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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5주기 앞둔 목포·팽목항] 빛바랜 기념관·녹슨 선체…"아픔까지 잊어서는 안되죠"

곳곳에 상실의 흔적 덩그러니

간간이 추모객 발길 이어져

진도체육관도 이젠 일상으로

"소중한 생명 다시 잃지않으려면

5년넘어 수백년 지나도 기억돼야"

한 추모객이 12일 전남 진도 팽목항의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진도=이희조기자




파란 하늘 밑으로 강한 해풍이 불었다. 녹슨 난간에 묶인 노란 리본들은 바람의 방향을 따라 이리저리 나부꼈다. 방파제 옆에는 ‘세월호팽목기념관’이라는 간이 건물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이전에 희생자 분향소가 있던 자리다. 안에 놓인 노란 리본 열쇠고리와 책갈피에는 먼지가 쌓였다. 벽에 붙어 있는 단체 사진에서 단원고 학생들이 해맑은 표정으로 손으로 ‘브이(V)’자를 그리고 있었다. 생명력을 잃은 듯한 기념관 모습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세월호 사고 5주기를 나흘 앞둔 지난 12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찾은 임일국(59)씨는 “팽목항의 낙후된 모습에서 세월호 참사가 사람들에게서 점차 잊혀지는 것을 느낀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평범한 항구였던 팽목항이 전국민적 관심을 받았다가 다시 인기척이 드문 항구로 되돌아간 것이다. 1년에 두어 차례 팽목항을 들른다는 이복순(70)씨는 “세월호 참사는 5년이 아니라 수백 년이 지나도 기억돼야 한다”며 “그래야 소중한 생명을 다시 잃지 않는다”고 했다.

장완익(왼쪽)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장과 고(故) 고우재군 아버지 고영환씨가 12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진도=이희조기자


지난 2015년 컨테이너 4개를 붙여 만든 세월호 가족식당도 지나간 세월의 무상함을 여실히 느끼게 했다. 창문에는 먼지가 수북했고 벽에 벌어진 틈 사이로는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사고로 숨진 고(故) 고우재군의 아버지 고영환(50)씨는 “우리나라는 ‘사람’보다 ‘육하원칙’이 먼저인 나라”라며 “형식과 절차에 앞서 생명을 중시했더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서 눈시울을 붉혔다. 고씨는 사고 이후 지금까지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유가족 중 한 명이다. 이날 팽목항을 방문한 장완익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장은 “세월호 참사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기억돼야 할 것”이라면서 “저희가 열심히 해서 힘을 드리겠다”며 고씨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제서야 고씨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녹진해진 유가족들이 눈물로 지샜던 진도실내체육관도 이제는 당시의 흔적을 찾기 힘든 곳이 됐다. 주민들이 배드민턴 경기를 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흔한 동네 체육관으로 되돌아갔다. 체육관 관계자는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반 시민에게 체육관을 개방한다”며 “세월호 추모 행사때 사용되기는 하지만 평소에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운동을 즐긴다”고 말했다.



땅거미가 질 무렵 다시 찾은 팽목항 방파제에선 바람이 한층 차가워졌지만 추모객들의 발길이 간간이 이어졌다. 바닥에 앉아 난간의 리본을 만지작거리던 김윤정(48)씨는 세월호 사고 5주기를 맞는 느낌을 묻자 “그 느낌을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 것 아니냐”면서 “벌써 5년이 지난 거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남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듯 좌현이 검붉게 녹슬어있다./목포=허진기자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의 녹슨 선체는 5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증표다. 지난 2017년 4월11일 목포신항에 거치될 당시 세월호의 벽면은 희끗희끗하게 원래의 흰색이 보였지만 5년이 지난 현재는 그마저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날 목포신항에서는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모행사가 열렸다. 선체조사위원회의 활동이 끝난 뒤로는 찾는 발길이 드물었던 항만도 이날만큼은 추모객들로 북적였다. 오후 4시에 시작된 ‘기억과 약속’ 음악회에는 유가족 등으로 이뤄진 4.16합창단과 목포혜인여중 한마음합창단, 전남 20개 시·군에서 모인 아이들로 이뤄진 ‘꿈키움드림오케스트라’가 참여했다.

합창단은 이날 공연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곳’과 ‘고향의 봄’ 등 10여곡을 불렀다. 공연이 끝나고 4.16합창단 단장이자 고(故) 이창현군의 어머니 최순화(55)씨는 “이렇게 다들 잘해줄 지 몰랐다”며 “기억해주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연주단원으로 참여한 고태영(18)군은 “정성을 다해 연습했고 진지한 마음으로 연주에 임했다”며 “배에 탔던 누나, 형들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진도·목포=이희조·허진기자 love@sedaily.com

전남 20개 시·군에서 모인 아이들로 구성된 꿈키움드림오케스트가 12일 목포신항에서 열린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5주기 추모음악회’에서 연주하고 있다./목포=허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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