 사업비가 낮은 상황에서 양질의 무기를 구입할 때는 아예 사업비를 증액하거나 처음부터 주요 무장과 항전장비를 뺀 채 거의 껍데기만 들여오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어떤 경우든 국민의 부담은 늘어난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예산을 증액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성능이 우수한’ MH-60R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와일드캣 vs 시호크 성능 격차 크지 않다?=과연 가능할까. 시호크가 우수한 헬기라는 데는 이견이 많지 않지만 체공시간과 항속거리·무장량을 제외하면 와일드캣과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해상작전헬기 운용대대장 출신의 한 예비역 해군중령은 “에이사(AESA·다기능 능동) 레이더의 탐지 거리는 훨씬 길고 신뢰성도 높다”며 “첨단 항전장비도 시호크에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군의 한 예비역 제독은 “2013년 해상작전헬기 1차 사업 결정을 앞두고 ‘체공시간이 38분에 불과하며 소나와 어뢰를 동시에 적재할 수도 없다’는 등 수많은 억측이 나왔으나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며 “실제 훈련과 작전에서 두 시간 이상 비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그는 “헬기 추락사고의 대부분이 2시간 이상의 장기비행에서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와일드캣 헬기 도입 초기 적응 훈련을 취재할 때 직접 만나본 해군의 현역 헬기 조종사들도 와일드캣의 성능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군함 개조해야 MH-60R 이·착함 가능=낮은 가격으로 핵심장비를 뺀 채 들여와도 문제가 남는다. 크게 네 가지 문제가 꼽힌다. 무엇보다 크기가 맞지 않는다. 길이 19.76m의 시호크가 내리기에는 호위함들의 비행갑판에 여유가 없다. 해상작전헬기 대대장 출신인 한 예비역은 “갑판의 여유가 1m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데 턱도 없는 얘기다. 안전거리가 6.6m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 착함 방식이 다르다. 미국은 접근한 헬기에 와이어를 걸어 안전하게 끌어내린 뒤 유압으로 격납고까지 집어넣는 강제착함방식(LAST)인 반면 유럽은 조종사가 비행갑판 부근에 오면 갈퀴로 잡는 하픈(HAPOON) 방식이다. 시호크를 도입하면 비행갑판 확장뿐 아니라 선미 무게중심에서 선실 배치와 기능 배분까지 재설계해 새로 만들거나 크게 개조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산 청상어 어뢰’ 밀릴 수도=세 번째, 시호크가 도입될 경우 기존 와일드캣에 달린 국산 경어뢰 청상어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물론 시호크에 국산 청상어 어뢰를 통합할 수 있으나 여기에도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 미 해군이 사용하는 MK-46 어뢰 대신 청상어를 쓰려면 케이블을 교체하고 통제장비 개선이 필요하다. 청상어는 필리핀용 와일드캣 2대에 장착된 뒤 해외시장을 엿보고 있으나 국내에서도 설 자리를 잃을 판이다. 방산업체의 한 관계자는 “무기체계 통합이 간단해 보이지만 현대 첨단고가 장비일수록 수년씩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총금액의 40~60%를 되찾아올 수 있다고 강조하던 절충교역도 미 FMS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네 번째, 후속 군수지원도 부담 요인이다. 시호크 생산라인 폐쇄가 임박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반면 와일드캣은 한국 해군이 1991년부터 도입한 링스헬기의 발전형이어서 교육훈련과 정비, 후속 군수지원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헬기 없는 전투함 고착’과 ‘록마족’ 탄생=방사청이 계획한 호위함은 약 20여척으로 7척이 활동하고 있다. 1차 사업에서 도입한 와일드캣 8대가 각 함정에 배속된 상태다. 방사청은 2차 사업이 우여곡절을 거쳤어도 예정연도에 적시 비치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자신하지만 해마다 1~2척씩 새로 건조되는 함정은 헬기도 없이 취역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 사업은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보고가 오가는 등 군 수뇌부의 관심이 크기 때문이다. 당국이 계약 형태 변경을 숨기며 미국 방산업체의 무리한 요구를 그대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압력설도 나온다. 특정 군의 전현직 이름도 거론된다는 점에서 이 사업은 극히 투명하게 국익을 중심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거의 확정 단계인 F-35A 스텔스전투기 20대 추가 도입과 더불어 해상작전헬기 선정 절차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꿨다는 점에서 ‘한국 시장에 신(新) 록마(록히드마틴)족이 다시 등장했다’는 평까지 나돈다. 시호크와 계약을 체결할 경우 이중삼중의 안전장치가 없는 한 또다시 구설에 오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록마’가 문재인 정권에서도 날개를 펼 수 있을지, 록마의 날갯짓 속에 해군함정을 뜯고 고치는 예산 낭비와 시간 소요가 수반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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