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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회장, 매출 36억원 대한항공 12조원 회사로…韓 항공사 새로 쓴 경영인

적자 회사 항공기 166대·매출12조 항공사로 키워내

1990년대 항공기 직접 보유 늘려 외환위기 파고 넘어

2000년대 스카이팀 창설로 글로벌 항공사로 도약

2010년 한진해운 사태·총수일가 무리로 병환 심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새벽(한국시간) 미국에서 별세했다. 향년 70세.

고 (故) 조 회장은 1949년 3월 8일 인천에서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69년 고 조중훈 회장은 적자를 보던 대한한공공사를 인수했다. 당시 대한항공(003490)은 구형 프로펠러기 7대와 제트기 1대, 매출액은 고작 36억원에 불과한 약소국의 작은 항공사였다. 취항도시도 일본 3개 노선에 불과했다. 이런 대한항공은 창립 50년 만에 매출액 12조 6,512억원(2018년 기준), 항공기 166대로 전 세계 43개국 111개 도시 노선을 운영하는 글로벌 항공사로 도약한 것은 조양호 회장의 역할이 컸다.

조양호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미주지역본부 과장으로 입사했다. 영업과 정비, 자재, 정보기술(IT) 등을 거쳐 1992년 대한항공 대표이사 사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에 올랐다.

조양호 회장은 입사할 때부터 경영 길이 순탄치 않았다. 1973년과 1978년 각각 발생한 1, 2차 오일쇼크는 전 세계 경제의 지도를 바꿔놓았다. 당시 조중훈 회장은 오일쇼크 전인 1972년 보잉 747 점보기를 도입했는데 연료비가 높아질 때 많은 승객을 태우는 전략으로 경영을 덮친 세계적인 난기류를 뚫었다.

입사 때부터 단련된 위기 대응은 1990년대 빛을 발했다. 조양호 회장은 항공기 차제 소유 비중을 늘리는 경영전략을 썼다. 당시 운영 항공기 112대 중에 임차기는 14대뿐이었다. 1990년대 세계 경기가 팽창할 때 대거 항공기를 빌려서 쓰던 여타 항공사와는 다른 전략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가 아시아 신흥국과 국내 경제를 덮칠 때 이 전략을 빛을 발했다. 금융위기 때 보유 항공기를 매각 후 재임차하는 방법으로 유동성 위기를 대처할 수 있었다. 큰 파도가 지나자 1998년 대형 항공기 27대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건실한 경영을 바탕으로 조 회장은 미국 델타항공에 항공사의 노선을 공유하는 동맹체(얼라이언스)을 제안했다. 에어프랑스와 아에로멕시코 등에도 같은 제안을 했고 2000년 6월 뉴욕에서 대한항공이 주도적으로 만든 ‘스카이팀’을 창설하며 글로벌 항공사로 위상을 다졌다. 현재 스카이팀은 175개국 1,150여개 도시에 매일 1만 4,500편의 항공기를 운영한다.



대한항공을 글로벌 항공사로 키워낸 조양호 회장의 위기는 외부에서 맞았다. 2010년대 동생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이 별세했고 처제인 최은영 씨가 경영을 맡았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무리하게 배를 빌려 사세를 확장하는 전략을 썼고 결국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조양호 회장이 한진해운에 한진그룹의 자금 수조 원을 쏟으며 지원했지만 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조 회장은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해 대한항공에 큰 부담을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와 함께 2014년 이후 장녀와 차녀의 이른바 갑질 논란으로 사회적인 비판을 받아왔다.

이 시기에도 조양호 회장은 델타항공과 조인트벤처(JV) 설립으로 저가항공사의 도전을 물리치고 글로벌 국적항공사로 위상을 더 두텁게 하며 경영성과를 내고 있었다. 창립 50주년인 올해는 100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4년 뒤 매출 16조원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비전 2023’ 경영 발전 전략을 발표했다.

하지만 총수일가를 두고 사회적인 비난 여론이 커졌고 사모펀드인 KCGI 한진칼의 지분을 대거 사들이며 경영 참여를 선언했다. 국민연금도 경영권 개입을 거론했다. 결국 올해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의 재연임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로 인해 조양호 회장은 1999년 이후 20년 만에 회장직을 내려놓게 됐다. 주주총회 당시에도 조양호 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별장에서 머물고 있었다. 8일 새벽 지병이던 폐질환이 악화돼 향년 70세로 별세했다.

조양호 회장은 한국 항공산업이 세계적인 위치에 오르는데도 앞장서왔다. 1996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집행위원회 위원을 거쳐 2014년부터 IATA 전략정책위원회 위원을 맡아 국제항공업계에서 한국의 국적항공사 이해를 대변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을 맡아 재계에서도 꾸준히 목소리를 냈다.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한·불 최고경영자 클럽 회장, 한·사우디 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아 민간 외교에도 공헌했다. 대한탁구협회 회장과 대한체육회 부회장, 아시아탁구연합(ATTU) 부회장 이사 등 스포츠 지원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특히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올림픽 유치를 성사시켰다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은 조양호 회장의 운구와 장례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항공업계와 한국 항공사에 큰 획을 남긴 조양호 회장의 별세에 애도를 표하고 있다./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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