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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통해 세상읽기] 鳧脛雖短 續之則憂 (부경수단 속지즉우)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세상의 만물 자체적으로 전개돼야

사람이 개입해 방향 이끌면 안돼

살다보면 목숨걸고 싸울 일 있지만

각자의 방식 내버려둬도 될 일 있어







어머니는 봄부터 가을까지 시골에 계시다가 겨울이 되면 서울로 오신다.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다 보니 시골을 한 번씩 찾아갈 때 보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어느 날 어머니 방에 가니 침대 머리맡에 약봉지며 간식거리며 여러 가지 물건이 널려 있었다. 이렇게 널려 있는 것이 보기에도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침대에서 움직이다가 밟을 듯했다.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약은 약대로 간식은 간식대로 제자리에 챙겨두시면 좋지 않냐고 말을 건넸다. 자식의 말에 어머니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

그 뒤로 이 일을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다. 어머니 방에 다시 들렀을 때 전에 말했던 약과 물건이 침대 머리맡에 그대로 있었다. 어떻게 하자고 또 말하기도 그렇고 해서 “약을 어디 치울까요?”라고 물어봤다. 어머니는 전과 달리 당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전에는 당신도 물건을 이리저리 널어놓지 않고 제자리에 보관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깔끔해서 좋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근래에 연세가 드시다 보니 약이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먹을 때가 돼도 놓치고 자주 쓰는 물건도 서랍에 잘 보관하면 어디에 있는지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다소 지저분하게 보일지 몰라도 매끼 먹어야 할 약이며 자주 사용하는 물건은 깊숙이 두면 안 되고 눈에 보이는 곳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장자’ ‘변무(騈拇)’에 보면 어머니가 바뀌어 가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했던 이야기와 비슷한 우화가 나온다. 오리는 다리가 짧고 학은 다리가 길다. 이를 두고 오리의 다리가 조금 길고 학의 다리가 조금 짧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천재만이 떠올릴 수 있을 만큼 기발하지는 않다. 이는 ‘동물의 왕국’ 같은 다큐멘터리에서 기린이 물을 마시기 위해 앞발을 벌리는 아주 불편해 보이는 자세를 떠올리면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오리의 다리를 늘리고 학의 다리를 줄이는 일은 그렇게 행복한 결과를 낳지 않는다. 장자의 생각에 따르면 “오리의 다리가 짧아 불편하다고 생각해서 늘려주면 우환이 되고 학의 다리가 길어 불편하다고 생각해서 자르면 아픔이 된다(부경수단 속지즉우·鳧脛雖短 續之則憂, 학경수장 단지즉비·鶴脛雖長 斷之則悲).” 사람은 오리와 학의 다리를 고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리와 학은 그렇게 태어난 신체구조로 생태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최적화된 상태에 있다. 이를 고치면 사람의 입장에서 좋게 보일 수 있지만 오리와 학의 입장에서는 고통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본래 긴 것은 짧게 잘라서는 안 되며 본래 짧은 것은 길게 늘려서도 안 된다.

이 우화에서 장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개체가 자신의 생명을 잘 키워갈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는데 사람이 자연에 개입해 이렇게 저렇게 조작하고 양적 증가를 발전으로 해석하는 시대를 비판하고 있다. 장자는 세상의 만물이 자기 원인에 따라 자체적으로 전개되도록 내버려둬야지 사람이 개입해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가서는 안 된다고 봤다. 이것이 바로 장자가 말하는 쓸데없는 일을 만들지 말라는 무위(無爲)이다.

나는 전에 ‘장자’를 읽다가 “오리의 다리가 짧아 불편하다고 생각해서 늘려주면 우환이 되고 학의 다리가 길어 불편하다고 생각해서 자르면 아픔이 된다”는 구절에 이미 공감한 적이 있다. 그런데도 나는 어머니의 침대 머리맡에 놓인 약봉지를 보는 순간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못하고 어떤 식으로 정리해야 한다는 강박증을 나타낸 것이다.

어머니가 물건이 눈에 들어와야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몽둥이로 머리를 세게 맞은 양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머니의 말을 통해 ‘부경수단 속지즉우(鳧脛雖短 續之則憂), 학경수장 단지즉비(鶴脛雖長 斷之則悲)’의 내용을 다시 한번 새기게 됐고 참으로 생생하게 이해하게 됐다. 세상을 살다 보면 목숨 걸고 싸울 일이 있지만 각자의 방식을 인정하고 내버려둬도 될 일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내버려둬도 될 일마저 핏대를 세우며 싸우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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