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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열풍의 그림자]한류만 믿던 화장품社 철수… 엘도라도 환상 깨야

다른 아세안 국가보다 임금 10~20% 높지만 소비력 약해

日평균 1만명 찾는 이마트 고밥점 객단가 韓 6분의 1 수준

산업구조 고도화 빠르게 진행… 경공업 진출은 환영 안해

베트남 호찌민 시에 위치한 이마트 고밥점에서 방문객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고밥점은 지난해 전 세계 이마트 매장 가운데 ‘방문객수 1위’를 기록했지만 객단가는 한국의 6분의 1 수준이다. /사진제공=이마트




# 국내 화장품 수출업체 A사는 지난 2016년 말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보복의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 시장에서 갈 곳이 없어지자 A사는 베트남으로 눈길을 돌렸다. 한류 열풍이 있고 30대 이하 인구가 6,000만명에 달하는 ‘기회의 땅’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문을 두드려본 베트남 시장은 생각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베트남 현지의 한 수출업계 관계자는 “베트남 젊은 여성 대다수가 아침 일찍부터 종일 공장에서 일하는데 화장할 시간이 있겠느냐”며 “베트남 현지 사정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들어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A사뿐 아니라 당시 베트남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수많은 화장품 업체들이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현지에서 만난 기업인들은 베트남의 시장 잠재력을 인정하면서도 막연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환상은 한류와 ‘박항서 매직’ 등으로 과도하게 부풀어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박항서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이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우승을 이끈 뒤 베트남 내 친한(親韓) 감정이 극에 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지 무역업계 관계자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좋아졌을지 모르지만 실제 매출 상승으로 이어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베트남이 누구에게나 기회의 땅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우리 기업이 베트남에 막 투자를 시작했던 1990년대에 비해 사업 여건은 녹록지 않다. 특히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지가와 임금이 급등했다. 백인재 LS전선 베트남·미얀마 지역 부문장은 “2000년대 초반까지는 저렴한 인건비가 매력적이었지만 이제는 다른 아세안 국가 대비 인건비가 10~20% 높은데다 최저임금 인상률도 매년 6%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수출품의 바이어가 될 만한 베트남의 우량 기업들도 이미 협상력이 높아져 무작정 손을 내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소비력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 지난해 베트남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한국의 1985년, 중국의 2007년 수준인 2,552달러에 불과하다. 정현성 베트남 이마트 팀장은 “평일에도 일 평균 1만명이 찾는 호찌민 고밥점은 전 세계 이마트 매장 중 방문객 수 1위”라면서도 “객단가는 1만5,000원으로 한국의 6분의1에서 4분의1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기업문화를 그대로 적용하려 했다가 현지 직원들과 마찰을 빚는 경우도 많다. 베트남 주재 한국 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국 유학파 트란(31)씨는 “개인 시간을 중시하는 현지 직원들과 한국 기업의 ‘빨리빨리’ 문화가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한국 기업 취직을 원하는 구직자들 사이에서는 ‘주재원 블랙리스트’가 존재할 정도”라고 귀띔했다. 김건하 롯데자산개발 베트남법인장은 “베트남은 무더운 날씨 탓에 장시간 야외 노동이 어렵고 거기에 최적화된 속도가 존재한다”면서 “인내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과 협력해 진출하는 것이 한 가지 전략이 될 수 있다. 이마트 ‘노브랜드’ 제품을 통해 베트남 시장에 안착한 중소기업들이 대표적이다. 정 팀장은 “맨땅에 헤딩 식으로 진출하는 것보다는 이마트에 대한 현지 선호도를 발판 삼는 것이 안전하다”며 “노브랜드 김 제품이 베트남 히트상품이 되기도 했고 아직 베트남에 들어오지 못한 노브랜드 사업주는 서둘러달라고 재촉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다만 대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기보다는 자생력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경돈 KOTRA 하노이무역관 과장은 “과거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7’ 발화 사건 당시 납품 물량이 급감해 중소 업체들이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베트남 정부에서 우호적인 업종을 면밀하게 따져볼 필요도 있다. 산업구조가 빠르게 고도화되고 있어 경공업은 베트남 정부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호찌민시의 경우 취약한 4개 산업과 9개 서비스업 분야를 정해놓고 해당 분야의 투자유치에 집중하고 있다. 레탄퐁 호찌민 투자무역진흥센터(ITPC) 투자홍보부서장은 “은행·보험·증권·핀테크 산업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투자에 관심이 많다”며 “제조업 관련해서는 한국 기업이 고부가가치 기술 이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베트남 정부의 자국 부품 사용 요구가 한국 부품 기업의 어려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LS전선에 따르면 애초 관련 부품사 80%가 한국 기업이었으나 베트남 정부의 요구로 현재 한국 부품 사용률은 40%까지 떨어졌다.

베트남 정보기술(IT) 업계에서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창업 붐이 일고 있어 한국 스타트업이 경쟁하기 쉽지 않다는 게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할인쿠폰을 제공하는 소셜커머스 ‘미티’ ‘그랩’의 독식을 우려해 등장한 베트남 토종 차량호출서비스 ‘비’, 음료수 하나도 배달해주는 ‘고비트’ 등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베트남에서 차량호출서비스 ‘타다(TADA)’의 시범 서비스를 진행 중인 우경식 엠블 대표는 “호주 등 해외에서 유학하고 온 IT 창업자들이 많아 결코 쉬운 시장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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