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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십니까] “반목·갈등 클 때 일수록 인간존중의 선비정신 되새겨야"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

나와 남이 하나라는 물아일체가 유학의 기본정신

원하는 결과 안나오면 자신부터 돌아보는 자세 필요

부의 대물림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됨 가르치는 것

불신·갑질문화 없애려면 퇴계의 민본주의 실천을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은 “지금 우리 사회는 자기만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며 “자신의 행동에서 원하는 결과가 얻어지지 않는다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형주기자






백색 도포 차림의 21세기 선비들이 지금 450년 전 퇴계 이황의 귀향길을 도보로 재현하고 있다. 조선 당대 최고 유학자였던 퇴계 선생은 1569년 음력 3월 경복궁에서 선조에게 하직을 고하고 한양 봉은사∼광나루∼미음나루(남양주)∼가흥창(충주)∼단양향교(단양)의 여정을 따라 경북 안동 도산서원으로 귀향했다.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 보우당(普雨堂)에서는 퇴계 선생의 열흘이 넘는 이 귀향길을 그대로 재현한 행사 ‘위대한 발자취, 경(敬)으로 따르다’ 개막식이 열렸다. 개막식을 앞두고 이번 행사를 기획한 김병일(74) 도산서원 원장을 경복궁에서 만났다. 그는 이번 행사가 퇴계 귀향길의 의미를 이 시대에 맞게 되새겨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계청장과 기획예산처 장관을 역임했던 그는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을 거쳐 현재 도산서원 원장을 맡아 퇴계 전도사를 자임하고 있다. 김 원장은 “반목과 갈등이 커지고 있는 오늘날 인간 존중 사상을 몸소 실천했던 퇴계 이황의 선비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퇴계 이황의 귀향길 재현 행사를 개최한 배경은 무엇인가.

△올해는 퇴계 선생이 선조에게 하직을 고하고 도산서원으로 귀향한 지 꼭 450년이 되는 해다. 고희(古稀)를 앞둔 퇴계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필요로 했던 조정과 사회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선조 임금과 조정은 더 남아달라고 요구했지만 그는 공동체를 위해 할 수 있는 더 큰 일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시대에는 흔치 않은 일이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끝까지 자기를 중용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세상이다. 퇴계 선생의 귀향길 재현 행사를 통해 마무리와 물러남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장을 만들고 싶었다.

-퇴계 선생이 자신의 마무리를 통해 세상에 또 다른 가르침을 전하려 했다는 것인가.

△실제 생활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다양한 사람들의 마무리 모습을 경험한다. 어떤 이의 마무리에는 존경의 마음을 표시하게 되고 또 어떤 사람의 마무리에서는 실망하거나 때로는 측은한 마음을 느끼기도 한다. 퇴계는 나아감과 물러남의 최고 모범을 보여줬다. 마지막 순간까지 퇴계를 필요로 했던 선조 임금은 그에게 잠시 고향에 다녀오라는 의미로 귀향을 허락했지만 퇴계는 이미 마음속에 자신이 조정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고 생각했다. 퇴계의 이런 마무리 모습을 보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당대 조정에 있는 사람과 민초들의 마음도 그랬을 것이다.

-도산서원 귀향 후 이황이 역점을 둔 것은 무엇이었나.

△평소의 뜻대로 후학 양성과 저술에 힘을 썼다. 퇴계가 평소 추구한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은 ‘소원선인다(所願善人多)’라는 글에 담겨 있다. 그는 평소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이런 글로 표현했다. ‘높은 곳에 머무는 것은 내 할 일 아니네(高蹈非吾事) 고향 마을에 거처하면서(居然在鄕里) 착한 사람이 많아지길 소원하네(所願善人多) 이것이 천지가 제자리를 잡는 것이기에(是乃天地紀).’ 그는 착한 사람이 많은 사회에서는 나쁜 일이 생길 수 없고 이기심으로 인한 반목과 갈등도 없어질 것이라고 여겼다. 착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에 가치를 둔 그는 조용한 곳에서 독서하고 사색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저술에 몰두하면서 후학에게 선비의 도리를 심어주고자 했다. 그런 자신의 생각이 450여년이 지난 지금은 물론 천년 후에까지 이어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300㎞가 넘는 10여일간의 이번 도보 재현 행사 여정 가운데 일반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퇴계 이황의 귀향길 재현 행사를 위해 1~2월에 사전 답사를 했다. 어느 한 곳만 꼽을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한 곳들이다. 모두가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다. 선조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출발한 경복궁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도보 여행 출발지인 봉은사는 물론 단양도 빼놓을 수 없다. 퇴계의 글 가운데 유명한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을 못 봐. 고인을 못 보지만 가셨던 길이 내 앞에 있네. 가셨던 길 내 앞에 있는데 어찌 따라가지 않으리’라는 시조를 노래로 재현하는 행사가 마련된 충주도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69세의 나이에 고향에 돌아온 퇴계가 한 일은 무엇이었나.

△69세에 고향에 돌아온 후 1년 9개월 동안 그는 이전보다 더욱 소중하고 귀한 삶을 살았다. 고향에 돌아온 그에게 가르침을 받으려는 사람이 많았다. 뛰어난 서예가였던 그에게서 글을 받으려는 사람도 많았다. 퇴계 이황은 정도전 시대 이후 경복궁의 여러 현판 글씨를 쓸 정도로 서예 솜씨가 뛰어났다. 도산서원에서 그는 많은 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시를 주고받았다. 퇴계의 시 중 대부분이 말년 2년여 동안 나온 것들이다. 70세에 가까운 그에게 이런 삶이 육체적으로 큰 부담이기도 했지만 그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수명이 길어진 요즘 고령화 시대 속에 현대인들은 모두 자신만의 삶에 관심이 많다. 어떤 이는 건강을 위해 보약을 먹고 자신만 보신하는 데 전념하기도 하는데 이런 모습을 보고 주위 사람은 물론 자식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런 모습에서 감동을 느낄 수는 없다. 이번 퇴계 귀향 재현 행사를 통해 이황의 노년 모습을 반추해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도산서원과 인연을 맺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기획예산처 장관을 끝으로 공직을 떠나면서 얽매이는 일을 할 생각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고적 답사나 한학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 시절 고적답사반 일행과 도산서원을 찾았고 공직 생활 이후 종종 퇴계 종택을 방문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멀리 안동까지 내려와 도산서원과 퇴계 종택을 둘러보고 가는 모습을 지켜본 도산서원 문화수련원 이사회에서 이사장 자리를 권했다. 여러 이유로 거절했지만 결국 이사라는 자리를 맡게 됐다. 그런데 그 이듬해 다리 골절로 외출을 할 수 없어 제가 참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사회에서 저를 이사장으로 선출해버렸다. 결국 그것이 인연이 돼 도산서원 원장 자리를 맡았고 이 같은 행사까지 열게 됐다.

-도산서원 원장으로 퇴계 선생의 선비 정신을 많이 강조하면서 퇴계 전도사라는 애칭도 생겼다. 지금 시대 선비 정신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

△선비 정신이란 선비의 정신이다. 선비는 유학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유학을 공부하고 그것을 현실 속에서 가장 잘 실천한 사람이 퇴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선비 정신, 즉 유학이 추구하는 가치의 실천을 나는 모두가 잘되는 대동사회라고 본다. 이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퇴계는 앞에서 말한 ‘소원선인다’라고 표현했다. 한발 더 나아가, 착한 사람이 많아져 세상이 살기가 좋아지려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정신이 실현돼야 한다. 물아일체란 나와 타인이 하나라는 것이다. 유학의 기본 정신은 바로 이 물아일체다. 만인이 형제이자 나의 이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게 선비 정신이다.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은 “지금 우리 사회는 자기만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며 “자신의 행동에서 원하는 결과가 얻어지지 않는다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형주기자


-유교의 가치관을 진부하고 이 시대와 맞지 않는 정신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는데.

△선비의 탈을 쓰고 선비 행세를 하는 것은 진정한 선비가 아니다. 유교의 진수를 가장 잘 실천한 퇴계 선생을 본받고 그의 생각을 이 시대에 다시 가져오자는 것이 선비 정신이다. 물론 과거 선비들이 내세웠던 것 가운데는 잘못된 것도 있다. 남녀차별·신분차별·사농공상 이런 것들은 잘못된 정신이다. 이런 것은 버리고 이 시대에 맞는 선비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선비 정신 가운데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을 꼽는다면.

△요즘 우리 사회는 갈등과 불신을 많이 안고 있다. 청년 실업은 물론 여러 집단과 기업들의 이른바 갑질 문화, 재벌 2세·3세들의 일탈도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시대에 퇴계 이황의 인간 존중 사상과 참된 실천의 모습을 더욱더 배워야 한다. 퇴계 이황이 살던 시대는 신분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하지만 퇴계는 신분의 잣대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아무렇게나 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은 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퇴계 선생이 실천한 민본주의와 인간 존중 사상이다.

-일반적으로 유학을 떠올리면 사농공상의 위계질서를 많이 생각한다.

△과거 유학자들은 임금이 배이고 백성은 물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여러 가지 생각을 낳게 한다. 물이 잔잔할 때 배가 순항할 수 있다. 하지만 물이 풍랑을 일으키고 광란의 물결이 되면 배는 뒤집힌다. 못된 행동을 하면 임금도 백성이 축출할 수 있다는 반골론이 여기서 나온다. 임금이 존경받으려면 먼저 백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종은 젊은 시절 백성이 곤궁해 어려운 시기에 경복궁 안에서 움막을 치고 살았다. 스스로 먼저 백성의 입장이 되어 민본주의를 실천하려 했다. 임금이 이런데 신하와 백성이 그를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임금과 윗사람이 상대를 대접할 때 그의 위상은 더 올라가는 것이다. 퇴계 선생이 67세에 증손자를 얻었는데 손자며느리의 젖이 부족해 손자가 얼마 전 아기를 낳은 여종을 서울로 보내달라고 한 적이 있다. 퇴계는 남의 자식 죽여서 자기 자식을 살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반대했다.

-선비 정신을 기업 정신과 접목시킨다면.

△과거에는 윗사람들이 제대로 행동을 하지 못해도 신분과 나이에 따라 공경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시대다. 상하관계와 나이에 따라 존경이 일방적으로 따라와 주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그렇기에 퇴계의 실천적 삶이 더욱 절실하다. 재벌 그룹, 기업의 오너나 중역들이 연봉을 더 많이 받고 재산이 더 많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과거처럼 상하관계를 의미하는 사회가 아니라는 얘기다. 만약 자신이 오너이기 때문에 혹은 오너의 자녀이기 때문에 직원에게서 상하관계를 당연하게 요구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 학교 교육은 물론이거니와 집안 교육이 잘못된 것이다.

-기업에도 퇴계 이황의 선비 정신이 절실하다는 뜻인가.

△기업이 장수하고 가문이 오래가려면 자녀들에게 인간 존중의 정신을 가르쳐야 한다. 돈을 물려주는 것보다 더 중한 것은 사람됨의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사람됨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좋은 책을 사주고 좋은 학교에 보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내가 종업원을 사랑하고, 부부 간에 서로 존중하고, 어려운 친구와 이웃을 도와주는 모습을 보여줄 때 기업이 세상으로부터 존경을 받지 않을 수 없고 고객들과 직원들에게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선비 정신 가운데는 ‘행유부득 반구저기(行有不得 反求諸己)’라는 말이 있다. 행동을 해서 원하는 결과가 얻어지지 않는다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선비 정신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패스트팔로어(빠른 추격자)보다는 퍼스트무버(선도자)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퍼스트무버는 창의력과 융합력을 갖춘 인재다. 냉정하게 말하면 지금 학교에서는 이런 창의력과 융합력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과학은 물론 역사조차도 단답형 위주로 교육한다. 과거 우리 선비는 널리 배우고, 깊이 묻고, 신중히 생각하고, 명확하게 분별하고, 독실하게 실천하는 5단계 공부법을 생활화했다. 이 다섯 단계 중 중도에 그만두면 진정한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공부는 정답을 찾아가는 창의적인 과정이 중요하다. 정답 자체는 따로 없다. 선비들의 이 5단계 공부법을 통해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창의성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15세기 전반 세계적인 발명품 가운데 거의 절반이 조선에서 발명됐다는 내용을 소개한 책도 있는데 이는 당시 교육법의 우수성을 설명해준다.

-다소 예민한 주제이기는 한데 문재인 정부 출범 때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초심을 잃으면 80%대의 높은 지지율도 한순간 40%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 적이 있었는데.

△특별한 의미를 담고 말한 것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은 41%대였다. 직장 생활에서 많이들 하는 말이지만 초년병 시절의 초심을 잃지 않으면 사장은 맡아놓은 자리라고들 얘기한다. 누구나 초기에 당찬 각오를 하게 되지만 점점 초심을 잊게 된다. 나도 그랬다. 높은 자리에 있다 보면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더구나 지지율이 올라가거나 인기가 높아지면 더욱 초심을 유지하기 힘들다. 혼자서 초심을 지키기도 어려운데 나 외에 많은 사람이 함께 가게 되면 더욱 힘들다.

-초심을 잃게 되면 민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지지율도 떨어지게 된다는 것인가.

△지지율의 수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지지율이 말해주는 것을 파악해 초심을 잃지 않고 정신 차리는 쪽으로 이해하면 오히려 의미가 커진다. 지지율 수치 변화의 원인을 자신이 아니라 다른 데서 찾으면 탈이 생긴다. ‘행유부득 반구저기’라는 말을 다시 새겨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자기는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생각에 싸여 있다.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태도는 부족한 사회다. 자신을 돌아보는 사회여야만 더 개선되고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어느 한 정치 진영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과제다.
hbm@sedaily.com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 /성형주기자


He is…

1945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중앙고와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1971년 제10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경제 관료의 길을 걸었다. 통계청장과 조달청장,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을 거쳐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4~2005년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냈다. 이후 2008년 도산서원 문화수련원 원장과 국학진흥원장을 거쳐 도산서원 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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