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여명] 대법원장이 사법부<司法部> 장관인가

김성수 선임기자

헌정 최초 양 前대법원장 기소 등

사법신뢰 추락에도 손놓은 법조계

제목소리 못내고 코드맞추기 급급

'司法府 수장'으로 사태수습 나설때





지난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의 정적인 서민호 의원은 자신을 죽이려던 육군 대위를 사살해 재판에 넘겨졌다. 이듬해 1심 재판부는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서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격분한 이 대통령은 공식 석상에서 대법원장에게 “현역 장교를 권총으로 쏴 죽였는데 무죄라니,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이에 대법원장은 “판사가 내린 판결은 대법원장인 나도 이래라저래라 말할 수 없다. 무죄 판결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절차를 밟아 상소하면 되지 않느냐”고 맞받았다.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 선생의 일화다. 법조계에서는 삼권분립과 사법부의 독립을 강조할 때 자주 등장한다.

그로부터 66년이 지나 양승태 15대 대법원장이 구속 기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둘러싼 혐의는 모두 47개. 김 선생이 작금의 사태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지켜봤다면 어떤 심정일까. 또 김경수 경남지사를 법정 구속한 판사에 대한 여권의 비난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을까.

일견 터무니없지만 초유의 사태를 풀어가야 할 김명수 대법원장이라면 생각해볼 수 있는 가정이다. 김 대법원장이 2017년 9월 취임 이후 좌고우면하는 사이 사법신뢰는 추락하고 법관들은 유례없는 시련을 겪고 있으니.

법원 안팎에서는 김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의혹을 내부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검찰 수사로 넘겨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부 판사는 사법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대법원장이 스스로 날려버렸다고 비난한다. 단시간에 환부를 도려내고 몸을 추스를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수술 시기를 놓쳐 팔과 다리를 잘라야 할 위험한 순간까지 몰아갔다는 얘기다.

의혹이 오랜 기간 이어지면서 사법불신은 걷잡을 수 없게 됐다. 법원행정처에 접수된 법관 대상 진정 및 청원 건수를 봐도 2016년 1,476건에서 2017년 3,644건으로 급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10월까지 3,875건을 기록하기도 했다. 민원의 대부분은 재판 결과가 부당하다거나 재판 과정이 투명하지 못했다는 것들로 재판에 대한 불만이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커질수록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장이 안 보인다”는 푸념이 많았다. 도대체 뭘 하기에 사태 확산을 막지 않느냐는 의문 섞인 질타였다. 김 대법원장의 모습은 문재인 행정부 출범 이후 주요 부처 장관들과 비슷했다. 그들은 청와대 코드 맞추기에 급급해 소신껏 정책을 펼치지 못했다. 비난 여론에 휩싸이다 보니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이유로 2017년 8월부터 “장관이 안 보인다”는 말이 자주 등장했다. 그러다 보니 김 대법원장을 두고 “사법부(司法府) 수장이 아니라 사법부(司法部) 장관이 아니냐”는 외부의 비아냥을 법관들이 감내해야 했다.

사법부 장관이라는 비아냥의 배경에는 ‘복지부동 판사’도 작용한다. 일부 판사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하지 않는 판사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논란이 예상되는 주요 사건은 계속 미루고 단순 사건만 처리하는 판사가 늘었다는 우려다. 판사들 사이에서 복지부동하는 공무원의 행태가 나타난 것이다. “주요 사건에서 소신 판단보다는 여론이나 국민 정서에 기댄 판결이 많아질 것 같아 걱정스럽다”는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의 말이 단순한 기우가 아닌 상황이다.

이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은 법정에서 시비가 가려지게 됐다. 어떠한 판결이 나오더라도 사법부에는 치명적인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이 중심을 잡고 사법신뢰 회복에 두 팔 걷고 나서야 한다. 사법불신은 국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각국 법무법인(로펌)과 투자회사들이 사법농단 의혹 재판에 깊은 관심을 갖고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게 국내 로펌 관계자의 전언이다.

김병로 선생이 퇴임사에서 남긴 말이 마치 김 대법원장에게 던지는 일갈로 들린다. “법관은 최후까지 오직 정의의 변호사가 돼야 한다.” /sski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