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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탈원전 이대로 가면 하청기지 전락… 일본이 뒤에서 웃는다"

■김명현 한국원자력학회장

세계1위 기술·가격경쟁력 갖고도

파트너 제휴·하청형태로 해외진출

일감절벽에 中企 줄도산 불가피

후쿠시마 참사 日도 원전 재가동

신재생에너지 확대방향은 맞지만

원전 유지한채 석탄·LNG 줄여야

학회 창립 50주년 기념행사를 앞둔 김명현 한국원자력학회장(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그가 학회 홈페이지 인사말 첫머리에 쓴 것처럼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원자력계의 존립기반마저 흔들리고 있어서다. 김 학회장은 “이 판국에 축제가 가당찮다는 의견이 있지만 바닥까지 추락한 자부심을 되찾는 노력을 포기할 수 없다”며 “오는 5월 춘계학술 대회 때 50년 백서를 내고 창립 반세기 행사를 한국원자력산업회의와 공동으로 개최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차분한 어조로 인터뷰를 이어갔지만 때로는 감정이 격한 듯 톤을 높이기도 했다. 그는 원자력을 이념과 도그마가 아닌 과학과 팩트로 봐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인터뷰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 경희대 공대 연구실에서 1시간 40여분간 진행한 뒤 e메일과 전화 인터뷰를 한 차례씩 추가로 실시했다.

원자력 연구는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채 안 됐던 지난 1959년 첫발을 내디뎠다. 올해는 원자력 연구 60년, 관련 학회 창립 50주년이 되는 해다. 김명현 한국원자력학회장은 “이념을 앞세운 무모한 탈원전 정책으로 60년 공들인 원자력 생태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개탄했다. /권욱기자




-학회가 원전에 대한 국민 여론 조사를 여러 차례 했는데.

△여론 조사는 탈원전 정책이 과연 국민의 뜻인가 하는 의문에서부터 출발했다. 지난 2017년 숙의 방식의 공론화 조사 대상은 신고리 5·6호기로 한정됐음에도 원전 정책 방향에 대한 조사가 추가됐다. 정부는 보조적 조사 결과(원전 축소응답 53%)를 마치 국민의 뜻인 양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였다. 절차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문제가 있다. 학회는 탈원전이 국민의 뜻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국민 여론조사는 지난해 8월과 11월, 올 2월 세 차례 이뤄졌는데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은 원전 지속과 확대라고 대답했다. 계절별로 원전 인식은 큰 차이가 없었다. 올해 한 차례 더 실시할 예정이다.

-여론조사는 설문방식 등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나.

△그런 측면이 있을 수 있다. 환경단체가 실시한 여론조사 역시 마찬가지다. 소모적 논쟁을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정부에 공동 조사를 제의했지만 응답이 없다. 탈원전은 신고리 5·6호기 존폐 여부보다 더 포괄적이고 중차대한 사안이다. 우리의 미래가 달린 문제다. 반드시 국민의 뜻을 물어봐야 한다. 숙의 방식의 공론화조사도 수용할 수 있다. 오죽하면 국민투표로 결정하자는 말이 나오겠는가.

-정부는 처음엔 탈원전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에너지 전환’이라고 하는데.

△말로만 에너지 전환이지 내용은 탈원전이다. 월성1호기는 6,000억원을 들여 노후 설비를 교체하고 규제 당국으로부터 2022년까지 수명을 연장받았다. 그런데도 뚜렷한 이유 없이 폐쇄하기로 했다. 이것이 에너지 전환정책인가. 탈원전이 정치 구호로는 좋지만 현실 정책으로 논의하기에는 과격하고 강압적이라는 뉘앙스가 강해 표현을 달리한 것이다. 정직하지 못한 정부와 관료가 만들어낸 해프닝이다.

-해외 원자력 석학들은 탈원전 정책을 어떻게 보는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첫째는 어처구니없는 정치적 선택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경쟁국이 침몰한다고 측은하게 보기도 한다. 그런 이면에는 뒤로 웃는 나라도 있다. 일본이 그럴 것이다.

-왜 일본인가 .

△일본은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전에서 한국에 패했다. 절치부심하던 차에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나서 국제무대에서 설 땅을 잃었다. 우여곡절 끝에 최근 원전재개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이 스스로 원전을 포기했다. ‘이런 호재가 어딨나’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신한울 3·4호기의 운명이 초미의 관심사다. 아직 한국수력원자력이 폐기 결정을 내리지 않았는데.

△일단 이사진의 배임 문제가 발생한다. 매몰 비용이 수천억원대인데 포기하면 소송으로 이어진다. 더 중요한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데 있다.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허가 난 발전사업을 취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전기사업법 제12조에 명시돼 있다. 사업자가 법을 위반하거나 결격 사유가 있을 때 그렇게 된다. 하지만 신한울은 그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찾자면 ‘공사계획 인가기간 내 착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해당된다. 신한울의 인가 기간이 2021년 2월까지여서 한수원이 그때까지 질질 끌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탈원전을 해도 해외 수출을 장려하겠다는데.

△어불성설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주전 동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처음에는 사우디가 2,800㎿급을 하겠다고 했다. 이건 우리가 UAE 수출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APR 1400모델’ 2기를 짓겠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는 1,400㎿급이 없다. 노형(爐型)이 다르면 전혀 다른 원전이다. 3,500㏄ 승용차를 사겠다는 사람에게 쏘나타를 팔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 수주는 떼어놓은 당상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탈원전 선언 이후 사우디가 달라졌다. 노형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을 포함해 미국과 러시아 등 5파전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두산중공업이 제작한 UAE 수출용 원전인 ‘APR 1400’ 원자로. 내년 말부터 기자재 업체의 일감 절벽이 현실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경제DB


-신규 원전 없이는 해외 수주가 어렵다는 말인가.

△어렵다고 본다. 사우디가 구형을 원하면 UAE 수출모델인 ‘APR 1400’을, 신형을 요구하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APR 1400+’를 제시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제 완공돼 검증됐느냐 여부다. 사우디처럼 원전을 처음 도입하는 나라에 수출하려면 실제 같은 모델이 완공돼 운영상의 검증을 마쳤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UAE 수출 때도 그랬다. UAE 수출모델로 국내 첫 적용한 신고리 3·4호기는 준공이 늦어지는 바람에 UAE 측에 페널티를 물었다. 사우디 원전은 미국이 수주하고 한국이 제작 파트너로 하청을 맡을 가능성이 있다.



-탈원전이 계속되면 한국이 하청기지로 전락한다는 말인가.

△내수는 막히고 해외에서 불신을 받으면 선택지가 없지 않은가. 그냥 놀리면 ‘폭망’한다. 세계 1위 기술력에 가격경쟁력까지 갖췄는데 왜 파트너 제휴 또는 하청 형태로 해외로 가야 하는가. 신한울 3·4호기 폐기는 단순히 원전 2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외에서는 ‘한국이 원전에서 손 떼는구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신규 건설이 없으면 수년 내 기술자가 이직하고 중소기업부터 도산한다. 아마 1~2년 이내에 그런 일이 발생할 것이다. 기자재 산업은 다품종·고가·소량생산의 특성이 있다. 확실한 일감 보장이 없으면 버틸 수 없다. 신한울 3·4호기를 포기하면 마지막 원전인 신고리 5·6호기의 기자재 납품이 내년쯤 마무리된다. 이때부터 일감 절벽에 부닥친다. 설령 영국 원전을 수주해도 기자재 납품이 시작되는 2025년까지 5년간 일감 공백이 발생한다.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면 수출 경쟁력의 추락은 불 보듯 뻔하다.

-탈원전과 관련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뭐라 보는가.

△학회장이 입에 담기는 부적절하다. 이미 되돌리기 힘들 만큼 상처를 입었다. 특정 산업이 대선 공약 하나로 결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목격하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는가 묻고 싶다. 정작 당사자인 산업계는 입막음을 당해 불이익을 당할까 봐 하고 싶은 말도 못한다. 학회가 나서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정부는 대신 해체산업을 육성한다는데.

△원전 1기 건설과 1기 해체의 시장 규모를 비율로 따지면 10대1쯤 된다. 원전 공사는 6~7년 걸리지만 해체는 50년쯤 소요된다. 비교 대상이 못 된다. 우리는 기술력도 떨어진다. 미국은 원전을 완전 해체해 새로 지은 적도 있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을 해체하면서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다. 기술력 격차는 10년 이상이다. 블루오션이 아니고 새로운 먹거리도 아니다.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생각하면 탈원전이 아니라 탈석탄이 우선 아닌가.

△미세먼지 원인은 분명하게 가려져 있지 않다. 학자마다 견해도 다르다. 무턱대고 석탄 화력을 없애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분명한 것은 석탄은 물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도 미세먼지를 뿜어내고 원전은 제로라는 점이다. 미세먼지는 당장 눈에 보이는 위험이고 원전은 혹시나 있을지 모를 위험이다. 눈에 보이는 현실의 위험성을 간과한 채 과장된 위험성 제거에 올인하는 게 합당한 일인가. 중요한 것은 적절한 에너지 믹스(mix·조합)다. ”

-에너지 믹스를 어떻게 짜야 하는가.

△에너지정책은 안보와 경제성·환경성·기술력·국제경쟁력 등을 두루 살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지금의 에너지 믹스는 정부 내 극단론자들이 결정하고 있다. 그들이 미래 한국의 에너지를 책임질 건가. 탈원전 사례로 독일을 들지만 이웃 나라 원전 강국 프랑스는 왜 안 보나. 후쿠시마 참사를 겪은 일본이 왜 원전 가동을 재개했겠는가. 에너지 수입이 가능하고 석탄이 풍부한 독일보다는 에너지 고립 섬이자 자원이 없는 일본을 봐야 한다.”

-국민들은 탈원전으로 전기료 인상을 우려한다.

△정부는 전기료를 인상하지 않겠다고 했다. 안 올리면 언젠가 세금으로 귀착된다. 전기료는 정책적 판단의 영역이기에 원가를 따져야 한다. 가장 저렴한 원전을 없애면 원가가 오르는 것은 상식이다. 선심 쓰듯 전기료를 올리지 않겠다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차기 정부에서도 탈원전 정책이 지속될까.

△당연히 수정될 것이다. 누가 집권하든 원전축소 기조를 존중할 것이다. 원전 비중을 축소하고 신재생을 늘리는 방향은 맞다. 다만 신재생 비율이 20%로 올라설 때까지 30%인 원전비중을 유지한 채 미세먼지를 발생하는 석탄과 LNG를 줄여야 지속 가능한 에너지정책이 된다. 원전의 사회적 수용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정책당국자 입장에서 부담일 수 있다. 정 그렇다면 새 원전은 짓되 노후 원전은 조기 폐쇄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한때 탈원전을 내부적으로 모색하다 실태를 파악하고서 깨끗이 접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런 유연성을 발휘할 결단이 필요하다. chans@sedaily.com

■김명현 학회장은…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원자력 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MIT 박사 학위를 받자마자 곧바로 귀국한 뒤 서른의 나이에 경희대 공대 정교수가 돼 지금까지 같은 대학에서 31년 동안 원자력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핵 설계와 원자로 해석·안전 분야의 권위자인 김 교수는 2008년 문을 연 경희대 원자로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다. 2018년 9월부터 제31대 원자력학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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