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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광화문은 봄을 잃었다

■ 국립박물관 근대서화전

심전 안중식 등 근대서화가

대표작품 100여점 총출동

훼손된 경복궁·을미사변 등

시대의 아픔 고스란히 담겨

심전 안중식이 1915년 여름에 그린 ‘백악춘효도(白岳春曉圖)’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1915년 어느 여름, 화가인 심전(心田) 안중식(1861~1919)이 붓을 꺼내 들었다. 키보다 더 큰 종이에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전각들, 해태상 앞으로 쭉 뻗은 종로 육조거리를 그리기 시작했다. 우뚝 솟은 백악산 허리로 안개와 구름이 드리웠고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전각의 지붕이 위엄을 뽐낸다. 지금의 모습과 비교하자면 광화문 정면에서 상당한 간격을 두고 해태상이 자리 잡았으며 홍예문 앞에서 육조거리 쪽으로 임금과 백성의 소통공간인 월대(月臺)가 보인다.

화가는 그림 위에 ‘백악춘효(白岳春曉)’라 적었다. “봄 잠에 날 새는 것도 몰랐더니/ 곳곳에서 새 우는 소리 들리네/ 간밤의 비바람 소리에/ 꽃이 얼마나 떨어졌을까”라고 한 당나라 시인 맹호연(689~740)의 ‘춘효’를 읊게 하는 제목이다. ‘백악’은 지금은 북악산으로 불리는 청와대 뒷산의 원래 이름이다. 그림이 그려진 1915년은 일제가 박람회를 명분으로 경복궁 훼손을 본격화 한 시기로, 총 4,000여 칸에 이르던 건물들 대부분이 헐리고 서양식 임시 진열관이 채워진 때다. 나라의 상징이 일제의 홍보수단으로, 식민통치의 상징으로 전락했으니 늙은 화가의 눈에는 원망과 울분이 가득했으리라. 그래서인지 번화가인 광화문 앞이 사람 하나, 건물 하나 없이 적막하다. 장엄하면서도 스산한 이유다.

심전 안중식이 1915년 가을에 그린 ‘백악춘효도(白岳春曉圖)’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심전 안중식 서거 100주기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근대 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가 16일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했다. 전시기획을 맡은 김승익 전시과 학예연구사는 “안중식이 1915년 여름과 가을에 각각 그린 2점의 ‘백악춘효도’는 전람회장으로 전락한 경복궁을 온전히 복원하고 다시 조선의 상징으로 되살아나기를 기대하는 작가의 시선이 담겼다”고 소개했다.

안중식이 꿈에 그리던 ‘진짜 봄’은 같은 해 그린 ‘도원행주(桃源行舟)’에 담겼다. 푸른색과 초록색이 강조된 청록산수화풍으로 ‘도화원기’ 중에서 배를 타고 물길을 지나 화사한 복사꽃이 만발한 도화원 입구에 다다랐다는 어부의 모습이 보인다.



심전 안중식이 1915년에 그린 ‘도원행주도’는 복사꽃 만발한 무릉도원 입구에 들어선 장면을 보여준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2년 이상의 준비기간을 거친 이번 전시에는 안중식을 위시한 근대 서화가들의 대표작과 글씨, 삽화 등 100여 점이 총출동했다. 도화서 마지막 화원으로 불리는 장승업의 제자인 안중식과 조석진, 지식인 오세창·지운영 등의 서화가들은 1860년대 전후로 태어난 ‘그 시절의 신세대’였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정물화의 일종인 ‘기명절지도’나 각종 동물과 새·꽃이 등장하는 화조도 병풍 등을 여럿이 같이 그려 제작하기도 했다. 작품에서는 동양화의 장식적 화면 구성과 서양화의 사실적 묘사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이들 서화가는 대중 계몽의 수단으로 붓을 휘둘러 잡지나 소설의 삽화로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정신을 보여줬다.

전시가 다소 무겁고 어둡게 느껴진다면 화가들이 살았던 시대 탓이기도 하다. 경술국치 이후 1910년대 서화계의 흐름이 특히 그랬다. 을미사변 이후 관직을 버리고 은둔한 윤용구는 거꾸로 자라는 대나무를 그려 뒤집힌 세상을 한탄했고,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우당 이회영은 석란도(石蘭圖)를 그려 팔아 군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16일 개막하는 ‘근대 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 전시 전경. /조상인기자


전시 끝에는 현대와 바로 맞닿은 화가 김환기와 김용준의 그림이 걸렸다. 전통 서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데 앞장섰던 근원 김용준의 ‘서창청완도’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정물화의 한 종류인 기명절지도로 작가의 세련된 취향을 드러낸다.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이자 ‘경매 최고가’의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김환기의 1949년작 ‘괴석’은 전통 서화의 소재인 괴석을 큐비즘적인 시선으로, 여러 색면으로 분할해 그린 점이 독특하다. 박물관 소장품인데 그림 뒷면에 ‘1953년 김환기 기증’이라 적혀 있다. 안중식의 서화가 길 터준 현대미술의 시작을 암시한다. 이번 전시는 6월2일까지.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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