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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범 논설위원의 관점] 美, 셰일혁명 힘입어 최대산유국 탈환..'에너지 지정학' 뒤흔든다

■ 급변하는 글로벌 에너지패권

美 내년이면 에너지 순수출국 올라

국제 원유·LNG 가격 쥐락펴락

원유시장 큰손 OPEC 위상 흔들

중동역할 감소로 안보지형도 급변

中 '전력판 일대일로' 등 대응 나서





지난달 말 세계 에너지시장의 지각변동을 알리는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미국이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연간 기준으로 45년 만에 세계 최대 산유국 지위를 탈환했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셰일오일 증산에 힘입어 하루 평균 산유량을 전년 대비 17% 급증한 1,095만배럴로 끌어올린 데 반해 러시아(1,075만배럴)와 사우디아라비아(1,042만배럴)는 2~3% 증가에 머물렀다. 반면 원유 수입 의존도는 3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으니 미국으로서는 숙원사업이 해결된 셈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미국이 내년이면 원유 등 에너지 수출이 수입을 웃도는 순수출국에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기술 개발과 과감한 정책 지원에 힘입어 미국 셰일 산업이 2차 에너지 혁명을 몰고 올 것이라는 관측이 줄을 잇는 이유다.

미국발 셰일 혁명은 석유·가스의 무역 흐름을 뒤흔들며 세계 에너지 지정학에도 상당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에서 대량 생산하는 셰일의 위상이 높아지면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통제력도 급속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은 생산자원 확보를 통해 자원과 기술·물류를 아우르는 에너지체계를 자랑하고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석유를 장악하면 국가를 장악할 수 있다”고 갈파했다. 이제 셰일이라는 새로운 에너지가 세계를 장악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에너지도 ‘미국 우선주의’=버락 오바마 정부가 원유 수출 해금 조치를 내린 지난 2015년 이후 미국의 원유 수출은 급속히 늘어나 하루 평균 200만배럴에 이르고 있다. 수출 국가도 아시아와 유럽·남미 등 40여곳을 헤아리고 있다. 일부 국가들은 미국의 무역적자 압박에 대응하느라, 일부에서는 러시아의 횡포에 맞서 미국산 원유·가스 등의 수입을 앞다퉈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상대적으로 값싸고 유리한 조건의 셰일오일로 공급자 우위 시장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에너지 파워는 무역적자 해소뿐만 아니라 세계 지정학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일찍이 “에너지 지배의 황금시대 도래를 확신한다”며 “그것은 미국의 황금기이기도 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을 자처했던 이유가 에너지 확보였다면 이제는 그 필요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점차 중동에서 발을 빼고 아시아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이나 고립주의에 힘이 실리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풍부한 에너지를 외교수단으로 활용해 미국의 국익을 추구하겠다”고 천명하기도 했다. 다만 미국의 셰일오일 전망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EIA는 미국의 원유 생산이 향후 10년간 계속해서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울 것이라며 오는 2027년을 고비로 보합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미국 셰일오일·가스의 생산량이 2025년 정점을 찍고 점차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미 유전 개발이 많이 이뤄져 있어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국제 에너지 전문가들은 “어쨌든 미국으로서는 유가를 통제하고 무역 영향력을 행사하는 꽃놀이패를 쥐게 된 것”이라며 “셰일 생산이 정점을 찍는 2025년까지 미국의 에너지 패권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이면=격화하는 미중 무역전쟁의 이면에도 에너지 패권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 정부가 에너지 수출을 무역적자 해소의 유력한 카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 2위의 LNG 수입국이자 미국 원유 개발 투자국이기도 하다. 지난해 양국의 무역협상 과정에서 미국산 LNG에 보복관세가 매겨지고 중국의 투자 축소 카드가 거론됐지만 중국으로서는 불리한 싸움일 수밖에 없다. 에너지 조사기관인 BNEF는 중국이 가스 전량을 미국으로부터 조달하면 약 277억달러의 무역적자 감소 효과를 가져온다고 추정하고 있다. 양형모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세계 시장에서 장기공급 계약이 끝나가는 물량은 안전하고 조건이 유연한 미국에서 대부분 흡수할 것”이라며 “결국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LNG 수입을 늘릴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중국의 안보 걱정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최근 카타르 등으로부터의 조달을 늘리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또 다른 공격지점은 ‘전력(電力)판 일대일로’로 불리는 ‘글로벌 에너지 연계(Global Energy Interconnection)’ 구상이다. 주변국과 전력망을 연계한 프로젝트를 통해 에너지 패권을 갖추고 신재생에너지와 이를 활용한 전력 부문의 신기술 개발로 차세대 에너지시장의 패권을 노리겠다는 것이다.

◇OPEC·러시아의 합종연횡=2014년 11월 말 OPEC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의를 열고 셰일가스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유가가 추락하고 있지만 생산량을 줄이지 않고 가격하락을 방치함으로써 셰일가스에 비수를 꽂았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란 등 중동 국가와 러시아·베네수엘라는 원유전쟁의 최대 피해자다. 카타르는 주변국으로부터 고립되고 러시아도 정치적 리스크에 휩싸여 있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셰일 증산에 맞서 새로운 동맹관계를 맺은 것도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하지만 6월 OPEC 회의를 앞두고 추가 감산에 나서야 한다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없다며 증산해야 한다는 러시아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 진로 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중동과 아프리카산 LNG가 유럽으로 들어오면서 독점적 우위를 상실한 러시아가 아시아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된다. 북방영토 반환에 매달린 일본 정부는 러시아의 북극 LNG 생산에 자국 기업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이철규 해외자원개발협회 상무는 “OPEC의 영향력은 여전히 살아 있다”면서 “특정 세력이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기보다는 치열한 힘겨루기가 이어지는 3파전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 원전·천연가스로…중동에 부는 ‘脫석유’ 바람

사우디, 신재생에 500억弗 투자

‘OPEC 탈퇴’ 카타르는 LNG·의료

UAE도 4차혁명 글로벌 허브 야심

지난해 6월 카타르가 석유수출국기구(OPEC) 탈퇴를 선언했다. 지난 1960년 OPEC 창설 이후 최초의 사건이었다. 카타르는 천연가스 개발에 집중하며 에너지 부문에서 독자 노선을 걷겠다고 과감히 선언했다. 천연가스와 대중교통·교육에 대한 투자 등을 통해 경제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비전 2030’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외교적으로 수세에 몰려 있는 카타르는 중동의 의료 허브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내년까지 27억달러를 투자해 의료센터 31곳과 대형병원 7곳을 신설·증축한다는 것이다. 비단 카타르뿐만이 아니다. 다른 중동 국가들도 새로운 에너지 시대를 맞아 경제와 산업구조 다변화를 통한 전면적인 국가 개조작업에 나서고 있다. 유가 하락으로 재정 수입이 줄어들자 미래 생존을 위해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에 뛰어든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전 2030을 통해 천연가스 생산에 나서면서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300억~500억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비전 2030은 석유에 의존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구조를 바꾸기 위해 관광과 레저·엔터테인먼트·지식기반산업·부동산 개발 등에 대규모로 투자한다는 중장기 계획이다. 이를 위해 약 2조달러 규모의 국부펀드를 조성해 새로운 미래 성장산업을 육성하기로 했다. 특히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의 증시 상장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석유 의존 경제에서 탈피하기 위해 내놓은 야심작으로 꼽히고 있다. 왕세자는 “위험할 만큼 석유에 중독돼 있다”며 개혁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으며 러시아 LNG 개발과 미국의 가스 수출 시설에도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밖에 에너지 다각화 차원에서 원자력발전소 16기를 건설하는 데 100조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아랍에미리트(UAE)도 ‘UAE 비전 2021’을 통해 2050년까지 총 전력 생산량의 44%를 신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며 1,634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또 UAE의 전반적인 국가 수준을 높이기 위해 2021년까지 인프라·의료서비스·지식경제·교육시스템을 혁신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최근 아랍 국가에서 성장유망주로 뽑힌 100대 신생기업에 장기비자 제공이라는 특전을 부여하고 나선 것도 4차 산업혁명의 글로벌 허브로 거듭나겠다는 야심에서 나온 전략이다. 이런 중동 산유국의 변화가 한국 기업들로서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원전에 국내 기업들의 참여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나 대기업 총수들의 현지 방문이 잇따르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ss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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